킬리만자로 역
암보셀리 평원에선 사자도 우리라고 생각했다
아침이면 오래된 가구 같은 구릉들 사이에서
아무렇게나 깨어나도 수數가 고스란했다
강에 대한 기억으로 오지 않는 강을 기다릴 때조차
태평스레 코가 길어지고
해 떨어지듯 가만히 코를 내려 사자 등을 토닥거려주었다
해발 육백 미터 이상은 코끼리가 없다는데
그 보다 조금 높은 슬픔이면 어때
새끼 하나에 하나씩 코를 꾸려
자꾸 자꾸 산 위로 오르면
사냥꾼이 코끼리를 찾아오는 입구는 낙일 落日 옆에 있으리라
녹은 눈 두둘두둘 내려오는 산등성에 은신한 코끼리
하산 못하는 마음을 아는 우리만 모여 산등성에 서면
발의 슬픔은 평지를 달리는 기분에 젖고
귀의 슬픔은 산 아래까지 먹먹하게 날개를 퍼덕이고
눈의 슬픔은 긴 계곡의 도면을 펼치지
그러니 초원에 대한 기억은 우리가 아닌 인간에 대한 기억
산 위로 끌어올리지 못한 새끼코끼리들을 쓰러뜨린 것은
총알이라기보다는 슬픈 인간의 눈알
들판을 울리는 네발짐승들의 발소리를
세상모르는 아기코끼리 어린 귀가 들어도 괜찮을까
귀 큰 메아리가 홀로 내려가서 듣고 오는 세상
그 속으로 간혹 늙은 자취를 감추는 코끼리 빼고는
아카시아나무처럼 킬리만자로코끼리의 발은 땅을 울리지 않고
잠겨 있다
회오리바람이 멀리서 연기를 뿜으며 달려오는 역
알 길 없는 길
레일 없는 추운 킬리만자로 역으로 오는
코끼리의 코를 덮어쓴 기차들은 어디로 어떻게 가나
밀렵꾼이 없는 날에도 산을 내려가지 않는 코끼리의 발소리
마음속 지평선을 걸어가는 얼어붙은 발소리의 역
- 황학주 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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