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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프리카의 내일을 가다/ (5) 아프리카는 거대한 슬럼

딸기21 2010. 5. 11. 10:17
고층건물이 솟아오르고 있는 나이지리아의 경제수도 라고스. 바닷가를 따라 난 허버트 매컬레이 고가도로 위로 일본제, 유럽제 자동차들이 달린다. 그 아래에는 라고스 주민들이 아데콜리 빌리지라 부르는 수상촌(水上村)이 있다. 세상 어디에서나, 뭍에서 몸 누일 곳을 찾지 못하는 사람들이 밀리고 밀려 정착하는 곳이 물 위다. 지나가는 이들에게는 신기한 구경거리일지 모르지만 거기 사는 이들에겐 열악한 생존의 현장이다.


ㆍ더 이상 갈 곳 없는 ‘밑바닥 10억’… 도시의 그늘서 사투

말이 좋아 ‘마을’이지 아데콜리는 ‘주거지’라고 하기 힘든 곳이었다. 얕은 바다에 띄운 나룻배에선 여성들과 아이들이 고기잡이를 하고 있고, 사이사이 좁은 부지에는 온통 목재 가공공장들이 늘어서 있었다. 습기와 열기와 톱밥이 뒤섞여 숨이 막혀왔다. 바다는 온갖 오염물들과 쓰레기로 울긋불긋 물들어 제 색깔을 알기 힘들었다.
얼기설기 판자집들 사이 그늘진 좁은 통로에는 젊은 청년들이 드러누워 있었다. 주민들은 성난 얼굴로 이방인을 바라봤다. 내륙 지방과 라고스 주변 여러 주(州), 혹은 베냉 등 이웃나라에서 온 가난한 이주자들이 주민의 주를 이룬다. 상당수 주민들은 주중에 이곳 판잣집에 살며 고기를 잡거나 목재 공장에서 일하고, 주말엔 멀리 떨어진 시골 집으로 돌아간다. 수상촌 건너편 빅토리아 아일랜드에는 아덴지 아델레 거리의 높이 솟은 스카이라인이 대조를 이루고 있었다.
라고스 해안 아파파 항구를 돌아 와프 로드로 이동하는 길. 차량 정체가 시작되자 구걸하려는 아이들이 몰려들었다. 차 문을 열려고 달려드는 한 소년을 옆에 있던 소녀가 재빨리 제지하더니 아무것도 못 먹었다는 시늉을 한다. 라고스 슬럼가는 외국인들에겐 공포의 대상. 자칫 밤중에 차량 정체로 멈추기라도 하면 젊은이 수십명이 멈춰선 차들을 앞에서부터 훑어가며 강탈을 한다. 한국대사관의 한 관계자는 “이런 강도들을 만나면 현지인이건 외국인이건 달라는대로 주는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예전엔 강도들이 사람을 죽이진 않았는데, 얼마 전 지방도로에서 강도들이 시외버스를 털고 나서 승객들을 모두 자동차로 깔아 죽인 일이 일어나 공포심이 높아졌다고 했다.



나이지리아 라고스의 수상촌


아프리카 대도시들은 예외 없이 거대한 슬럼이다. 세계은행 분석가로 일했던 윌리엄 이스털리 같은 개발경제학자들이 ‘밑바닥의 10억명(Bottom Billion)’이라 부르는 절대빈곤 상태의 사람들, 이른바 ‘지구상 하위 10억명’ 중 대부분이 아프리카에 거주한다. 농촌에서도 먹고살지 못해 도시로 몰려온 슬럼 주민들은 세계화의 어두운 그늘이다.
코트디부아르 아비장 시내 서민주택가인 요뿌공에서 와사까라 슬럼으로 이어지는 지역은 ‘판잣집의 바다’였다. 상업중심지인 아자메의 시외버스터미널에 이르자 노숙하는 아이들이 보였다. 낮에는 구걸이나 도둑질을 하고, 밤에는 버스 밑에 들어가 잔다. 이 곳 서민들의 교통수단은 ‘워러워러’라 불리는 다 망가진 낡은 택시와, ‘바카’라는 이름의 미니버스다. 문짝도 제대로 닫히지 않는 워러워러와 바카를 번갈아 타고 해안마을 벵제르빌로 이동했다. 1인당 200세파(약 500원)를 받는 낡은 바카는 “도대체 어떻게 이런 차가 달릴 수 있나” 싶게 낡았다. 스무살 남짓 되어보이는 청년이 달리는 차 문에 몸을 반쯤 걸친 채 “벵제르빌!”이라 외치며 승객들을 불렀다.
옛 식민시절 한때 수도였던 해안도시지만 지금은 아비장 외곽의 슬럼이 됐다. 아르마탄(사하라에서 넘어오는 모래바람)의 시기가 지났는데도 공해와 먼지가 뒤섞여 온통 대기는 뿌연 빛이었다. 꼬불꼬불한 진흙길을 따라 들어가니 좁다란 골목으로 이어진 빈민가가 나왔다. 지저분하기가 이루 말할 수 없는 상태였다. 아비(33)라는 여성은 11명의 식구와 이곳의 진흙집에 살고 있다. 정해진 소득은 없다. 구근 작물인 카사바나 야자를 따다 팔아 간신히 입에 풀칠을 한다. 아이들이 몰려들었다. 한 옆에 버려진 망고 껍데기에 파리떼가 득시글거렸다. 음식을 만들 때 덤불을 태우고 남은 재가 뒤섞여 공기는 매캐했다.


