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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프리카의 내일을 가다/ (1) 희망에 들뜬 아프리카

딸기21 2010. 4. 27. 09:27
남아프리카공화국에서 열리는 월드컵 대회가 한달 여 앞으로 다가왔다. 아프리카 대륙에서 처음으로 열리는 월드컵이다. 지난 15일 남아공 요하네스버그 샌턴 신시가지의 월드컵 입장권 판매소 앞에는 티켓을 구하기 위해 밤을 꼬박 새운 사람들이 이른 아침부터 줄을 이었다.

전날 아침 9시에 와 24시간 동안 줄서서 기다린 끝에 결국 표를 쥐고 기뻐하던 타보(22)는 “역대 최고의 월드컵이 될 것”이라며 “남아공에는 아주 좋은 기회가 될 것”이라고 기대했다. 남의 나라에서 열리는 잔치만 구경했던 가나인 이민자 딘 달라스는 “우리 팀이 곧 온다”며 들뜬 기분을 감추지 못했다. 그는 “월드컵 기간에는 여러 경기장에서 아프리카 출전국들의 문화를 보여주는 박람회가 열린다”며 “이번 월드컵은 아프리카 전체의 행사”라고 강조했다.






이번 월드컵은 남아공 뿐 아니라 아프리카 전체에 자랑거리이자 희망의 상징이다. 마침 올해는 1960년 아프리카를 휩쓸었던 ‘독립의 봄’ 이후 50년이 되는 해이기도 하다. 월드컵에 진출한 나이지리아, 코트디부아르, 카메룬 등 대부분의 아프리카 국가들이 올해로 독립한지 반세기를 맞은 것이다.
 
경향신문은지난 3월 말부터 한 달 동안 월드컵 준비에 여념이 없는 남아공과 서아프리카의 경제대국으로 거듭나고 있는 나이지리아, 상아와 카카오의 나라에서 민주주의 국가로의 변신을 모색중인 코트디부아르, 내전의 상처를 딛고 일어서려는 중부 아프리카의 르완다를 찾았다. 아픈 과거와 어지러운 현재를 넘어 내일로 가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아프리카의 여러 모습을 만날 수 있었다.

이번 월드컵 주경기장 격인 요하네스버그의 ‘사커시티’ 스타디움과 케이프타운의 그린포인트 경기장은 대회 개막을 앞두고 마무리 공사가 한창 진행되고 있었다. 개막전과 결승전이 열리는 사커시티는 아프리카 전통 그릇인 ‘칼라바시’를 본떠 호리병 모양으로 지어졌다. 남아공이 속한 A조 경기의 표를 사러 왔다는 조한(25)은 “남아공이 성공한다면 아프리카 다른 나라들도 할 수 있다는 뜻”이라며 지구의 오지로 여겨져온 아프리카에서 세계 전체의 이벤트가 열린다는 사실에 큰 의미를 부여했다.

실제로 아프리카 전체가 기대감에 들뜬 분위기였다. 프랑스 식민지 시절 상아와 노예들을 실어날랐던 서아프리카 코트디부아르의 아비장. 초대 대통령의 이름을 딴 우푸에 부아니 스타디움(축구장)이 위용을 자랑한다. 도시를 둘러싼 석호 옆 공터에선 소년들이 무더위 속에서 공을 차고 있었다. ‘국가적인 자랑거리’인 디디에 드로그바의 뒤를 좇아 미래의 축구스타를 꿈꾸는 소년들이다.

나이지리아 라고스 시내 슐레레에 있는 국립경기장 옆에서도 망고나무를 울타리 삼아 아이들이 축구경기를 한창이었다. 열 두어살의 어린 소년들이지만 모두 미래의 대표선수를 꿈꾸며 요하네스버그의 개막식을 기다리고 있었다.


