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기가 보는 세상

'핵 없는 세상'을 만든다고?

딸기21 2009. 9. 25. 09: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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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버락 오바마 정부의 ‘핵 없는 세상’ 비전에 속도가 붙고 있다. 오바마는 동유럽 미사일방어(MD)계획을 취소한데 이어 23일 유엔 총회연설에서 이란과 북한의 핵계획을 비난했다. 24일에는 미국 대통령으로서는 처음으로 유엔 총회 기간 안전보장이사회 순번 의장국을 맡아 회의를 주재하면서 핵무기 확산 근절 결의안을 15개국 만장일치로 통과시켰다. 미국과 유럽국들은 내년 4월 핵확산금지조약(NPT) 정상회의까지 핵확산 반대 분위기를 몰고간다는 방침이다.


외신들은 “이번 이사회로 내년 회의 성공 가능성이 높아졌다”는 평가를 내렸지만, 무엇이 ‘핵확산 금지의 성공’인지에 대해서는 의문이 남는다. 안보리가 통과시킨 결의안 1887호에는 북한과 이란에 대한 구체적인 언급은 없다. 하지만 ‘핵확산 금지에 대한 도전’을 용납지 않을 것임을 분명히 밝히고 기존 안보리 제재안들을 재확인, 두 나라가 타깃임을 분명히 했다.
결의안 채택후 발언에서 오바마와 프랑스의 니콜라 사르코지 대통령, 영국의 고든 브라운 총리 등은 모두 북한과 이란을 지목하며 ‘안전한 세상의 장애물’로 꼽았다. 이날 ‘핵 정상회의’에는 임기 만료를 앞두고 있는 모하메드 엘바라데이 국제원자력기구(IAEA) 사무총장, 헨리 키신저 전 미 국무장관, 미디어 재벌 테드 터너, 샘 넌 전 미 상원의원 등 핵확산 반대운동을 벌여온 인사들이 대거 참여해 눈길을 끌었다.



A group of demonstrators shout during a protest against Iran's perceived threat with nuclear weapons, Thursday, Sept. 24, 2009, in Washington.  (AP Photo/Evan Vucci)

핵무기는 미국이 제일 많이 갖고있거든? (얼굴을 보니 유대인들 같은데....) 



Students Shana Vernon (2nd-R) and Mari Mordfin (R) of Yeshivat Rambam, a Jewish school in Baltimore, hold posters during an anti-nukes rally September 24, 2009 in Washington, DC. Protesters participated in the rally to say no to Iran for possessing nuclear weapons.   Alex Wong/Getty Images/AFP

이란 핵 반대 시위 나선 볼티모어 유대인학교 학생들.
근데 얘들아, 핵무기는 이란이 아니고 이스라엘이 갖고 있거든?


‘핵 확산 금지’의 최대 타깃은 이란이다. 오바마는 이날 회의에 앞서 이미 러시아로부터 큰 약속을 얻어냈다. 이란 핵 협상 재개를 앞두고 러시아의 협력을 얻어낸 것이다.
오바마는 23일 드미트리 메드베데프 러시아 대통령과 회담, 대이란 추가제재 협력을 사실상 약속받았다. 메드베데프는 “제재보다 인센티브가 필요하다는 입장엔 변함이 없다”면서도 “하지만 때로는 제재가 불가피한 경우도 있다”고 말했다. 이제까지의 ‘이란 편들기’와 어조가 달라진 것이다.

