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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프리카의 내일을 가다/ (2) 성장과 혼란의 도시들

딸기21 2010. 5. 2. 11: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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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이지리아 경제중심도시인 라고스는 사하라 이남 아프리카에서 가장 큰 도시 중 하나다. 인구 1000만명이 넘는 이 거대도시는 세계 어느 도시와 비교해도 손색 없을 위용을 자랑하고 있었다. 상업중심지인 빅토리아 아일랜드의 레키 지구에는 정부가 택지를 개발, 고급 주택가를 짓고 있었다. 정원에 수영장이 있는 2층, 3층짜리 고급 주택들이 즐비하고, 대문 앞에는 사설 경비원들이나 집주인의 돈을 받은 현지 경찰관들이 경비를 서고 있었다.


뛰는 물가, 막히는 거리

레키 지구 한쪽에 위치한 샵라이트. 서울의 대형 쇼핑몰들처럼 크진 않지만 멀티플렉스 영화관과 서점, 상점들을 갖춘 쇼핑몰이다. 그 안의 대형마트에서는 값비싼 수입 식료품들을 팔고 있다. 이달 초 가봤을 때 망고주스 1000ml 하나가 1300나이라(약 1만원)였다. 


오일달러가 넘쳐나는 석유부국인데, 부패와 행정 실패로 전력은 모자란다. 그렇다보니 제조업 발달이 늦어 생필품도 모두 외국에서 사들인다. 물가는 천정부지로 치솟았다. 전국적인 소득수준은 매우 낮지만 라고스 부자들의 씀씀이는 선진국 못지않은 듯했다. 


레키 입구에 중국 회사가 지었다는 ‘오리엔탈 호텔’이 얼마 전 새로 문을 열었다. 그 앞에서는 민간자본을 들여 도로를 닦고 있다. 톨게이트 짓는 작업이 한창이었다. 운전사들은 “길을 다니는데 돈을 내라고 하면 어떡하냐”며 라고스 주 정부의 민자유치 정책에 불평을 했다.

나이지리아 라고스 시내 빅토리아 아일랜드의 고급 주택가.
석유 달러가 넘쳐나면서 라고스 곳곳에 고급 주택들과 고층 아파트들이 들어서고 있다.


라고스 시내 빅토리아 아일랜드의 한 쇼핑몰. 냉방이 잘 된 쇼핑몰에선
스페인 의류체인 망고를 비롯한 외국 브랜드들이 손님을 맞고 있었다. 


아프리카 각국은 자원과 농산물 등을 팔아 개발·성장을 추진하느라 여념이 없다. 돈이 들어오는 곳에서는 흥청대는 소비와 건설 붐, 부동산 상승이 패키지처럼 따라다닌다. 하지만 빈부격차, 환경오염, 부패, 질병, 이주자 문제 등 개발 과정에서 일어나는 모든 혼란들도 동시에 벌어지고 있다. 


자동차들이 넘쳐나는 라고스 거리는 경제개발의 부산물인 혼돈을 그대로 보여주는 듯했다. 일본차들과 한국차, 유럽차들 사이로 오카다(오토바이 택시)가 이리저리 비집고 다녔다. 교통체증은 일상이고, 역주행은 기본이다. 신흥 석유부국답게 돈 돌아가는 분위기가 역력했다. 주택 임대료가 턱없이 올라 방 3개짜리 아파트 2년 임대료가 2억원선이라고 했다. 그러나 아무리 좋은 집도 하루에 몇 번씩 전기가 나가 발전기를 돌려야 하는 형편이다. 


라고스에서 13년째 살고 있는 교민 조홍선씨는 “10년 전만 해도 아프리카 문화가 바뀌려면 한 세대는 걸릴 거라고 생각했는데 요 몇 년 낙관적으로 바뀌었다”고 말했다. 조씨는 “예전에는 길을 닦으면 6개월 만에 다시 망가졌는데, 새로 짓는 도로는 규정을 지켜서 제대로 짓고 있다”면서 “뭔가가 되어가는 분위기”라고 전했다. 아직 부패가 심한 것은 사실이지만 변화가 느껴지고 있고, 세계 최악으로 꼽히는 라고스의 치안도 조금씩 나아지고 있다고 했다.


라군(석호)을 사이에 두고 바라본 코트디부아르 아비장의 스카이라인.


코트디부아르 아비장 근교 리비에라의 신흥 주택가.
아비장 부근에는 들판을 없애고 현대식 주택을 짓는 택지개발 사업이 한창이었다.


코트디부아르 아비장 시내 존꺄트르의 상점가.
레바논계 상인들이 운영하는 한국 자동차판매점을 비롯해 외국차 판매점과 쇼핑센터가 들어서 있다.


