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기가 보는 세상/인샤알라, 중동이슬람

이스라엘이 왕따에서 벗어나려면

딸기21 2010. 6. 11. 22:56
728x90
이스라엘이 지난달 31일 해군 특공대원들을 동원해 지중해상을 지나던 구호선박을 공격했다. 이미 2008년말 가자침공으로 이스라엘의 공격성이 세계에 알려져있는 상태이지만 이번 사건의 파장은 크다. 이스라엘의 오만함과 무법적 행태에 대한 국제사회의 반감이 커질대로 커져 있는 상태에서 저지른 일이기 때문이다.
사건의 디테일은 아직 가려져 있다. 이스라엘은 “배에 탄 사람들이 검문에 나선 우리 군인들을 곤봉과 칼로 ‘린치’하려 했다”고 주장했다. 자유가자운동(FGM)이라는 단체가 주관한 구호선단에는 노벨평화상 수상자를 비롯해 유럽의회 의원들과 유럽 여러나라의 정치인들, 인권·구호단체 활동가들, 여러 언론의 취재진들이 타고 있었다.
배에 탔던 이들의 증언은 이스라엘측의 주장과는 전혀 다르다. 이스라엘군 특공대원들이 구호선단 6척의 배 중 선두였던 마비 마르마라 호를 공격했을 때 그 배에 타고 있었던 독일 정치인 아네트 그로스는 “저들은 이미 계획을 갖고 있었고, 그 계획에 따라 움직였다는 결론을 내릴 수 밖에 없다”고 말했다. “그들은 공포분위기를 연출하더니 경고도 없이 사격을 시작했다. 힘을 과시하는 것, 가자지구에 가려 하는 자들은 감히 꿈도 꾸지 말라며 위력을 보여주는 것이 그들의 목적이었다.”


이라크전의 데자뷔

유엔 안전보장이사회가 긴급회의를 열어 1일 미온적, 우회적으로나마 이스라엘의 행위를 비판하고 가자지구의 살길을 터주라는 의장성명을 채택했다. 그 뒤 이스라엘의 반응은 적반하장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집권 강경우파 리쿠드당의 베냐민 네타냐후 총리는 일시적으로 이집트 쪽 가자지구 경계선과 해안의 봉쇄를 완화했으나 구호선박의 항해는 계속 불허할 것이라고 밝혔다.
네타냐후는 “이스라엘의 적들이 가자지구에 계속 무기를 건네려 하고 있다는 걸 알고 있다”면서 “세계가 비난해도 가자 봉쇄는 못 멈춘다”고 큰소리를 쳤다. 이스라엘 일간지 하레츠에 따르면 극우파인 아비그도르 리베르만 외무장관은 안보리 의장성명 뒤 “국제사회가 두 얼굴을 갖고 있다”고 오히려 목소리를 높였다. 그는 “지난 한달 동안에만 태국, 아프가니스탄, 파키스탄, 인도, 이라크에서는 500명 이상이 사망했다”고 말했다. 그런데 겨우 9명 죽인 걸 가지고 이스라엘을 욕하느냐는 뜻이다.




Wheelchairs and other items, that were aboard Gaza-bound ships which were intercepted by Israeli forces,
 are seen at a military storage facility near Tel Aviv, June 7, 2010.



이스라엘의 막무가내 행동을 ‘해석’하기 전에, 이번 사건이 일어나기까지의 과정을 들여다볼 필요가 있다. FGM이 선박을 띄우기로 했을 때부터 이스라엘은 ‘충돌’을 예고하고 있었다. FGM은 가자 봉쇄의 문제점을 알리고 세계에 관심을 환기시키기 위해 인터넷으로 탑승자들을 모집했다. 그래서 정치인들과 유명인사들도 참여했고, 탑승객들의 명단이 사전에 미리 FGM 사이트에 공개됐다. 이스라엘 외무부는 탑승자들이 포함돼 있는 터키, 그리스, 키프러스, 스웨덴, 아일랜드의 외교관들을 불러 “FGM의 행위는 도발”이라 주장하면서 계획을 무산시키기 위한 압력을 넣으려 했다.
이스라엘은 2008년말 가자지구를 공격해 초토화시켰다. 이미 그 전 해부터 이스라엘은 가자를 고사시키기 위해 봉쇄를 시작했다. 팔레스타인 자치지역인 가자는 이스라엘의 주권이 미치지 않는 남의 땅임에도, 가자 주변 지중해 해안을 멋대로 접근금지구역으로 설정해 모든 선박의 출입을 통제했다.
FGM이 가자에 접근하려 하자 “저들은 국제테러집단과 연결돼 있다”, “테러조직 하마스에 전달할 무기를 싣고 있을 수 있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이스라엘 땅에 짐을 풀어놓고 검사를 받으라 요구했다. FGM이 이를 거부하자 국제사회를 상대로 자신들의 엠바고(금수조치)는 정당하다고 강변했다. ‘홍보’가 통하지 않자 강경대응도 불사하겠다며 으름장을 놓았고, 결국 구호선박을 공격해 9명이 숨지는 참사를 일으켰다.
이 모든 과정을 지켜보면 이라크전을 보는 듯한 기시감이 든다. 미국은 이라크 독재정권을 압박한다면서 이라크 남북에 비행금지구역을 만들어 옥죄었다. 조지 W 부시 미 행정부는 이라크가 대량살상무기(WMD)를 개발하려 한다는 의혹을 내세워 무기사찰을 강요했다.
그래도 사담 후세인 정권이 굴복하지 않자 경제제재로 모든 이라크인들의 숨통을 조였다. 이라크가 국제테러조직과 연결돼 있다고 주장하면서 공격 위협을 가했다. 조작·왜곡된 ‘증거’를 들이대며 국제사회에 전쟁의 당위성을 설득하려 했지만 먹히지 않자 유엔 합의 없는 전쟁을 강행했다.

