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중 한 카카오 농장에 들렀다. 수확철이 아니어서 일하는 사람은 많지 않았다. 다국적 기업들의 하청업체나 현지 대지주들이 운영하는 팜 농장과 달리 카카오 농장은 대개 가족농 형태다. 아이들을 학교에 보내지 않고 농사철에 일을 시키는 경우가 많아 ‘아동노동’이라는 악명을 얻었고, 이 때문에 한동안 카카오 수출에 지장을 받기도 했다. 7~9월 한 차례 수확을 한 뒤 11월부터 1월까지 본격적인 수확을 하고, 그 사이 ‘카카오 농한기’에는 쌀이나 카사바 등 식량작물을 키운다.
코트디부아르 아비장에서 서쪽 그랑라우 가는 길에 있는 코코넛 농장(위).
공업용·식용으로 쓰이는 팜유를 생산하기 위한 야자와 카카오 등 플랜테이션 농장들이 끝 없이 펼쳐져 있다.
아래 사진에 맨 앞쪽에 있는 것은 식용작물인 카사바이고, 뒤쪽엔 팜(야자)이 보인다.
‘석유와 카카오’
몇년 전부터 아프리카 경제 붐에 대한 관심이 부쩍 높아졌으나, 거의 천편일률적으로 ‘자원의 보고’라는 쪽에 맞춰져 있다. 그러나 나이지리아, 앙골라, 수단 등의 산유국과 광물자원을 많이 가진 몇몇 나라를 빼면 아프리카는 여전히 플랜테이션 경제에 의존하고 있다. 에너지·광물자원의 경우도 아직은 1차적인 원유·원광 생산에 그치고 있다. ‘석유와 카카오’가 아프리카를 지탱해주는 힘인 셈이다.
아비장에서 북쪽으로 올라가는 고속도로에는 목재를 실어 나르는 대형 트럭들이 줄을 이었다. 아시아의 대표적인 임업국가인 인도네시아의 경우 이미 보르네오 숲 파괴가 많이 진행돼 나왕, 마호가니, 티크 등 고급 수종(樹種)은 거의 남아있지 않다. 보르네오 섬을 공유하는 인도네시아·말레이시아 정부는 가공되지 않은 목재의 수출을 금지하며 자국 숲 자원의 부가가치를 높이기 위해 애쓰고 있다. 하지만 코트디부아르에서는 여전히 에보니(흑단) 등 고급수종이 통나무 그대로 수출되고 있다. 열대 토지는 온대지역의 토지와 달리 척박하다. 부식토가 쌓이지 않기 때문에 양분이 토양에 많이 보전되지 않는다. 그래서 나무가 사라지면 표토가 깎여나가면서 바로 황폐해진다. 플랜테이션 농장들은 나무를 심었다가 일정 기간이 지나 생산성이 떨어지면 모두 태워버리는 과정을 반복한다. 따라서 장기적으로 생산성이 계속 떨어질 수밖에 없다.
나이지리아 라고스의 엑손모빌 건물. 사람들이 '엑손 콤플렉스'라고 부르는 이 건물 단지에는
직원들의 주거시설을 비롯해 '그들만의 모든 편의시설'이 갖춰져 있다고 한다.
아프리카에서 최근 주요 경제국으로 부상하고 있는 나라들은 대개 에너지·광물자원 수출이나 세계시장 변화에 극도로 취약한 플랜테이션 작물에 의존하는 수출형 농업으로 경제를 떠받치고 있다. 나이지리아는 경제의 거의 모든 부분을 석유 수출에 의존한다. 라고스에 있는 코트라 비즈니스센터의 곽희윤 관장은 “이 나라 정치도 문화도, 모두 석유가 지배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외화 수입의 95%, 국가재정의 80%가 석유부문에서 나온다.
하지만 석유가 그만큼 이 나라 경제를 왜곡시키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손쉽게 외화를 벌어들일 수 있는 자원이 있으면 미개발국은 제조업 발전보다 자원을 퍼내는 데에만 의존하게 된다. 개발경제학자들이 ‘자원의 덫’이라 부르는 악순환에 빠지게 되는 것이다. 남부 니제르델타 유전지대에서는 석유 채굴에 따른 이익을 환수하기 위한 원주민들의 봉기가 끊이지 않는다. 정부와 반군이 평화협상을 하는 사이, 부패한 관리들과 일부 주민들은 송유관에 구멍을 내 석유를 빼돌린다. 매년 니제르델타에서 이렇게 새나가는 석유가 10억 달러 어치가 넘는 것으로 추산된다.