라군(석호)을 따라 이어진 코트디부아르 아비장의 산책로는 잘 꾸며진 화단과 쓰레기더미가 번갈아 나와 들쭉날쭉 행정을 입증해보이고 있었다. 행정·상업지구인 플라토로 가는 도로는 출퇴근시간 내내 극심한 교통체증이 벌어졌다. 외국인들이 많이 거주하는 존꺄트르(4지구)에는 메르세데스벤츠, 아우디 등 고급 외제차 숍들이 즐비했다. 식민통치에서 벗어난지 50년이 지났지만 최근까지도 이 나라 경제는 프랑스인들이 주도하고 있었다.

하지만 한때 6만명에 이르던 프랑스인들은 2002년 남북 간 유혈사태 뒤 많이 빠져나가 지금은 1만5000~2만명만 남아있다. 한국 대기업들도 아비장에 지사를 두었다가 일제히 철수시켰다. 그 빈자리를 메우는 것은 레바논계 이민자들이다. 19세기부터 이주해와 오래도록 공동체를 형성하고 있는 레바논계가 도소매업과 부동산의 70%를 장악하고 있다고 했다.

돈은 도는데 일자리가 없다

근래엔 아프리카 어디에나 중국인들이 넘친다. 나이지리아에 중국인이 얼마나 들어와 있는지는 아무도 정확히 몰랐다. 공식적으론 10만명 정도라고 하지만 “30만명은 될 것”이라고 추산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자원이 없지만 교역이 활발한 코트디부아르에도 중국인들이 1만명 이상 들어와 있다. 중국 국영 에너지회사들이 코트디부아르 정유회사와의 합작을 추진하고 있는데, 계약만 성사되면 만 명 넘게 더 들어올 것이라고 했다. 중국 식당을 운영하는 한 화교는 “기업 하나 들어오면 (중국인이) 몇천명씩 오니까 우리야 좋지”라면서 중국 바람을 반겼다.



코트디부아르 아비장의 시외버스 터미널에 아침부터 사람들이 몰려들어 버스를 기다리고 있다.
화물용 철도를 제외하면 내륙으로 가는 교통수단은 시외버스 밖에 없어 북새통을 이룬다.


코트디부아르 아비장의 아자메 거리. 서민들이 몰리는 중심가의 아자메는
도로 포장도 돼 있지 않아 지저분하고 어수선했다.


90년대 내전의 상처를 씻고 고속성장 중인 르완다도 개발과 그에 따른 혼란을 고스란히 겪고 있다. 까치루 등 수도 치갈리(키갈리)의 중심가에는 컨벤션센터 등 고층건물을 짓는 공사가 한창이다. 컨벤션센터에는 중국 자본이 참여하고 있는데 2012년 완공될 예정이다. 


2004년 기준 도로포장률이 14%에 불과한 이 나라에서는 도로 포장공사도 곳곳에서 진행되고 있다. 아직 외국 회사들이 직접 진출해있지는 않지만, 자동차에 대한 치갈리 사람들의 욕망은 대단하다. 주변 우간다, 탄자니아를 거쳐 수입해온 일본·유럽·한국차가 새까만 연기를 뿜으며 달린다. 


루헹게리, 부타레 등 지방을 오가는 시외버스 터미널 부근은 차와 사람이 뒤엉켜 아수라장이다. ‘치갈리의 강남’ 격인 야루타라마에는 고급 주택들이 들어서고 있다. 외국인들과 현지 부자들이 사는 이 일대 고급아파트의 월 임대료는 200만~300만원 선이다. 교민 이충성씨는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집값이 치솟는 중”이라고 말했다.


문제는 개발의 혜택이 철저하게 편중돼 있다는 것이다. 자원을 팔아 손쉽게 번 돈으로 부패한 기득권층이 배를 불리는 사이, 산업발전은 늦어지기 십상이다. 


서아프리카 최대 물동량을 자랑하는 라고스의 알파파 항구에는 컨테이너선들이 쉬지 않고 움직인다. 하지만 그 안에 실린 것들 중 나이지리아 혹은 주변 아프리카 국가들에서 스스로 생산·수출하는 것은 거의 없다. 모두 중국 등지에서 실어온 저가의 수입품이나 아시아·유럽에서 가져오는 중고 물품들이다.

공식 통계에 따르면 나이지리아 국내총생산(GDP)의 33.4%는 농업, 34.1%는 제조업, 32.5%는 서비스업에서 나온다. 하지만 제조업 발전은 실제로는 더디기만 하다. 


알파파 항구에 늘어선 거대한 제분소와 음료수 병입 공장 정도다. 공식 실업률은 4.9%(2007년 기준)이지만, 이 수치를 대면 모두가 웃는다. 교민들은 “대졸자들 중 제대로 된 직장에 정식 취업하는 사람은 다섯 명 중 1명도 안 될 것”이라고 말했다. 힘들게 일자리를 얻은 대졸 신규취업자들의 월급은 4만 나이라(32만원) 정도인데, 라고스 시내 무선인터넷 이용료만 해도 한달에 1만 나이라다.


