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기가 보는 세상/아시아의 어제와 오늘

포연 속에 핀 사랑

딸기21 2004. 1. 7. 1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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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흐무딘은 석달전 자흐라를 처음 만났다. 9년전 지뢰 폭발로 두 다리를 잃은 그는 정부보상금을 받기 위해 아프가니스탄 수도 카불의 장애인복지부 앞에 줄을 서 있었다. 자흐라는 보상금 지급창구에서 마흐무딘 같은 전쟁피해자들을 상담해주고 있었다.


보상금 청구자의 얼굴을 확인하기 위해 자흐라가 부르카(여성들의 머리쓰개)를 들어올린 순간 마흐무드는 사랑에 빠졌다. 마흐무드는 아프간 전통에 따라 곧바로 자흐라의 오빠에게 청혼했다. 자흐라가 네 번이나 거절을 했지만 끈질긴 구애로 승낙을 받아내 한달만에 결혼식을 올렸다. 자흐라 역시 두 다리가 없는 장애인이었다. 오랜 전쟁은 이들에게서 모든 것을 빼앗아간 듯 했지만 사랑과 희망은 다시 찾아왔다. 미국 크리스천 사이언스 모니터는 6일 내전의 포연 속에 피어난 두 사람의 사랑을 소개했다.


카불시내 남동쪽, 총알 구멍이 곳곳에 나 있는 낡은 아파트 귀퉁이에 마흐무딘의 가게가 있다. 사탕과 연필, 세제 따위를 팔아 하루에 30아프가니스(약 780원)를 번다. 이것만으로는 생계를 꾸릴 수 없어 계속 지뢰밭을 뒤져 고철을 찾아야 하는 처지이지만 마흐무드는 자흐라와 함께 '좀더 나은 삶'을 살 수 있다는 희망을 버리지 않는다.

마흐무딘은 지난 94년 아파트 계단에서 지뢰가 터져 두 다리를 잃었다. 한쪽 다리는 치료 가능성이 있었지만 군 병원 의사들은 절단이라는 '손쉬운' 방법을 택했다. 지뢰는 옛 소련의 지원을 받았던 나즈불라 정권 당시 정보요원이 게릴라들을 잡기 위해 설치했던 것이었다. 2000년 가을에는 아파트에 로켓포가 날아들었다. 임신 8개월째이던 아내와 어린 아들이 숨졌다. "모든 것을 잃고 나서 무엇을 해야할지 몰랐어요. 왜 이런 일들이 나에게 일어나는지..." 혼자가 된 마흐무딘은 정부 보조금에 고철을 판 돈으로 근근이 살아왔다.


자흐라는 카불 시내 산업지구의 작은 주택에서 오빠와 함께 살고 있었다. 게릴라들의 교전으로 집이 파괴되면서 그녀도 부상을 입었다. 역시 군 병원 의사들이 그녀의 다리를 잘라냈다. 자흐라는 다행히 장애인복지부에 임시직 일자리를 얻을 수 있었고 거기서 마흐무딘을 만났다. 지금은 정부 일을 그만두고 재봉기술을 배우고 있다.

두 사람은 가난하지만 희망을 잃지 않고 살고 있다. 그러나 옛 소련 점령과 90년대 내전, 그리고 지난 2001년 미국의 공격이 남긴 상흔은 깊기만 하다. 아프간 전역에 지뢰와 불발탄이 깔려 있다. 특히 내전 당시 여러 군벌들이 뿌려놓은 지뢰와 미군이 뿌린 집속탄은 아프간인들을 위협하는 '소리없는 적'이다. 아프간 전역에서 지뢰와 불발탄으로 팔다리가 잘려나간 사람이 70만명에 이르는 것으로 추정된다. 


지뢰 피해자들에게 의수와 의족을 지원하고 있는 카불 적십자사의 헬게 크밤 대변인은 "매일 서너명이 팔다리를 잃고 우리의 도움을 받으러 온다"면서 "피해자의 90%는 민간인이고 절반은 어린아이들"이라고 말했다. 아프간처럼 가난한 나라에서 어린이 피해자가 그토록 많다는 것은, '미래의 희망'까지 잠식된다는 것을 뜻한다. 아프간 인구의 5% 이상이 외부의 도움이 있어야만 살 수 있는 사람들이라고 구호기관들은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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