선진국 시장 따라 요동
국제사회가 독재국가로 지목해 압력을 가하고 있는 짐바브웨는 넌센스에 가까운 인플레와 금수조치로 생필품·식량부족을 겪고 있다. 그 와중에도 이 나라가 버티는 힘은 다이아몬드와 금 등 자원 덕분이다. 콩고민주공화국(옛 자이르)은 다이아몬드, 구리, 코발트 등의 광물자원과 전자제품에 들어가는 희귀 금속류로 먹고 산다. 지방에서는 정부군과 반군의 싸움으로 유혈사태가 반복되고 드넓은 땅에 흩어져 사는 농민들 대부분이 빈곤 상태이지만 수도 킨샤사에는 자원을 노리는 외국 기업들이 밀려들고 있다. 자원개발 붐 속에서도 이 나라 연간 1인당 국내총생산(GDP·구매력기준)은 세계 최저수준인 300달러에 불과하다.
국내 기업들도 많이 진출하고 있는 중부 아프리카의 앙골라는 30년 내전의 상처를 딛고 신흥 산유국으로 떠올랐다. 2006년 석유수출국기구(OPEC) 가입과 함께 앙골라의 국제적인 위상도 한층 높아졌다. 수도 루안다 도심에서는 나날이 건물이 올라가고 땅값이 몇 년 새 천정부지로 치솟았다. 구매력기준 1인당 GDP는 근래 8900~9000달러 선으로 훌쩍 뛰었다. 하지만 자원의 혜택이 고르게 배분되지 않는 나라에서, 오일달러는 돈 있고 힘 있는 자들의 몫일 뿐이다. 1280만 인구 중 80%는 여전히 농민이며, 국민 40%는 빈곤선 이하에서 산다.
또한 수출용 환금작물 위주의 플랜테이션 농업이나 원자재 의존 구조 때문에 아프리카는 세계시장의 변동에 몹시 취약하다. 선진국 산업활동이 위축되거나 부자나라 소비자들이 지갑을 닫으면 공업용 팜유, 카카오·커피 등을 생산하는 아프리카 농민은 엄청난 타격을 받는다. 2000년대 성장률 7~9%의 고속성장을 하던 아프리카 저개발국들은 금융위기 여파로 근래 경제성장률이 뚝 떨어졌다. 앙골라는 2007년 실질 GDP 증가율이 21.1%, 2008년엔 13.2%였다. 하지만 세계적인 경제위기로 2009년에는 마이너스 0.6% 성장을 했다. 남아프리카공화국은 2007~09년 실질 GDP 증가율이 5.5%에서 3.7%로, 다시 마이너스 1.8%로 내려갔다. 나이지리아·앙골라와 함께 아프리카의 또다른 주요 산유국인 수단 역시 같은 기간 10.2%에서 6.6%, 3.8%로 성장세가 떨어졌다.
그랑라우(코트디부아르)·라고스|구정은 기자 ttalgi21@kyunghyang.com
코트디부아르 아비장 서쪽, 해안도시 그랑라우를 지나 덜컹거리는 흙길을 달려 은지다 마을로 들어서자 ‘새마을운동(Saemaul Undong)’이라는 안내판이 나왔다. 주 코트디부아르 한국대사관의 지원으로 새마을운동을 배워 지난해부터 실험하고 있는 곳이다. 박윤준 대사는 “이곳 사람들에게 ‘자조’와 ‘협동’을 가르쳐주는 것이 우리의 일”이라고 소개했다. 협업을 통한 농업경영의 모델을 만들어주는 것이다.
가장 먼저 한 것은 산비탈에 풀어 키우던 닭을 우리에 넣어 양계장을 만든 일이었다. 500마리를 데려다가 키우기 시작했는데, 처음 하는 일이다보니 접종 시기를 놓쳐 닭들이 모두 죽어버렸다. 이런 시행착오를 거치며 배움을 얻는다고 했다. 한쪽에는 화단처럼 흙을 돋우어 철망으로 덮어 놓았다. 개울가 젖은 흙에서 자라는 게를 가져다가 야자를 먹여 키우는 실험을 하고 있었다. 철망 속 흙 밑에 집게발은 빨갛고 등딱지는 파란, 손바닥만한 게들이 자라고 있었다.
