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칠레 법원이 과거 아우구스토 피노체트 군사독재정권 시절의 잔혹행위에 가담했던 범죄혐의자 129명에게 무더기 체포영장을 발부했다. 칠레 정부와 사법부의 느리지만 끈질긴 과거사 진상규명 작업에 다시 관심이 쏠리고 있다.
AFP통신은 1일 칠레 법원이 피노체트 정권 시절 야당 정치인들과 반정부 인사들을 고문·살해한 독재정권 가담자 129명에게 일괄 체포영장을 발부했다고 보도했다.
법원 관계자들에 따르면 산티아고 법원의 빅토르 몬티글리오 판사는 최근 피노체트 정권 시절 국가비밀경찰(DINA)의 요원으로 반정부 인사 탄압에 앞장섰던 이들의 체포를 지시했다. 20년 가까이 칠레에서는 과거사 청산 작업이 진행되고 있으나 한번에 이렇게 많은 이들의 체포영장이 발부된 것은 처음이다. 이들 중에는 그동안의 진상규명 작업 과정에서 한번도 체포되거나 법정에 나서지 않은 경찰 퇴직간부들과 전직 군 장교들이 여럿 들어있다고 소식통들은 전했다.
체포대상자들은 주로 70년대 피노체트의 지시에 따라 ‘콘도르 작전’이라는 이름으로 칠레, 아르헨티나, 볼리비아, 브라질, 파라과이, 우루과이 등에서 야당 인사들을 살해한 사람들이다. 일부는 75년 ‘콜롬보 작전’에 따라 119명을 대량학살한 용의자들로 전해졌다. 76년 산티아고 콘페렌시아에서 발생한 공산주의자 10명의 납치·실종 사건 관련자들도 포함돼 있다.
산티아고 법원은 98년부터 이 사건들에 대한 조사를 진행해왔으며, 몬티글리오 판사는 2006년부터 이 일을 맡고 있다. 그는 코페라티바 라디오와의 인터뷰에서 “사건의 실체를 규명하는 막바지 단계에 와 있다”면서 “범죄가 벌어진 경찰·군 막사에 있었던 사람들은 일단 조사해 어느 정도나 가담했는지를 밝혀야 한다”고 말했다.
1973년 좌파 살바도르 아옌데 대통령을 군사 쿠데타로 축출한 뒤 집권한 피노체트는 90년 3월 퇴임하기 전까지 수많은 이들을 고문·감금·살해했다. 인권단체들은 당시 살해 혹은 실종된 이들이 3000명이 넘는다고 주장한다. 피노체트 정권의 민간인 살해는 아르헨티나 군사독재 정권의 ‘더러운 전쟁’과 함께 중남미 최악의 인권탄압 사례로 꼽힌다. 아직도 당시 실종된 이들 중 많은 이들이 어떻게 되었는지 밝혀지지 않아 피해자 가족들이 애를 태우고 있다.
피노체트는 퇴임 뒤에도 합참의장, 종신 상원의원 자리를 차지한 채 버티다가 98년 영국 방문 도중 스페인 정부의 요청에 따라 체포됐다. 하지만 칠레로 송환된 뒤에도 건강 문제를 들어 재판에 응하지 않았고, 정부와 정치권 내에도 그의 추종세력이 남아 사법처리를 방해했다.
2006년 집권한 중도 좌파 미첼 바첼레트 대통령은 취임 뒤 “과거사 진상 규명을 계속할 것”이라고 선언했다. 피노체트는 그해 11월 자신의 집권기에 일어난 범죄행위들에 대한 책임을 인정한다면서도 ‘사죄’는 하지 않았다. 그는 한달 뒤 아무런 처벌도 받지 않은 채 지병으로 숨졌다. 당국은 피노체트 사후에도 군사정권 하수인들에 대한 수사를 계속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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