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의 부국(富國)은 섬이다?
‘만년 1위’ 룩셈부르크는 널리 알려진 유럽의 부자나라이고, 2위를 초강대국 미국이 차지한 것도 이상할 게 없지만 3위부터는 생소한 이름들이다. 이 랭킹은 독립국가가 아니더라도 ‘독립채산제’로 운영되는 세계 각 지역들까지 모두 포괄하고 있기 때문에 이런 일이 생겼다. 비밀은 ‘세금’에 있다. 영연방 산하 섬 지역이나 카리브해의 소국과 같이 투기자본의 조세회피처로 이용되는 지역들이 대거 상위권에 들어갔기 때문이다. 헤지펀드가 부국 순위를 바꾼 셈이다.
대표적인 케이스는 지난해 1인당 GDP 4만달러를 기록, 3위에 오른 건지(Guernsey)와 5위의 저지(Jersey). 두 지역은 모두 영국 해협에 있는 섬으로, 영연방 ‘행정령’에 해당된다.
건지는 주섬인 건지섬과 사크섬, 험섬 등 몇개의 섬으로 이뤄져 있다. 수도는 건지섬에 있는 세인트 피터포트. 면적은 섬들을 모두 합쳐도 78㎢ 밖에 안 되고, 경작 가능한 땅도 없다. 인구는 6만5000명. 이 나라(?)가 부국으로 떠오른 것은 순전히 세계화 덕분이다. 지난해 건지 GDP의 55%가 은행, 펀드매니징, 보험 등 금융분야에서 산출됐다.
건지와 인접한 저지도 넓이 116㎢의 작은 섬이다. 상황은 건지와 비슷하다. 이미 1990년대 중반부터 헤지펀드들의 낙원으로 떠올랐고, 전체 수입의 60% 이상이 금융자본에게서 나오고 있다. 1인당 GDP가 국민 실생활을 제대로 반영치 못하는 숫자에 불과하다는 지적도 있긴 하지만, 금융기관 사무소들이 들어서고 나서 이 섬의 관광수입도 덩달아 올라갔다. 지난해 GDP의 24%는 관광수입에서 나온 것.
영국령 버진군도와 버뮤다, 케이먼군도 등 카리브해 섬들도 마찬가지다. 인구 4만4000명에 넓이 262㎢의 케이먼군도에는 지난 98년 이래 무려 4만개의 회사가 사업자등록을 했다.
그중 600여개는 은행과 금융회사로, 이들이 신고하는 연간 소득이 5000억달러에 이른다. 이곳 행정청은 직접세를 전혀 매기지 않는다. 때문에 계좌추적이나 막대한 세금을 피하려는 자본가들이 이 곳으로 몰리면서 관광수입이 올라간 것은 물론이고, 호화사치품 면세시장으로도 각광을 받게 됐다. 이런 섬들은 선진7개국(G7)에 속하는 캐나다(15위), 영국(19위), 일본(21위), 프랑스(23위), 독일(24위), 이탈리아(30위)를 제치고 랭킹 선두권을 형성하고 있다.
★ 세계의 부자나라들 중에 조세회피처만 있는 것은 물론 아니다. 작다는 점을 이점으로 활용, 높은 수익을 벌어들이는 진짜 부국도 많다. 면세 혜택과 멋진 풍광으로 관광업을 살리거나, 외국자본을 대거 유치해 진짜 부자동네로 꼽히는 곳으로 유럽의 산마리노와 안도라, 카리브해의 버뮤다와 아루바 등을 꼽을 수 있다.
면적은 61㎢에 불과하지만 1인당 GDP(국내총생산)는 3만4600달러로 세계 8위다. 수입의 대부분은 관광산업에서 나온다. 연간 이 곳을 찾는 관광객은 300만명. 전체 인구(2만9000명)의 100배가 넘는 손님이 이 나라를 찾는 셈이다. 이탈리아로부터 생필품과 식량 대부분을 수입하고 있지만 산마리노 국민들의 생활수준은 이탈리아보다 훨씬 높다.
아일랜드와 영국 사이의 해협에 위치한 맨 섬은 조세회피처로서의 이점을 진정한 경제성장으로 연결시킨 케이스. 이 섬에 중앙정부는 없고, 24개로 나뉜 지역들이 자치를 하고 있다. 이들 자치단체들은 아일랜드와 영국은 물론이고 유럽으로부터 하이테크 기업들을 대거 유치, 면적 572㎢의 작은 섬을 첨단산업 중심지로 변모시켰다.
‘마(魔)의 삼각지대’로 유명한 카리브해의 버뮤다는 영연방에 속한 섬. 전체 수입의 80%는 미국인 관광객의 지갑에서 나오지만, 최근 몇년새 국제금융기관들의 집결지로도 명성을 날리고 있다. 네덜란드령 아루바도 북미와 유럽에 소문난 천혜의 관광지다. 1980년대 중반부터 관광붐이 일어 호텔과 휴양시설 건설이 이어졌고, 자본 유입이 급증했다. 최근에는 정유시설과 석유저장고를 유치해 에너지산업국가 명단에도 이름을 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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