아프리카는 토양이 비옥하지 않고 기후조건도 극단적인 건기와 우기로 나뉘는 경우가 많다. 질병이 많아 노동력은 늘 부족하다. 이곳 주민들은 구근작물인 카사바를 갈아 아티키라는 빵을 만들어 주식으로 먹는다. 프로그램을 시작하면서 주민들은 원조기관과 한국대사관의 도움을 받아 카사바 가는 기계 2대를 마을에 들여놓고 여성들을 세 그룹으로 나누었다. 여성들 중 한 그룹은 카사바를 재배하고 한 그룹은 아티키를 만든다. 세 번째 그룹은 만든 ‘제품’을 내다 판다. 마을 한쪽에서 젊은 여성이 카사바를 쌓아놓고 뽀얀 구근을 깎고 있었다. 돈이라고는 손에 쥘 방도가 없었던 마을 여성들에게, 새마을운동은 새로운 경험이었다.
산비탈 붉은 흙, 뙤약볕 밑에서 농민들은 ‘경영’을 배우기 위해 열심이었다. 새마을운동을 배우려고 한국에도 다녀갔다는 주쿠아 코쿠라 가브리엘(56) 촌장은 “처음에는 주민들이 대체 무슨 일을 하려는 것인지 아주 생소해했다”고 말했다. 그동안 들어왔던 프랑스 구호기관들은 원조라는 명분으로 돈을 주었다. 이들에게 ‘돈이 아니라 스스로 서는 법을 가르친다’는 한국의 지원방식은 낯설었다. 지레 실망한 사람들도 있었다. 하지만 몇 달 지나 여자들이 아티키로 돈을 손에 쥐는 모습을 보고 주민들의 인식이 바뀌었다. 닭 숫자가 늘고, 마을 분위기가 달라지기 시작했다.
하지만 희망은 이르고 갈 길은 멀다. 코트디부아르는 농업국가이지만 보조금을 잔뜩 받는 외국산 값싼 농산물이 들어오기 시작했다. 산업화도 되기 전에 농업생산의 위기가 닥치면 재앙이다. 은지다라는 마을 이름은 ‘먹고 잔다’는 뜻이다. 마을 주민들은 새마을운동을 통해 ‘잘 먹고 잘 잘 수 있는’ 마을이 되기를 꿈꾸면서도, 점점 달라져가는 ‘글로벌 농업환경’에 대한 두려움을 떨어내지 못하는 듯했다.
“은행에서 돈 한 푼 빌리는 것도 쉬운 일이 아니었죠. 하지만 조합이 생긴 뒤로는 더 이상 힘없는 농부가 아닙니다.”
지난달 17일 르완다 북부주 가쳉에 지역의 아비쿠다카와 커피 농장에서 빨갛게 익은 커피 열매를 수확하던 그라시안(42)은 커피조합이 생기기 전을 회상하며 웃었다. 그라시안이 소속된 아비쿠다카와 커피조합은 2004년 조직됐다. 지금은 주변 커피농 1976명이 소속된 르완다 내 4번째 규모의 조합으로 성장했다. 그라시안은 조합이 결성된 이후 벌이가 늘어 집을 새로 지었고 자녀 학비도 모두 댈 수 있게 됐다고 자랑했다. 커피나무 300그루를 가진 그라시안은 조합 가입 전 12만 르완다프랑(약 24만원)에 불과하던 연간 수입이 20만 르완다프랑(약 40만원)까지 치솟았다.
르완다는 국내총생산(GDP)의 42%가 커피 등 농업에서 나온다. 최근 이 나라의 커피조합 시스템이 주목받고 있다. 농업 노동자들을 고용해 대규모 플랜테이션을 경영하는 다국적 기업들과 달리 주민들이 조합원이 되어 투자를 하고 생산량과 경작지 넓이에 따라 수익을 분배받는다. 정부가 1999년 처음 커피조합을 도입하면서 노린 것은 집적을 통한 생산비용 절감 효과였다. 정부의 계획은 맞아떨어졌다. 1996년 1만5000에 불과했던 커피 생산량이 올해는 3만으로 늘 전망이다. 품질도 놀랄만큼 좋아졌다. 1990년대까지 2등급 취급을 받던 르완다 커피는 최근 커피품질 경연대회인 컵오브엑셀런스(COE)에서 5위 안에 진입했다. 브라질, 코스타리카, 콜롬비아 등 커피 명산지들로 이뤄진 COE 주최국 명단에도 2008년 이름을 올렸다.
문제는 여전히 농가 규모가 영세하다는 점이다. 그라시안도 커피만으로는 생계를 유지할 수 없어 콩, 옥수수, 파인애플 등을 함께 키운다. 커피 등 환금작물 의존성을 낮추고 산업화를 이루는 것은 르완다 경제의 과제로 남아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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