안보리 5개 상임이사국과 독일 등 6개국은 다음달 1일 터키에서 이란 핵 협상을 재개한다. 데이비드 밀리반드 영국 외무장관은 “(이번 협상에서) 이란이 진지한 답을 내놓기 바라며, 그렇지 못하면 다음 단계를 밟을 것”이라는 6개국 명의의 공동성명을 발표했다. 이어 24일에는 주요8개국(G8) 국가들이 이란에 “석달 안에 우라늄 농축을 중단하라”고 요구했다. G8은 이란 핵 협상에 직접 참여하지 않는 기구이니 이들이 성명은 형식적인 것에 불과하지만, 어쨌든 이란에 대한 압박이 강해지고 있음은 분명하다. BBC방송, AFP통신 등은 러시아의 달라진 입장에 주목했고 뉴욕타임스는 “오바마가 이란 문제와 핵 비확산 이슈에서 성과를 거뒀다”고 보도했다.
앞서 오바마는 유엔 총회 연설에서 ‘다자주의’를 주창했다. 뉴욕타임스는 ‘반 이란 전선’을 구축한 것을 가리켜, 오바마가 주장한 ‘모두가 책임지는’ 새로운 국제질서, 다자주의와도 맥을 같이 하는 것이라 평가했다. 전임 정부 시절 등졌던 러시아와 관계를 개선하고 이란 문제의 협력을 얻어낼 실마리를 잡았다는 것이다. 미국과 러시아 정부는 모두 부인하고 있지만, 미국 언론들은 동유럽 MD계획을 철회한 것과 러시아의 달라진 태도를 연결지으며 ‘뒷거래설’을 계속 제기하고 있다.

주요국들의 협력을 얻어낸 것은 큰 수확이지만, 오바마의 뜻대로 비핵화 구상이 이뤄질지는 여전히 미지수다. 이란과의 핵 협상은 러시아의 도움만으로 이뤄질 수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안보리 상임이사국인 중국은 여전히 이란 제재에 대한 반대를 접지 않았다. 후진타오 중국 국가주석은 24일 안보리 회의에서 “모든 핵무기 보유국들은 핵무기를 비핵보유국에게 사용하지 않는다는 점을 분명히 약속해야 한다”며 서방과 다른 톤을 냈다. 중국은 “제재는 이란의 핵 계획을 둘러싼 논란을 해소할 수 있는 올바른 방법이 아니다”라고 못박았다. 중국이 추가 제재를 받아들인다 해도 그 내용과 수위, 효력에 대해서는 회의적인 시선이 많다.
이란은 협상을 앞두고 미리부터 강·온 양면전술을 구사하고 있다. 마무드 아마디네자드 이란 대통령은 유엔 총회에서 미국과 서방의 압력을 맹비난하면서도 “이란은 핵 협상에 열린 자세로 임할 것”이라며 이중적인 모습을 보였다. 또 서방의 압박 명분에 물타기를 하기 위해 자국 핵 전문가들과 국제기구 사찰단 면담도 허용하겠다고 밝혔다.



US President Barack Obama chairs a Security Council meeting at the United Nations headquarters in New York on September 24, 2009. The UN Security Council on Thursday unanimously adopted a resolution aimed at stemming the spread of nuclear weapons.     AFP PHOTO/Emmanuel Dunand

유엔 안보리 이사회를 주재하고 있는 오바마. 이번에는 오바마가 미국 대통령으로서는 처음으로,
유엔 총회 기간 안보리 순번 의장국을 맡아 회의를 주재했다.


오바마의 비핵화 구상을 계기로 서방의 ‘이중잣대’에 대한 반감이 오히려 더 불거지는 분위기다. 
오바마는 안보리 결의안이 채택된 뒤 “핵무기 없는 세계를 만든다는, 우리가 공유해온 약속을 명문화한 역사적인 결의안”이라고 평가했다. 하지만 그가 말한 ‘핵 없는 세상’, 즉 ‘비핵화’와 ‘핵 확산 근절’에는 엄청난 차이가 있다. 기존에 핵무기를 보유한 나라들, 힘으로 밀어붙여 핵무기 보유를 기정사실화한 나라들은 내버려두고 새로 핵 계획을 추진하는 나라들만 제재하겠다는 것이 ‘핵 확산 근절’의 의미이기 때문이다.

