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기가 보는 세상/아시아의 어제와 오늘

바미얀 석불은 어떻게 사라졌나

딸기21 2003. 2. 4. 10:39
지난 2001년 3월이었죠. 아프가니스탄이 자랑해온 세계적인 유적, 바미얀 석불(石佛)이 파괴된 것이.

그 소식을 들으면서 불교신자가 아니더라도 많은 이들이 가슴 아파했을 겁니다. 저는 어릴 적에 컬러사진들이 많이 들어있던 <실크로드>라는 전집류의 책을 봤었는데, 거기 아프간인들의 생활상과 함께 바미얀 석불의 모습이 들어있었습니다. 그 때부터, 바미얀이라는 이름은 지명을 넘어 저에게는 일종의 '꿈'과 같은 것이었습니다. 모래사막에 서있는 거대한 석불상. 인간의 오만이라면 오만이고, 경외라면 경외라 할 그 거대한 석조물들.

이슬람 극단주의 탈레반 정권에 대해서는 여러 시각이 있을 수 있겠지요. 사실 소련 점령시절, 그리고 괴뢰정권 시절에 무너진 아프간을 살리겠다며 들고일어난 탈레반은 출범 당시만 해도 아프간인들의 희망이었습니다. 공과는 차치하고, 적어도 아프간인들 70%의 지지를 받았던 정통성 있는 정권이었습니다. 그런데 갈수록 극단적인 색채를 드러내더니 결국은 바미얀 불상을 부수고, 여성들을 상대로 무참한 탄압을 가하고(지구의 변방에서 단적으로 나타나는 '약자에 대한 극도의 억압'), 미국의 공격으로 무너졌습니다. 미국의 아프간 전쟁은 정말 극악한 것이었습니다만, 탈레반이 바미얀 석불을 부순 것 만큼은 너무나 잘못된 일이었다는 것이 제 생각입니다.

탈레반이 두 구(俱)의 불상을 과연 <어떻게> 세계인들에게서 빼앗아갔는지, 그 과정이 이제서야 낱낱이 드러날 전망입니다. 석불 폭파행위가 어떤 방식으로 진행됐는지를 생생하게 목격한 증인이 나타났다는군요. 3일 외신에 나온 내용입니다. 

당시 집권 탈레반 세력에 저항하는 와르다트당(헤즈브 이 와르다트) 민병대 소속 전투원으로 탈레반에 포로로 붙잡혔던 미르자 후세인(40)이라는 사람이 석불 폭파작업에 동원됐었다면서 25일에 걸쳐 진행된 파괴작업 과정을 AFP통신에 털어놨답니다.


″나는 석불이 새겨져 있던 사암(砂岩) 절벽에 곳곳이 뚫린 동굴(이 석불에는 소련 점령시절 포탄 공격을 동굴같은 구멍이 많이 뚫려 있었습니다)에서 감금생활을 하고 있었다. 어느 날 검은 터번을 두른 탈레반들이 픽업트럭 여러대에 나눠 타고 석불 주변으로 왔다.
탈레반들은 석불 2개 중에 큰 것으로부터 약 300m 떨어진 곳에 T-55 탱크를 세운 뒤 석불로 돌진했지만 석불 아랫부분 옷자락만 스쳤을 뿐 별다른 흠집도 내지 못 했다. 그러자 이들은 방법을 바꿔 온갖 종류의 폭탄과 탄약으로 가득찬 트럭들을 동원했다.

나를 포함한 포로 10여명은 칼리시니코프 소총으로 위협하는 탈레반들의 명령에 따라 트럭에 실려 있던 폭탄을 불상 발치에 쌓았다. 폭발물은 몇톤씩 됐다. 탈레반은 불상 뿐만 아니라 불상이 새겨진 암벽 전체를 파괴하고 싶어했다.
긴 전선 끝에 매달린 뇌관에서 폭발이 시작됐다. 먼지가 바다를 이루고 불길의 지름이 수백m나 됐다. 그러나 먼지구름이 한풀 가라앉은 뒤에 보니 석불들은 여전히 골짜기에 버티고 서서 탈레반을 비웃는 것처럼 보였다. 석불은 그저 다리 아래쪽만 파괴됐을 뿐 나머지 부분은 멀쩡했다.

칸다하르(탈레반 본거지가 있는 남부의 대도시)에서 온 하지 하디와 무리 압둘라 등 두 명의 물라(율법학자)를 비롯한 탈레반 지휘관들은 한참동안 의논을 했다. 파키스탄과 사우디아라비아 기술자들이 트럭 석 대에 나눠타고 도착해 지휘관들과 의논을 하더니 몇시간 뒤 지시사항을 적어놓고 떠났다.

물라 아가 슈린 살랑기의 지시를 받은 탈레반들은 첫번째 실패의 경험을 되살려 이번엔 작은 불상에서부터 일을 시작했다. 이들은 불상의 발치에 쌓여 있던 폭탄을 불상의 몸에 둘렀다. 그리고 폭파시키자, 칭기즈칸의 공격에도 살아남았던 불상은 결국 버티지 못 하고 무너져 내렸다. 탈레반은 총을 쏘아대며 기뻐 날뛰었고 소 50마리를 잡아 제물로 삼은 뒤 모닥불을 피워놓고 밤새 북소리에 맞춰 아탄(전통춤)을 추며 즐겼다.

그리고 나서 큰 석불 파괴작업에 들어갔다. 이번엔 차근차근 철저한 방식으로 일을 진행했다. 석불 위 쪽 동굴에서 밧줄을 늘어뜨린 뒤 우리를 매달아 석불 머리에 구멍을 뚫게 했다. 우리는 구멍을 뚫고 그 속에 다이너마이트를 다이너마이트를 채워넣었다. 그 다음에는 어깨, 그 다음엔 가슴, 이런 식으로 하루에 2-3 차례씩 폭파작업을 해나갔다. 거대한 석불은 아무 것도 남지 않았고 사암 절벽의 그림자만 남았다″


안타까울 뿐입니다.

다만 불상이 있던 근처에, 땅밑에 묻힌 와불(臥佛)이 있다고 하니 기대를 해야겠죠. 파괴된 석불들보다 더 큰 부처님이 엎드려 계시답니다. 프랑스 등의 고고학자들이 발굴작업을 진행하고 있다고 합니다. 중국과 태국에서는 파괴된 불상들보다 더 큰 불상을 세우겠다며 나섰는데, 인간의 오만함으로 불상을 세우고 그것을 무너뜨리고 또다시 '더 높은' 불상을 세우겠다고 하는 것이 박수칠 일인지는 잘 모르겠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