요하네스버그·아비장·라고스 | 구정은·이청솔 기자 taiyang@kyunghyang.com



축구공과 함께 튀어오르는 희망


남부 아프리카 최대 도시이자 남아공의 ‘경제 수도’인 요하네스버그는 부산했다. 지난 12일 올리버 탐보 국제공항에서 시내로 들어가는 길은 월드컵 준비에 여념이 없는 남아공의 모습을 그대로 보여주었다. 아프리카 첫 대회에 대한 바깥 세상의 불신을 반박이라도 하듯 “준비가 끝났다”, “세계적 수준의 개최 도시”라는 표어들이 거리를 뒤엎었다.

흑인정권이 들어선 뒤 새로 형성된 샌턴의 신시가지에서는 고속 경전철 ‘하우트레인’ 1단계 공정이 마무리 단계에 들어섰다. 5월 중 올리버 탐보 국제공항에서 샌턴을 잇는 1단계 철로가 개통되고 내년 3월 이전에 행정수도 프리토리아까지 연결하는 2단계 공사가 완공된다. 멀리 남서부의 케이프타운에서 요하네스버그, 프리토리아를 거쳐 짐바브웨 국경까지 이어지는 남아공의 ‘대동맥’ N1 고속도로도 곳곳에서 확장 공사가 벌어지고 있다.

# 통합지향하는 월드컵

과거 백인정치세력들의 거점이었고 지금도 남아공의 정치 중심인 케이프타운 역시 손님맞이 준비에 한창이었다. 케이프타운 국제공항은 조만간 확장공사가 끝나면 거대공항으로 변신한다. 연간 400만명이던 수용능력을 연간 1400만명으로 늘리기 위해 공사비 23억랜드(약 3450억원)를 들였다. 현지 일간지 아그레스는 “리노베이션이 끝나면 아프리카 최고의 공항이 될 것”이라고 자랑한다.

요하네스버그 사커시티 경기장과 케이프타운의 그린포인트 경기장도 각각 확장·신축 공사를 끝내고 재개장을 앞두고 있다. 사커시티는 남아공 사람들에겐 각별한 의미를 지닌 곳이다. 1990년 넬슨 만델라가 감옥에서 석방된 후 처음으로 대규모 군중집회가 열렸던 곳이기 때문이다. 이웃한 소웨토(SOWETO) 는 아파르트헤이트(흑백분리) 시절 흑인들이 강제로 쫓겨나 형성된 마을이다. 지금은 요하네스버그 인구의 40%가 소웨토에 거주하고 있다. 소웨토와 사커시티는 남아공 현대사의 아픈 기억을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는 곳인 셈이다.


20년 전 만델라를 환영하며 몰려든 흑인들의 심장이 뛰었던 사커시티는 이제 흑백 통합의 마당으로 거듭나려 하고 있다. 요하네스버그 대학 회계학과 대학원에 다니는 한 흑인 여학생은 “그동안 남아공에서 축구는 흑인 스포츠, 럭비와 크리켓은 백인 스포츠라는 인식이 강했는데 월드컵이 우리를 하나로 만들어 줄 것”이라고 말했다. 

라고스 시내를 장식하고 있는 월드컵 광고판. 남아공 기업으로 아프리카 일대를 장악하다시피한
이동통신회사 MTN의 선전물들이다. 

 
‘검은 대륙’으로 남아있던 아프리카는 지금 세계를 맞을 채비를 하고 있다. 프랑스 식민주의자들이 상아와 노예를 실어날랐던 서아프리카의 상아 해안으로 가보자. 이름 그대로 ‘상아 해안(Cote D'Ivoire)’이라는 뜻인 코트디부아르는 나이지리아와 함께 서아프리카의 중심 국가 중 하나다. 


코트디부아르 최대 도시인 아비장은 인구 500만명의 대도시로, 민물과 짠물이 뒤섞인 라군(석호)을 끼고 고층건물들이 늘어서 있었다. 레바논계 이민자들의 돈으로 지은 커다란 모스크들이 높이 솟은 첨탑을 자랑하고, 역시 레바논계가 운영하는 현대적인 쇼핑몰에는 수입산 물품들이 즐비했다.