이라크전 뒤 미국의 조지 W 부시 정권은 ‘중동 비핵화 구상’이라는 것을 내놨었다. 부시 정권은 이라크가 핵 계획을 추진하고 있다며 이른바 ‘대량살상무기(WMD) 의혹’을 제기, 이라크를 침공했지만 핵 개발 흔적을 찾아내지 못했다. 그 뒤 칼날을 이란에 돌리며 중동 비핵화라는 것을 내세웠으나 설득력을 갖기 힘들었다. 가장 큰 이유는 이라크에 WMD가 없었기 때문이 아니라, 이스라엘에 WMD가 있기 때문이었다. 미국과 서방은 이란을 탓하지만 중동 비핵화의 가장 큰 걸림돌이 이스라엘임은 주지의 사실이다.
지난 17일 에후드 바라크 이스라엘 국방장관은 이란 위협을 재차 거론하며 “지금은 비핵화를 얘기할 상황이 아니다”라고 주장했다. 이란은 이제 우라늄 농축 단계에 있지만 이스라엘은 중동 유일의 핵무기 보유국이며 핵비확산조약(NPT) 가입도 하지 않았다. 바라크가 공개적으로 중동 비핵화에 반대한 다음날 IAEA는 최초로 이스라엘 핵 개발 비난 결의를 채택했다. 이스라엘 핵무기 보유가 드러난지 18년만이다. 이날 결의는 IAEA의 제3세계 이사국들이 일으킨 일종의 반란이었다. 이어 이집트는 유엔 안보리에 이스라엘 핵 조사를 요구했다. 안보리는 이에 대해서는 어떤 응답도 내놓지 않았다. 중동국들이 오바마의 ‘핵 없는 세상’ 주장에 대해 부시의 ‘중동 비핵화’ 구상을 이름만 바꾼 것으로 평가절하하는 것도 무리는 아니다.


<위클리경향>(845호)에 실린 글입니다


영국 "핵잠 한 척 폐기할 마음 있다" 




미국 버락 오바마 대통령의 ‘핵 없는 세상’ 구상에 발맞춰 영국이 핵잠수함 1척을 폐기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얼핏 비핵화를 주도하기 위한 획기적인 조치로 보이지만, 실상은 ‘예산이 없어서’라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유엔 총회에 참석한 고든 브라운 영국 총리는 23일 “핵 군축을 위해 모든 나라들이 함께 노력한다면 영국군이 현재 보유하고 있는 4척의 트라이덴트 핵잠수함(사진은 뱅가드급 잠수함)을 3척으로 줄일 용의가 있다”고 말했다. 또 내년 5월 핵비확산조약(NPT) 회의 때까지 보유중인 핵탄두를 줄일 수도 있다고 덧붙였다고 가디언 등이 보도했다.
1994년 가동된 트라이덴트 시스템은 영국 핵 방어체제의 핵심이다. 해군은 스코틀랜드 서부 클라이드기지에 뱅가드(S28), 빅토리어스(S29), 비질런트(S30), 벤전스(S31) 등 4척의 핵잠을 두고 있다. 각각의 잠수함에는 트라이덴트 핵미사일 16기(핵탄두 48개)씩이 들어간다. 하지만 예산부족과 기술적인 이유 등으로 인해, 전체 핵탄두 중 현재 동원가능한 것은 160개 정도에 그치고 있다.
핵잠들은 1986~99년 사이에 생산된 것들로, 2020~24년 모두 신모델로 바꿔야 한다. 하지만 냉전이 끝난 뒤 핵억지력을 같은 규모로 유지할 필요가 있느냐는 논란이 많은데다 재정적자까지 늘면서 영국 정부가 고민을 계속해왔다. 지난 2월에는 뱅가드호가 프랑스 핵잠 르트리옹팡과 대서양에서 충돌하는 사고까지 일어나 반핵 여론이 높아졌다. 브라운 총리의 발표는 미국의 비핵화 제안에 호응하면서 모양새를 살리고 핵잠 교체 비용도 줄이려는 의도로 풀이된다. 하지만 영국 언론들은 이번 발표의 ‘시점’에 대해서는 비아냥 섞인 시선을 보내고 있다. 텔레그라프는 “이미 예산 문제로 내각에서 수차례 논의됐던 것”이라며 “오바마의 비전에 묻어가려는 것은 참으로 ‘브라우니(browny·브라운 총리를 비꼰 것)’하다”고 꼬집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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