도시외곽 ‘판잣집의 바다’ 구걸·약탈·유혈폭동 빈번

타 주느비에브(40세)는 서부 파코블리에서 살다가 분쟁이 일어나 4년 전 아비장으로 왔다. 하지만 지낼 곳이 없어 벵제르빌에 정착했다. 남편과 시누이, 여섯 아이들과 이 곳에 산다. 남편은 아비장 시내에서 경비원으로 일해 월 평균 5만세파(약 12만5000원)를 받는다. “파코블리에서는 남편이 재봉사 일을 해 안정적인 수입이 있었는데 여기선 사는 게 사는 것 같지 않다”고 했다. 타 주느비에브는 “내게도 돈을 벌 수단이 있었으면 좋겠지만 가진 게 아무것도 없다”면서 종잣돈이 한 푼도 없는 것을 아쉬워했다.



코트디부아르 벵제르빌, 흙집에서 자라는 아이들


언덕 위에는 옛 식민시절 건물을 개조해 만든 고아원이 있었다. 마침 예방접종일이어서, 학년별로 색깔 맞춘 체육복을 입은 아이들이 줄을 서서 예방주사를 맞고 있었다. 주사를 맞은 아이들은 한 쪽에 모여 음악에 맞춰 춤을 추고 있었다. 몇사람만 모이면 음악을 틀고 춤을 추는 것은 아프리카 어디서나 찾아볼 수 있는 풍경이다.
남아프리카공화국은 사하라 이남 아프리카 최고의 경제 수준을 자랑하지만 슬럼으로도 유명한 나라다. 지난달 22일 남부 웨스턴케이프주 드 두어런스의 슬럼을 방문했다. 이 곳에는 약 5000여명이 살고 있다. 주민 대부분은 흑인 코사족이다. 차에서 내려 슬럼 안으로 들어서자 슬레이트로 지붕과 벽을 두른 나즈막한 집들이 모습을 드러냈다. 어른들은 대부분 주변 포도 농장으로 일을 나가고 아이들만 남아서 시간을 보내고 있다. 아이들의 유일한 장난감은 폐타이어다. 폐타이어로 만든 그네를 타고 있던 노바 펠로(5)는 장래희망을 묻자 “농장에서 일하고 싶다”고 대답했다. 아이들이 보고 듣는 유일한 ‘직업’이 포도 농장에 고용돼 일하는 농업 노동자이기 때문이다.
요하네스버그 외곽의 알렉산드리아 슬럼은 웬만한 남아공인들도 들어갈 엄두를 못 낸다. 이곳에서는 시시때때로 유혈 폭동이 일어난다. 2008년 5월에는 짐바브웨, 모잠비크 등에서 온 이민자들을 겨냥한 빈민들의 공격이 일어나 ‘제노포비아(인종혐오)’ 범죄가 남아공 전역으로 퍼져나갔다. 당시 모두 62명이 사망, 1994년 아파르트헤이트(흑백분리) 종식 이후 최악의 유혈사태로 기록됐다. 이민자들이 요하네스버그 토착 줄루족들의 일자리를 빼앗는다는 것이 이유였다. 슬럼 안의 빈곤층이 부족한 일자리를 두고 서로 다투는 형국이다. 교민 박대범씨는 “알렉산드리아는 사실상 경찰도 포기한 지역”이라고 전했다. 남아공 슬럼들은 대부분 아파르트헤이트 당시 흑인들을 강제이주시키면서 형성됐다. 그 안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든 백인정권은 관심을 갖지 않았다. 아파르트헤이트 체제가 무너지고 16년이 지났지만 슬럼의 치안은 오히려 더 나빠졌다.
케냐 수도 나이로비 외곽의 키베라 슬럼은 동아프리카의 빈민과 난민들이 모두 모이는 아프리카 최대 슬럼이다. 계절에 따라 오고가는 사람들이 있어 인구는 60만명에서 150만명 사이로 추산된다. 면적은 나이로비의 1%에도 미치지 못하지만 나이로비 인구의 4분의1이 키베라에 산다. 전기와 수도가 공급되는 가구는 거의 없다.
 벵제르빌·라고스·요하네스버그·드두어런스 | 구정은·이청솔 기자


 

왜 아프리카는 아시아식 발전을 따라하지 못하나


얼마 전 김태영 국방장관이 아프리카를 가리켜 “무식한 흑인들이 사는 곳”이라고 해 물의를 빚었다. 일국의 각료에게서 나온 말이라 하기엔 몰지각한 수준의 인종차별적인 발언이었고 장관도 곧 이를 사과했지만, 한 대륙을 짓누르는 ‘절대 빈곤’과 다른 대륙 주민들의 ‘글로벌 책임’에 대해서는 되새겨볼 필요가 있다.




