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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선 시위 뒤 1년, 이란은 어디로

딸기21 2010. 6. 11. 19: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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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란 대선 부정선거 시비로 ‘테헤란판 톈안먼 사건’이라 불렸던 대규모 유혈사태가 일어난지 12일로 1년이 된다. 1년전 그날 대선에서 석연찮은 승리를 거둔 마무드 아마디네자드 이란 대통령은 여전히 서방을 향해 언성을 높이면서 핵·미사일 문제로 긴장을 연출하고 있다. 대선 불복 시위대는 극심한 탄압을 받았고, 개혁파들의 요구는 물밑으로가라앉은 분위기다. 하지만 그 이면에서는 집권층 내부의 권력투쟁과 함께 신정(神政) 체제의 균열이 노출되고 있다.



투쟁과 억압의 1년

대선후보였던 미르 호세인 무사비를 비롯한 야당과 개혁파 진영은 당초 대선 1주년을 맞아 12일 테헤란 등지에서 대규모 민주화 요구 집회를 할 예정이었으나 취소했다고 AP통신 등이 11일 보도했다. 집회를 강행할 경우 다시 유혈사태가 일어날 수 있다는 우려 때문으로 보인다. 무사비는 역시 개혁파 후보 중 하나였던 메흐디 카루비와 공동명의의 성명을 내고 “당국의 거친 반응을 예상해볼 때, 더 효율적인 투쟁 방식을 생각해야 한다”고 밝혔다.
지난해 대선부터 한달 넘게 이어진 시위로 이란에서는 여대생 네다 아가 솔탄을 비롯해 70명 이상이 숨진 것으로 추정된다. 지난해 12월에는 학생의 날과 이슬람명절 ‘아슈라’, 그리고 개혁파의 정신적 지주였던 그랜드 아야툴라(최고위 성직자) 호세인 몬타제리의 타계를 계기로 다시 시위가 번졌다. 12월의 ‘2차 시위’로 무사비의 조카를 비롯해 10여명이 다시 보안병력에 사살됐다.

국제인권단체 휴먼라이츠워치는 10일 뉴욕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대선 시위 뒤 이란의 인권 악화 실태를 공개했다. 지난 1년간 이란 정부의 국민통제는 더욱 강화됐고 혁명수비대와 ‘바시지’ 민병대, 경찰의 민간인 탄압과 불법체포·감금·폭행이 상시화됐다. 250명 이상이 중형을 선고받았다. 9명이 사형선고를 받았으며 2명은 지난 1월 처형됐다.
이란 정부는 체제수호를 빌미로 대선 시위와 상관없는 쿠르드족 지도자 7명을 처형하기도 했다. 또 야당 인사들 뿐 아니라 기자, 인권운동가들을 대거 체포해 수감하고 있다. 투옥돼 있는 기자만 37명에 이른다. 앞서 국제앰네스티는 1년간 체포된 반정부 시위대가 5000명 정도이며 여전히 수백명이 수감돼 있다는 보고서를 발표하기도 했다. 이란 정부는 또 1년 전 시위대들이 휴대전화와 트위터 등으로 소통했던 것에 주목해 ‘온라인·이동통신 검열’을 대폭 강화하고 있다.

<대선 뒤 이란에선 무슨 일이 일어났나>

2009 6월 12일 대선 실시, 13일 아마디네자드 승리발표로 시위 촉발
           20일 여대생 네다 아가 솔탄, 무장괴한에 사살
           29일 혁명수호위원회, 아마디네자드 승리 확정
           잇단 시위 유혈진압으로 30~70명 사망, 1000여명 체포·투옥
     7월 개혁파 체포 계속, 아마디네자드-하메네이 각료인선 갈등
     8월 5일 아마디네자드 대통령 2기 취임, 항의 시위 재발
     11월 26일 보안당국, 노벨평화상 수상자 에바디 사무소 공격
     12월 7일 학생의 날 맞아 반정부 시위
          19일 반정부 최고위성직자 몬타제리 사망
          27~28일 ‘아슈라’ 기간 테헤란대학 등 시위
          개혁파 지도자 무사비 조카 등 10여명 사망,
          야당지도자 겸 전 대선후보 카루비 피습
2010년 1월 28일 대선 불복 시위로 기소된 2명 사형집행
        2월 무사비 측, “평화적 투쟁 계속” 선언



손발 묶인 개혁파, 분열하는 보수파

11일 이란의 모하마드 자바드 라리자니 인권위원회 위원장은 유엔 인권이사회 회의를 앞두고 “이란은 중동 민주주의의 모델”이라는 주장을 펼쳐 빈축을 샀다. 지난해 이란 정부에 대한 거리 항의행진에 직접 나서 눈길을 끌었던 영국의 피터 구더함 유엔주재대사는 “올 2월 이후 이란에선 어떤 시위·집회도 허용된 적이 없지 않느냐”며 라리자니와 설전을 벌였다.
미국 버락 오바마 대통령은 이날 “이란인들의 민주화를 향한 투쟁을 지지한다”는 성명을 발표했다. 온라인에 기반을 둔 민간단체 ‘억세스(Access)’는 그동안 수집한 이란 시위 미공개 동영상 6000여개를 곧 공개할 예정이다.

극심한 억압 속에 이란은 갈수록 전체주의적인 통제사회로 가고 있는 듯하다. 개혁파 대선후보로 나서 ‘녹색 혁명’을 이끌었던 무사비는 사실상 가택연금에 처해 있다. 카루비는 지난해 12월 ‘아슈라 시위’ 때 당국에 피습당했다. 노벨평화상 수상자인 시린 에바디의 사무실은 지난해 11월 보안요원들에 압수수색을 당했고, 에바디는 국외를 떠돌고 있다. 유명 감독이자 반체제 인사인 자파르 파나히는 3월초 체포됐다가 옥중 단식투쟁을 벌인 끝에 지난달 말에야 풀려났다.
하지만 보수파 성직자들을 중심으로 이뤄졌던 신정통치도 갈라지는 기미를 보이고 있다. 아마디네자드 대통령은 2기 집권을 계기로 전분야에 걸쳐 ‘친정체제’를 구축하는 데에 힘을 쏟았다. 아마디네자드는 민간인으로서는 처음으로, 시아파 성직자들이 독점해왔던 대통령직을 차지했다. 아마디네자드의 ‘막가파’식 행태에 대해 성직자들 사이에서도 반발이 적지 않았다. 최고지도자 아야툴라 알리 하메네이는 대선에서 어쩔 수 없이 아마디네자드의 손을 들어줬지만, 부통령·각료인선을 놓고 마찰을 빚었다. 지난해 8월 아마디네자드 정권이 야당 인사들에게 간첩혐의를 뒤집어씌우자 하메네이는 공식 성명을 내고 “그들이 서방의 간첩이라는 증거는 없다”고 오히려 일침을 놓았다.
아마디네자드는 최정예군인 혁명수비대를 친위대로 삼아 정치·경제·사회 전반에서 자신을 정점으로 하는 통치체제를 만들려 하고 있다. 하메네이로 대표되는 이슬람혁명 주축 세력들과, 아마디네자드-군부 연합세력 간 치열한 물밑싸움이 벌어지고 있다는 분석도 나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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