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자지라방송은 이스라엘 해군 특수부대원들이 31일 새벽 가자지구에 식량·의료품을 건네기 위해 지중해를 이동하고 있던 구호단체 ‘자유가자운동(FGM)’의 구호선박들을 공격, 15명 이상이 사망하고 60여명이 다쳤다고 보도했다. ‘자유 선단(Free Flotilla)’이라 명명된 구호선단은 다국적 구호활동가 700여명과 구호품 1만톤이 실린 터키선적 선박 6척으로 이뤄져 있었다.
배들은 지난 21일 키프러스를 출발할 예정이었으나 이스라엘의 제지로 30일에야 항해를 시작했다. 선단이 가자지구 해안 65㎞에 다가갔을 무렵 하이파 항구의 해군기지에서 출동한 이스라엘 함정 3척이 공격을 시작했다. 이스라엘 라디오는 “공격 2시간 만에 군이 발사한 미사일 하나가 구호선박을 맞췄다”고 보도했다. 구호선박 중 한 척인 ‘마비 마르마라’에 타고 있던 알자지라 특파원은 “이스라엘군이 구호선들을 향해 실탄을 쏘았다”고 전했다.
에후드 바라크 이스라엘 국방장관은 “구호선단의 후원자들은 테러조직과 연계돼있다”면서 “우리는 우리의 자치를 지키기 위한 행동을 했으며 그에 따른 대가는 감수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스라엘 일간 하레츠는 가비 아슈케나지 군 참모총장이 “폭력적인 활동가들을 진압하기 위해 실탄으로 맞서는 수밖에 없었다”고 주장했다고 보도했다. 이스라엘은 가자지구 무장정치조직 하마스를 고사시키기 위해 3년 전부터 이 지역 전체를 봉쇄하고 있다. 이로 인해 가자지구 150만 주민들은 식량도 물도 전기도 모자라 극심한 고통을 겪고 있다.
가자침공과 ‘두바이 암살사건’ 등으로 외토리가 된 이스라엘은 이번 일로 국제적 고립이 더 심해질 전망이다. 팔레스타인과 아랍권 국가들은 일제히 이스라엘을 규탄했다. 유럽연합은 즉시 어느때보다 강경하게 이스라엘을 비난하면서 진상조사를 촉구했고, 터키·스페인·그리스 등은 자국 주재 이스라엘 대사를 소환해 항의했다. 버락 오바마 행정부 출범 뒤 껄끄러워진 미국과의 관계도 더욱 악화될 것으로 보인다. 이스라엘 내에서도 비판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고 유력지 하레츠 등이 보도했다.
이스라엘은 ‘자유가자운동(FGM)’ 구호선단을 공격한 뒤 구호활동가들이 ‘테러조직’과 연계돼 있다고 주장했다. 대니 아얄론 외무차관은 31일 FGM 선박 공격 뒤 기자회견을 갖고 “그들은 ‘글로벌 지하드조직’과 연계해 무기를 숨겨들여오려던 자들”이라고 말했다고 일간 하레츠 등이 보도했다. 아얄론은 “그들이 탄 선박을 수색했더니 (테러집단이) 우리 군을 공격할 때 썼던 것과 같은 종류의 무기가 나왔다”면서 “어느 나라도 그런 선동꾼들의 유입을 허용하지 않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스라엘 군 관계자는 “검문을 하려는데 탑승자 일부가 곤봉과 칼 등을 들고 공격했다”고 해명했다. 하지만 FGM측은 “우리 배에 탄 모든 이들은 구명조끼를 입고 비무장 민간인임을 분명히 알리고 있었다”며 반박했다. 이들은 “이스라엘 해군 특수부대원들이 검문검색에 응하라고 요구를 하더니 2시간 뒤 갑자기 공격을 시작했다”고 주장했다. 구호선박에 탑승했던 알자지라 기자도 “이스라엘군이 공격을 해오자마자 FGM이 충돌을 피하려 백기를 내걸었고, 총을 쏜 탑승객도 없었다” 증언했다. 이번 공격은 가자 봉쇄를 풀 생각이 없음을 보여주려는 이스라엘의 ‘의도된 공격’이라는 것이다.
