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세기에 벌어질 가장 중요한 패권 경쟁은 미국과 중국 간 에너지 경쟁이 될 전망이다. 중동경제연구(MEES) 등 석유전문지들은 16일 중국의 막대한 에너지 소비 증가로 유라시아 곳곳에서 미국과 중국 간 치열한 에너지 경쟁이 벌어질 것이며, 특히 중동 석유와 중앙아시아 유전지대 등을 중심으로 한 지정학적 판도가 변화할 것이라는 예측을 내놨다.
지난해 중국은 일본을 제치고 석유수입 규모에서 세계 2위를 차지했다. MEES는 중국의 석유 소비가 앞으로 20년 동안 50% 이상 증가할 것으로 전망했다. 현재 중국의 에너지 소비 중 석유가 차지하는 비율은 25% 정도. 그러나 2030년이 되면 석유의 비중이 50%까지 올라갈 것으로 이 잡지는 내다봤다. 중국은 이미 1993년부터 석유 수입국으로 전환됐다. 중국은 현재 석탄에서 석유로 에너지원이 바뀌는 초기단계에 있기 때문에 석유소비는 더욱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
중국과 중동의 접근
중국의 유전개발은 90년대 이래 정체를 면치 못하고 있어 석유 대외의존도는 더욱 심화될 전망. 특히 석유수입의 대부분을 사우디아라비아를 비롯한 걸프 석유에 의존하게 될 것으로 예상된다. 현재 걸프 석유의 90%는 중국을 비롯한 아시아로 들어오고 있으며, 걸프 국가들과 중국의 관계도 점점 가까워지고 있다.
세계 최대 석유수출국인 사우디는 중국에 대형 정유공장을 건설하는 방안을 추진 중이다. 이란도 중국과의 거래에 발벗고 나섰다. 중국석유천연가스집단공사(CNPC)는 지난 97년 이라크의 사담 후세인 정권으로부터 알 아다브 유전개발권을 따냈는데, 이라크에 수립될 새 정부가 이 계약을 이어주기를 원하고 있다.
아랍에미리트연합(UAE)에서 발간되는 걸프뉴스는 최근 "산유국들이 중국 중심으로 시스템을 재편해야 한다"는 기사를 게재했다. 중동 국가들은 이미 미국이 아니라 중국의 소비에 맞춰 석유생산계획을 수립하기 시작했다. 사우디는 석유관리들에게 중국어를 가르치고 있다. 사우디는 중국에 석유를 판매하는 대신 중국산 무기를 대거 구입할 움직임도 보이고 있다.
러시아와 중앙아시아까지 노린다
중국은 러시아와 카자흐스탄 등 중앙아시아 석유에도 손을 뻗치고 있다. 중국석유화공총공사는 지난해 7월 처음으로 러시아산 석유를 수입했다. 그런가하면 지난해 5월에는 후진타오(胡錦濤) 국가주석과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시베리아산 원유를 중국 동북부의 다칭(大慶)까지 수송하는 송유관 건설에 합의했다. 이 송유관이 건설되면 러시아 최대의 석유기업인 유코스가 중국 CNPC에 매일 40만 배럴의 석유를 보내게 된다. 이 합의는 푸틴 대통령과 유코스의 갈등이라는 러시아 국내정치 문제로 실행이 미뤄지고 있지만 중국과 러시아의 석유 협력이 확대될 것임은 분명하다.
CNPC는 이미 지난 97년에 카자흐스탄 악토베무나이가즈 유전의 지분 60%를 매입했으며, 중국-카자흐스탄-이란을 잇는 송유관 건설을 추진하고 있다.
미국과 세력권 경쟁 불가피
지난해 이라크전 때 국제에너지기구(IEA)는 중국의 석유 대량구매를 막기 위한 긴급 회의를 가졌다. 중국의 석유구매는 이미 전세계 에너지 소비 판도를 변화시킬 수 있는 규모에 이르렀다. 중국의 에너지 불안정성에 대한 각국의 우려가 커지는 것도 그 때문이다.
에너지를 확보하기 위한 중국의 야심은 미국에 극도의 경계심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지난해 미국 국방부는 사우디가 미국과 관계가 소원해진 틈을 타 중국에 더욱 접근할 가능성이 있다고 경고하는 보고서를 내놨다.
전문가들은 중국이 걸프 석유의 수송항로를 확보하기 위해 말라카 해협과 남중국해의 패권을 적극적으로 추구할 것으로 보고 있다. 걸프와 중앙아시아, 남아시아 등 세계의 지정학적 길목들 곳곳에서 미국과의 세력 충돌이 벌어질 수밖에 없다. MEES는 적어도 20년 동안은 중국이 성장을 유지하기 위해 미국과의 직접적인 대립은 피할 것이라고 내다보면서 "그러나 중국이 세계 에너지 시장의 구조를 바꿀 것임은 분명하다"고 전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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