아프리카를 방문하는 이들은 곧 느끼게 되는 것이지만, ‘아프리카’는 그 자체로 하나의 질문이다. 이유는 제각각이지만 아프리카 국가들의 경제 실적은 대부분 형편없다. 사하라 이남 아프리카에서 구매력 기준 1인당 연간 국내총생산(GDP)이 1만달러가 넘는 나라는 남아프리카공화국과 가봉 정도다. 세계보건기구(WHO)가 조사한 세계의 평균기대수명은 67.6세인데 아프리카는 51.5세로 훨씬 떨어진다. 독재·경제난·에이즈가 겹친 짐바브웨는 겨우 39.7세다. 라이베리아와 르완다 등 일부 국가에서는 인구의 90% 이상이 하루 2달러 미만으로 생활하는 절대빈곤층이다.
‘흑인’이라는 인종적 요소를 빼버리고 생각하더라도, 아프리카는 여전히 지구상에서 가장 가난하고 가장 교육수준이 낮은 대륙임을 부정할 수 없다. 따라서 아프리카를 제대로 보기 위해선 “왜 아프리카는 그러한가”라는 질문에 대한 대답을 해야만 한다. 서방의 원조단체나 유엔 같은 국제기구들을 가장 괴롭히는 질문도 바로 이것이다.

2007년 제프리 삭스가 <빈곤의 종말>에서 원조의 기술적인 문제점과 관점의 잘못 등을 지적하고 나선 뒤, 개발경제학자들 사이에 아프리카 개발 문제를 둘러싼 논쟁이 ‘폭발적으로’ 일어났다. 이들이 지적하는 아프리카의 빈곤의 원인은 여러가지다.
식민시절의 착취로 국부를 빼앗기고 발전 경로가 왜곡된 탓도 있지만, 기본적으로 아프리카 최빈국들은 ‘국가를 지탱할만한 지리적 조건’이 충족되지 않는 탓에 가난하다는 분석이 많다. 아시아나 중남미의 개도국 대부분이 역사적으로 형성된 민족적·문화적 공동체들에 바탕을 두고 있는 것과 달리 아프리카 국가들은 독립 이전에 국가의 틀을 갖추고 있던 경우가 드물었다. 과거 나름의 제국을 형성했던 가나, 말리, 짐바브웨 등이 있지만 현재의 이 나라들과는 사실상 직접적인 관련이 없는 역사속 존재들이다.
일부 학자들은 “지리적·기후적인 요인들로 해서 국가가 형성될만한 농업기반을 갖지 못했던 곳들을 식민종주국들의 이해관계에 따라 개별국가로 나눈 것이 문제였다”고 말한다. 일례로 사하라 남쪽 부르키나파소는 사막지대의 내륙국가라 코트디부아르에 의존하지 않고서는 교역이 불가능하다. 이웃한 차드나 카메룬 등도 비슷하다. 동아프리카의 우간다는 1990년대 이후 정치안정 덕에 개발 절차를 밟고 있지만 역시 내륙의 소국이어서 성장이 제한돼 있다.

영국 옥스퍼드대학 개발경제학자 폴 콜리어 교수는 저서 <빈곤의 경제학>에서 “아프리카는 개발 격차를 따라잡을 절호의 찬스를 아시아에 빼앗겼다”고 지적했다. 선진국과 개도국 간 임금격차가 크게 벌어졌던 80년대가 저임금 개도국들이 세계시장에 편입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였는데, 이 때 아시아는 제조업과 서비스 분야에서 이미 집적의 경제를 구축하고 있었기에 엄청난 경쟁력을 누렸다.
반면 아프리카의 ‘밑바닥 국가’들은 저임금 노동력을 갖고 있었음에도 집적의 이점을 누리지 못했다는 것이다. 방글라데시처럼 비민주적이고 비효율적인 정치구조를 갖고 있는 나라들도 집적의 이점을 이용해 시장에 진입한 반면 아프리카는 기회를 놓쳤다.
개발의 격차를 줄이기 위해서 “마중물이 될 원조가 필요하다”(제프리 삭스)는 주장과 “제3세계의 성공적인 개도국들은 원조가 아닌 자신들의 힘으로 일어섰다”(윌리엄 이스털리)는 반론, “자원·내륙국·분쟁 등의 덫에 걸린 밑바닥 국가들엔 다차원적인 처방이 필요하다”(폴 콜리어)는 등의 주장들이 나오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