이스라엘은 이미 FGM의 구호선단이 출발하기 전부터 “우리 쪽 항구에 화물을 내리고 검색을 받으라”고 엄포를 놓았다. 하지만 FGM은 이스라엘이 가자지구에 구호품을 제대로 전달하지 않은 적이 많다며 거부했다. 이스라엘이 팔레스타인 구호인력을 공격한 것은 처음이 아니다. 2003년에는 영국인 구호활동가를 사살했고, 가자침공 때에는 유엔 사무소를 폭격해 국제적인 비난을 받았다.
이스라엘이 가자 봉쇄에 혈안이 된 것은 가자지구가 갖는 중요성 때문이다. 가자지구는 요르단강 서안지구와 함께 팔레스타인의 양대 자치지역이다. 이스라엘과 요르단에 둘러싸인 서안과 달리 가자는 지중해, 이집트와 이어져 있다. 향후 출범할 팔레스타인 독립국가와 세계를 연결해주는 창구가 될 곳이다.
이스라엘은 1993년 오슬로 평화협정 이래로 오랜 협상을 거치면서 팔레스타인 자치정부를 사실상 무력화시켰다. 동시에 서안과 가자를 분리, 가자를 외딴 섬으로 만들었다. 그 결과 오히려 가자지구에서는 무기력하고 부패한 서안의 자치정부에 반대하는 강경 무장정치조직 하마스가 득세했다. 2007년 하마스가 자치정부의 주축인 ‘파타’를 몰아내고 가자를 장악하자 이스라엘은 전면 봉쇄를 시작했다. 2008년 말에는 전쟁을 일으켜 아예 폐허로 만들었다. 면적 365㎢의 좁다란 가자지구는 150만명의 난민들과 주민들이 엉켜사는 거대한 난민촌이 되었고, 생필품과 에너지가 모자라 인도적 위기를 겪고 있다.
구호기구들은 가자의 참상을 알리고 구호품을 공급하기 위해 해로와 육로를 이용, 접근을 시도해왔다. 올초에는 ‘비바 팔레스타인’이라는 단체가 유혈충돌 끝에 힘겹게 가자지구에 입성했다. 구호단체들과 유럽국들은 무장세력을 막는다는 이유로 한 지역 전체를 봉쇄하는 것이 주민들에 대한 ‘집단적 징벌’에 해당되며, 이는 명백한 국제법 위반이라고 주장한다.
반면 이스라엘은 가자의 숨통을 틔워줘서는 안된다면서 무리수를 두면서까지 막으려 애쓰고 있다. 특히 이스라엘에 극우파 리쿠드당 정부가 들어서면서 오슬로에서 합의된 ‘두 국가 공존’이라는 국제적 합의까지 거부하고 있다. 리쿠드 정부의 정책에 대해서는 이스라엘 내에서도 반발이 만만찮다. 유력지 하레츠의 컬럼니스트 기드온 레비는 “이스라엘은 어리석음의 바다에 빠졌다”며 가자 봉쇄정책과 구호선단 공격을 맹비난했다.
가자지구 주민들을 돕는 구호단체로 지중해 섬나라 키프로스에 본부를 두고 있다. 그리스·아일랜드·이탈리아·영국·프랑스·미국 등 다국적 활동가들로 구성돼 있다. 가자 봉쇄에 대한 관심을 촉구하기 위해 인터넷으로 구호선단 탑승희망자들을 모아 파견한다. 2008년 8월부터 이번까지 가자지구에 9차례 구호선단을 보내, 5차례 구호품을 전달하는 데에 성공했다.
이번 선단에는 1976년 노벨평화상을 받은 북아일랜드 평화운동가 메어리드 매과이어와 유럽의회 의원들이 탑승하고 있었으며 나치의 유대인학살(홀로코스트) 생존자들도 타고 있었던 것으로 전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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