# ‘공차는 아이들’의 꿈

아프리카에 스포트라이트가 쏟아지자 자부심과 함께 희망을 얘기하는 젊은이들이 많았다. 아비장에서 만난 아델 꾸아미(30)는 “우리는 경제적으로나 문화적으로나 많은 잠재력을 갖고 있다”면서 “세계에 아프리카의 가능성을 보여줄 기회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아델은 “아프리카도 이제 ‘세계’에 끼어야 한다”면서 빈곤과 내전의 어두운 이미지가 아닌 새로운 이미지로 아프리카가 다시 태어날 계기가 돼야 한다고 말했다. 


아비장대학 법학과 2학년 도소 페리마(22)도 “우리나라에서 열리는 것은 아니지만 아프리카가 발전하고 있다는 걸 보여주는 것 같아 자랑스럽다”면서 “경제가 발전하는 데에 도움이 됐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라고스 국립경기장 앞에서 공 차는 아이들. 유니폼은 제각각이고 너덜너덜하지만
열 두어살 된 아이들이 뒤로 넘어져서도 시저스킥을 찬다!


사하라 이남 아프리카에서 가장 많은 1억5000만명의 인구와 362억 배럴(세계 10위)의 석유자원을 가진 나이지리아의 경제수도 라고스. 곳곳에 고층건물들이 올라가고 도로를 새로 닦느라 도시 전체가 거대한 공사장 같았다. 가로등마다 “2010년 우리는 하나가 된다”는 광고판이 붙어있다. 젊은이들은 “아프리카를 알릴 기회”라 입을 모았다. 한국과 같은 조에 속한 나이지리아에선 “한국의 축구 실력이 무섭다”고 엄살을 떠는 이들을 쉽게 만날 수 있다.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EPL) 유명클럽 첼시의 파란 유니폼을 입고 국립경기장 앞에서 공을 차던 소년 마이클 투볼샤(12)는 크리스티아누 호날두와 나이지리아 출신 스타 카누를 좋아한다고 했다. 가슴에 ‘삼성(SAMSUNG)’이라는 글자가 선명한 유니폼을 입은 마이클에게 꿈이 뭐냐고 물으니 몹시 수줍어하면서 “만유”라고 말한다.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의 선수가 되는 것이 이 소년의 장래 희망이다. 

마이클은 월드컵이 아프리카에서 열리는 것이 자랑스럽고, 또 ‘가깝게 느껴져서’ 좋다고 했다. 지단, 호날두, 에시엔 등의 이름이 새겨진 유니폼을 입은 소년들이 공을 향해 달렸다. 마이클 팀은 첼시 유니폼이고, 상대편에는 맨유와 리버풀 등의 붉은 셔츠가 섞여 있다. 아직은 통일된 유니폼도 없지만 소년들의 꿈만은 세계로 향해 있다.

월드컵 본선에 진출하지 못했더라도, 가난한 나라에서 맨몸으로 즐길 수 있는 거의 유일한 스포츠가 축구다. 지난 17일 비포장 도로를 2시간 넘게 달린 끝에 도착한 르완다 북부주 가챙예 지역 커피농장의 아이들은 바나나잎으로 만든 공 하나로 축구시합을 하고 있었다. 전기도 제대로 들어오지 않는 지역이지만 좋아하는 팀을 묻자 “잉글랜드” “맨유”라며 월드컵이 열리는 것도 알고 있다고 입을 모았다. 

EPL의 명성은 이런 궁벽한 곳에까지 파고들었다. 수도 치갈리(키갈리) 중심 키요부 지역의 대형 쇼핑몰 ‘나꾸마트’나 부촌 야루타라마의 MTN 센터 등에서는 커피숍, 음식점에 사람들이 몰려들어 대형 텔레비전으로 EPL 경기를 함께 관람했다. 골이 들어갈 때마다 환호성이 터져 나왔다. 