‘비정상국가’가 된 이스라엘

이스라엘의 ‘배짱’ 뒤에는 늘 역성을 들어주는 미국이 있다. 로이터통신은 “이스라엘은 국제사회의 공격을 미국이 막아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는 기사를 실었다. 이스라엘은 미국을 믿고 있을 뿐 아니라 미국의 행태를 그대로 흉내내고 있다. 하지만 아무리 호가호위라 해도, 이스라엘의 극단적인 행동은 도가 지나쳤다. 영국 가디언의 지적대로 이스라엘의 행태를 ‘국가테러리즘’이라 부르는 이들이 늘어간다.
이스라엘을 편들어온 논자들조차 “최악의 수를 뒀다”고 지적한다. 워싱턴포스트 컬럼니스트 데이빗 이그네이셔스는 “정부가 실수를 할 수는 있지만 현명한 정부라면 그 실수를 통해 배우는 게 있어야 한다”며 가자침공으로 고립됐던 이스라엘이 같은 짓을 반복하고 있음을 개탄했다. 그는 “가장 큰 문제는 가자 봉쇄가 ‘지속불가능’하다는 점”이라고 단언했다. 150만명을 빈사상태로 몰아가면서 정당성을 주장할 수는 없는 일이다. 그는 “구호선단이 반이스라엘 선전에 악용될 수 있다고 생각했다면 이스라엘은 터키와 협의해 충돌 없이 구호품을 전달할 방법을 찾았어야 했다”고 지적했다. 워싱턴포스트는 “자유주의적 견해를 가진 해외 유대인들조차 받아들이기 힘든 당혹스런 상황을 이스라엘 정부가 만들고 있다”고 보도했다.

이스라엘은 가자지구를 봉쇄하고 있으나, 그로인해 오히려 국제적으로 고립·봉쇄되고 있는 것은 이스라엘이다. 아집과 오만에 싸여 이스라엘이 ‘비정상국가’가 됐다는 지적이 많다. 캐나다 작가 겸 사회운동가인 마거릿 앳우드는 하레츠에 기고한 이스라엘 방문기에서 “해일이 일어나기 전에는 동물들이 산으로 치닫고 새들도 나무 꼭대기로 날아간다는데 이스라엘 분위기가 꼭 그렇다”고 적었다.
“이스라엘에는 그늘이 져있다. 그 그늘은 팔레스타인이 아니라, 팔레스타인 사람들을 다스리는 이스라엘의 태도다. 이스라엘 자체가 가진 두려움, 비판에 귀를 닫으려는 시도들이 그늘처럼 드리워져 있다.” 유대계 프랑스 지식인 베르나르 앙리-레비는 이스라엘을 ‘자폐증’에 비유하면서 “자폐증이 정부의 정책이나 전략이 될 수는 없는 일”이라고 지적했다. 이스라엘 현대문학의 거장 데이비드 그로스먼은 가디언 기고문에서 “가자 봉쇄는 도덕적으로는 물론, 실질적으로도 실패했다”고 평가했다.

이스라엘이 남을 못살게 굴고 스스로도 동굴안에 갇히는 악순환의 고리를 벗어나는 방법이 없지는 않다. 미국, 이스라엘, 그리고 이집트는 팔레스타인에서 합법적으로 집권한 하마스 정권을 뒤집고 마무드 압바스 대통령의 파타 정권이 사실상 쿠데타를 일으키도록 조장했다. 하마스는 그에 반발해 파타와 유혈충돌을 벌인 뒤 2007년 가자를 장악했다. 이스라엘이 팔레스타인의 내정에 끼어들어 멋대로 주무르려 한 것이 화근이었다.
이집트는 하마스 식의 민중봉기가 자국에 전염될까 겁내 가자 목죄기에 동참했다. 미국은 말 잘 듣는 압바스를 구슬러 이스라엘과의 협상 자리를 만드는 형식적 중재에만 급급해 했다. 하레츠는 “이스라엘이 이제는 진짜로 간섭을 그만둬야 한다”며 당장 가자 봉쇄를 푸는 것이 이스라엘과 국제사회를 다시 이어주는 길이 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728x9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