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기가 보는 세상

코피 아난, 코피 터지네

딸기21 2005. 4. 24. 13:22
728x90
지난 1996년 12월 부트로스 부트로스 갈리 전 유엔 사무총장은 5년 임기를 마치고 퇴임하는 자리에서 "유엔 사무총장의 충성심은 국제사회를 향한 것이어야지 결코 특정국가를 향한 것이어서는 안된다"는 쓴소리를 했었다. 이집트 출신으로 프랑스어와 영어를 유창하게 구사했던 갈리 전총장은 비록 국제사회에서 아무 `실권'은 없었지만 미국의 패권주의에 맞서 제3세계의 이익을 방어하기 위해 애썼다는 평가를 받고 있었다. 그의 `친프랑스-친유럽 노선'에 불만을 가진 미국은 밀린 유엔 분담금 납부를 미끼로 사실상 유엔을 `위협'해 결국 사무총장을 갈아치웠다.
미국이 후임으로 내세운 인물은 가나 출신인
코피 아난이었다. 아프리카 출신이라는 명분을 내걸긴 했지만 사실상 미국인이나 다름없었던 아난은 '겉은 검지만 속은 하얗다'라는 평까지 듣고 있었다. 미국의 지원 덕분이었는지는 몰라도, 어쨌든 아난 총장은 단임에 끝난 전임자와 달리 무사히 5년을 보내고 두번째 임기까지 맡게 됐다.

취임초 `친미파'로 분류됐던 아난 총장이 미국과 알력을 빚기 시작한 것은 두번째 임기가 시작된 2002년 이후의 일이다. 정확히 말하면
이라크전을 계기로 아난 총장은 미국에 거슬리는 목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당시 유엔 주재 미국대사는 존 네그라폰테라는 인물로, 미국에서 최근 논란 끝에 국가정보국장에 취임했다)2002년 9월부터 이듬해 3월 미국의 이라크 공격이 시작되기까지, 미국과 유엔은 계속 마찰을 빚었다. 어쨌든 미국은 유엔의 동의 없이 전쟁을 일으켰고 승리를 거뒀다.
이라크전 이후 미 고위 외교관리들은 줄기차게 `유엔 개혁'을 거론해왔다. 올들어서도 이라크에 대한 인도주의 차원의 지원책이었던 `석유식량 교환계획' 입안과정에서부터 비리가 있었다는 폭로, 아난 총장의 아들이 유엔 계약에 개입해 이권을 챙겼다는 보도가 잇따랐다. 지난 15일 콘돌리자 라이스 미 국무장관이 "유엔은 개혁하지 않으면 살아남을 수 없다"고 경고한데 이어 22일(현지시간)에는 마크 레이건 미 국무부 차관보가 "아난 총장의 미래는 불확실하다"고 노골적으로 말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아난 총장이 임기 만료 전에 교체될 수도 있다는 얘기다.

(미국은 국제원자력기구 IAEA 사무총장인 모하마드 엘바라데이에 대해서도 '흔들기'에 나서고 있다. 엘바라데이 문제는 나중에 따로 쓸 예정이지만, 갈리와 같은 이집트 출신이고, 아난과 같이 이라크전 때 미국에 밉보였다)


유엔이 방만한 운영을 하고 있고 어떤 방식으로든 개혁이 필요하다는 것은 각국이 인정하는 바다. 그러나 국제사회가 유엔의 문제보다는 국제기구를 마음대로 쥐고 흔드는 미국의 권력을 더 위험시하고 있다는 것 또한 사실이다.

728x90

'딸기가 보는 세상' 카테고리의 다른 글

항공기는 누가 만드나  (1) 2005.05.12
멍청하게도 썼네  (0) 2005.05.06
에너지 위기는 오는가... 오겠지?  (0) 2005.04.23
부르카를 쓴 정치인  (0) 2005.04.22
새 교황, 맘에 안 들어...  (0) 2005.04.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