아델 꾸암미(30)는 코트디부아르 중부 아보보도키 태생이다. 아델은 아비장 국립대학 영문과 대학원까지 나왔지만 일자리를 아직 구하지 못했다. 아델의 남편은 컴퓨터 엔지니어링을 전공했는데 역시 아직 고정수입이 없다. 부부는 허드렛일이나 다름없는 일로 월 평균 10만세파(약 25만원)를 번다. 그 중 5만세파는 집세로 나간다. 


아델의 동창 마게리트는 버진항공 카운터 일을 하고 있다. 역시 아비장 대학을 나온 발리 보두앵은 외곽의 고아원에서 일하고 있고, 알퐁소는 외국 기관 운전기사로 근무한다. 집안 좋고 운 좋으면 젊은 나이에 장차관도 할 수 있지만 그렇지 못하면 실업자 신세다. 모든 것이 연줄로 이뤄진다. 한 마을에서 한 사람이 출세하면 그 마을 전체를 먹여 살려야 한다. 일자리를 얻지 못하는 젊은 세대의 좌절감은 몹시 컸다.

아비장·라고스·키갈리|구정은·이청솔 기자 ttalgi21@kyunghyang.com


부패 못 잡으면 발전은 없다

몇 해 전 아프리카 중부의 차드 정부가 유엔 등으로부터 받은 원조자금의 실제 집행 과정을 알아보기 위해 보건 예산의 전달 흐름을 추적한 적이 있다.

그 결과 중앙정부에서 나간 예산 중 실제 지방 보건소로 전달된 금액은 단 1%에 불과하다는 사실이 드러났다. 그 뒤 차드 정부는 석유수출 이익을 효과적으로 쓰기 위해 유엔과 손을 잡고 위탁관리기구에 모든 것을 맡겼다. 관료기구의 ‘부패의 사슬’을 끊고 개발 이익을 고르게 배분, 국가 전체의 발전을 꾀하기 위한 조치였다.



상황이 나아지고 있다고는 하지만, 아프리카가 겪는 빈곤의 가장 큰 원인은 여전한 부패라고 주민들이나 교민들이나 학자·관료들이나 입을 모은다.

과거엔 국제기구나 서방 국가들이 내주는 원조가 부패한 관료들의 먹이였지만 지금은 자원 수입이 더 큰 먹잇감이다. 나이지리아처럼 자원이 많고 덩치가 큰 나라는 어떤 나라들보다도 부패한 자들이 챙겨갈 몫이 많고, 그렇기 때문에 국민들이 치러야 할 부패의 비용도 크다.


부패를 없애기 위한 시도도 없지 않지만 성공사례는 드물다. 케냐의 므와이 키바키 대통령은 2002년 집권 뒤 국제투명성기구 케냐본부 사무총장으로 일했던 존 지통고를 등용해 부정부패 척결을 맡겼다. 하지만 국제기구 원조자금 횡령을 잇달아 적발한 지통고는 석연찮은 이유로 중도에 쫓겨났다.

가나의 재무장관을 지낸 크웨시 보치웨이는 1980년대 프랑스 원조기구에서 대규모 원조 약속을 받아냈다. 그러나 동료들은 그를 반기지 않았다. 모두들 보치웨이가 원조를 따오는 과정에서 엄청난 자금을 챙겼을 거라고 의심, 오히려 각료들 사이에 분란이 일어난 것이었다.

당시 가나 대통령이던 제리 롤링스의 조카가 무단으로 국가 예산을 주무르자 화가 난 보치웨이는 결국 정부 개혁을 포기하고 사임했다. 케냐의 지통고와 가나의 보치웨이는 그 이래로 지금까지 해외 체류 중이다.


영국 이코노미스트 아프리카 특파원을 지낸 로버트 게스트는 올루세군 오바산조 대통령 시절인 2003년 나이지리아 재무장관에 취임한 여성각료 응고지 오콘조 이웰라가 라고스 국제공항에서 비행기를 타기 위해 줄을 서 있는 걸 보고 “이 나라에서 고위관리가 일반인들처럼 줄을 서 있는 모습은 처음이었다”고 찬사를 보낸 바 있다.

이웰라 장관은 재직 때 살해 협박까지 받으면서도 각 주 정부에 할당하는 예산을 전면 공개, 신선한 충격을 줬다. 2004년 중앙은행장이 된 소장 경제학자 찰스 솔루도는 금융산업 구조조정을 강행, 뇌물로 영업허가를 받아 방만하게 운영하던 64개 시중은행을 폐쇄·합병해버렸다.


 하지만 국민들 반응은 여전히 합격점과는 거리가 멀다. 오바산조 정부는 외국 원조를 받으려고 부패를 고치는 시늉만 했을 뿐, 이룬 것은 아무것도 없다는 것이다.

실제 오바산조의 딸이 부패혐의로 기소된 적도 있다. 한 교민은 “민선대통령 오바산조와 이전의 군부독재자 간 차이점이 있다면 군부독재자는 노골적으로 대놓고 챙겼다는 점, 오바산조는 눈치를 보며 챙겼다는 점 뿐”이라고 말했다. 오바산조는 2007년 퇴임했지만 여전히 나이지리아를 좌지우지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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