요하네스버그·아비장·라고스·키갈리|글·사진= 구정은·이청솔 기자 ttalgi21@kyunghyang.com



월드컵, 남아공에 무엇을 남길까

남아프리카공화국 무역산업부(DTI)는 월드컵을 통해 남아공 경제에 약 213억 달러(23조6000억원)의 자금이 유입될 것으로 보고 있다. 약 127억 랜드(12조9000억원)의 직접 소비 창출효과와 15만9000여개의 신규 일자리 창출을 기대하고 있는 것이다.

DTI 관계자는 300만명 이상의 관광객이 월드컵 기간 동안 남아공을 찾을 것으로 예상하면서  “관광산업이 활황을 맞을 것이고 토목·건설 인프라스트럭처에 대한 대규모 투자도 기대할 수 있다”고 밝혔다.

DTI는 그러나 이런 직접적인 효과보다도, 해외에서 남아공의 이미지가 개선되는 것이 경제에 미칠 간접적 효과가 더 클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DTI 관계자는 “아프리카와 남아공에 대한 외국인 투자자들의 인식을 바꾸는 데 도움이 될 것”이라며 “이로 인해 앞으로 지속가능한 경기상승 효과가 나타날 것”이라고 말했다.

집권당 아프리카민족회의(ANC) 산하 진보기업포럼의 달 스와인폴 의장은 특히 인프라 개선 효과를 강조했다. 월드컵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도로망이 업그레이드되고 공항이  신축·확장됐으며 브로드밴드나 위성 디지털TV 보급이 늘고 대중교통체계도 개선됐다는 것이다.

스와인폴 의장은 “월드컵의 경제적 효과는 월드컵이 끝난 후에 어떤 자산들이 남아있는지에 초점을 두고 살펴봐야 한다”며 “모든 남아공인들이 환상적인 인프라를 누릴 수 있게 됐다”고 말했다. 그는 “수십만 여행객을 맞기 위해 지은 호텔들이 두달 뒤에 무용지물이 되는 것은 아니다”라며 “월드컵의 효과는 최소한 10년을 갈 것”이라고 덧붙였다.

하지만 시끌벅적한 건설 붐 이면에서 빈민가 강제철거 같은 부작용이 일어나고 있다는 지적도 많다. 서울, 베이징, 시드니 등 올림픽을 치른 대도시들이 거대 이벤트를 앞두고 폭력적인 빈민가 철거작전을 벌였듯 요하네스버그에서도 빈민들이 떼밀려나가고 있다는 것이다. 영국 선데이타임스는 얼마전 “남아공 당국이 월드컵 대회를 앞두고 주요 대도시에서 빈민가를 때려부수고 있다”고 보도했다. 집권 ANC는 ‘환상적인 인프라’를 강조했지만, 도시 빈민이나 짐바브웨 등지에서 들어온 불법이주 노동자들이 ‘국가의 적’ 취급을 받으며 내팽개쳐지고 있는 것이다.

요하네스버그 주요 축구경기장 중 하나인 엘리스파크 경기장 부근 빈민가에서는 지난 24일 여성과 어린이들이 ‘붉은 개미’라 불리는 철거용역반의 폭력에 밀려 비명을 지르며 쫓겨났다. 빈민들이 얼기설기 지은 집들은 무너진 벽돌더미로 변했다. 철거용역반은 가재도구를 불태우며 빈민들에게 이를 지켜보게 했다.

‘붉은 개미’들은 정부 용역으로 궂은 일을 하는 사람들로, 빨간 제복과 모자를 착용하고 있다. 대부분 외국인 노동자들을 적대시하는 서민층에서 충원된다. 인권단체들은 “과거 백인정권이 가난한 백인들을 부추겨 흑인들에 대한 증오심을 키웠듯 이제는 흑인정권이 일자리 없는 서민들을 부추겨 외국인 노동자들이나 최하층 빈민들을 미워하게 만들고 있다”고 비판한다.

이청솔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