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기가 보는 세상

중국 "이 참에 그리스를 잡아라"

딸기21 2010. 6. 9. 18: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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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를 잡아라.”

월드컵을 앞둔 한국의 구호가 아닙니다. 경제위기를 맞아 세계를 향해 SOS를 타전하고 있는 그리스를 이 참에 잡으려는 중국의 발빠른 움직임이 이목을 끌고 있습니다. 미국 워싱턴포스트는 8일 모두가 외면하다시피 하고 있는 그리스에 수억~수십억 달러의 투자를 준비하고 있는 중국의 행보를 소개했습니다.

그리스 정부는 이번주 중으로 아테네 남서쪽 외곽의 피레우스 항구의 관할권을 중국 거대 선박회사 코스코에 넘겨줄 계획이라고 합니다. 아테네 코밑의 물류기지가 중국 손으로 넘어가는 셈인데요. 


중국은 이미 2006년부터 그리스 측과 피레우스 임대 협상을 벌인 끝에 지난해 10월 ‘35년 장기임대’ 계약을 맺었습니다. 중국은 이 낡은 항구에 7억달러를 투자, 현대적인 시설로 바꿀 계획입니다. 중국 공산당 간부이기도 한 코스코의 웨이지아푸(魏家福)는 이미 그리스에서는 ‘캡틴 웨이’라 불리는 유명인사라고 하네요.

빚더미에 앉은 그리스 정부는 이 계약 외에도 철도서비스에서 카지노까지 국영부문을 대거 민영화하는 계획을 추진하고 있습니다. 유럽국들이 까다로운 조건을 내걸며 구제금융을 논하는 사이, 그리스와 중국 사이의 협력은 착착 진행되고 있는 분위기입니다. 


중국은 아테네 서부 황무지를 개발, 모노레일을 깔고 5성 호텔과 테마파크를 짓는 사업을 논의하고 있습니다. 중국이 그리스의 관광산업에 투자를 하는 것은, 어떻게 보면 당연한 수순인 듯도 합니다. '캡틴 웨이'라는 저 CEO가 이번주초 그리스 방송 인터뷰에서 이런 말을 했답니다. "독수리 둥지를 만들어놔야 독수리가 들어온다"고. 


그리스가 불러들이고자 하는 독수리는 바로 중국 관광객들입니다. 그리스는 전통적으로 관광수입에 의존하는 나라인데, 근래 그리스로 들어오는 관광객 중 유럽인 비중은 줄고 중국인들이 크게 늘었다고 합니다. 안 그런 나라가 세상 어디에 있겠냐마는... 휴양관광지로 유명한 지중해의 산토리니 섬은 돈 많은 중국인들이 결혼식을 올리는 이른바 ‘만다린 웨딩’의 명소로 각광받고 있다고 하고요.


사진은 본문과는 전혀 상관 없는, 남아공 더반에서 훈련하고 있는 그리스 국대... ㅎㅎ /AP



한푼이 아쉬운 그리스는 올들어 재정위기가 터지자 중국의 지갑을 여는 데에 사활을 걸고 있습니다. 감놔라 배놔라 하며 돈줄은 쉽사리 풀지 않는 유럽이나 국제통화기금(IMF)과 달리, 중국의 도움은 그리스에게 ‘신의 가호’나 다름없겠지요. 테오도로스 판갈로스 부총리는 “투자한다 해놓고 서류만 잔뜩 들이미는 월스트리트(구미 투자자)들과 달리 중국인들은 진짜 거래를 한다”며 “그리스 경제에는 중국이 실질적인 도움이 된다”고 말했습니다.

중국 입장에서 그리스에 대한 투자는 세계를 잇는 물류망 사업이라는 큰 틀에서 진행되는 계획의 일부랍니다. 피레우스 항구는 중국의 공장들과 유럽, 북아프리카의 소비자들을 잇는 다리가 될 전망입니다. 

중국은 '아프리카의 앙골라에서 남미의 페루까지' 전세계의 인프라 구축사업을 사실상 주도하고 있습니다. 자원을 중국으로 끌어들이고 중국산 상품을 세계로 실어나르기 위한 이른바 ‘신 실크로드’ 계획인 셈이죠. 워싱턴포스트는 그리스가 중국의 지중해 해상기지가 될 것이라고 내다봤습니다.

이렇게만 보면 중국과 그리스 모두에 '윈-윈'인 것처럼 들리지만, 세상이 어디 그런가요.

유럽 전역에는 ‘싸구려 중국산의 쓰나미’에 대한 공포와 반발심이 퍼져 있습니다. 그래서 프랑스를 비롯한 여러 나라들이 자기네 인프라나 주요 산업에 중국이 손 대는 걸 꺼리지요. 미국이 아랍권의 자국 인프라 투자에 제동을 걸었던 것처럼.

그리스 안에서도 반발이 없지 않습니다. 당장 그리스의 노조들은 중국이 인프라 요소요소를 장악해 노동조건을 악화시킬 것이라며 반대하고 있습니다. 피레우스를 중국에 빌려주기로 하면서 그리스 정부는 항만인력 500명 가량을 이미 중국 하청업체 노동자들로 교체했습니다. 중국 하청업체들은 노조 결성을 못 할 정도, 직원 20명 이하의 소규모로 이뤄져 있다는군요. 

그리스 정부는 밀려난 항만노조원들에게는 연금과 위로금을 주어 달랬다고 합니다. 하지만 항만노조연합 지도자 니코스 크수라피스는 “노동자들을 팔아치우는 것은 그리스의 미래를 위한 해법이 아니다”라고 지적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