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기가 보는 세상/아시아의 어제와 오늘

신장위구르 사태 Q&A

딸기21 2009. 7. 7. 18:47
728x90
중국 신장위구르 지역이 최근 들어 격렬한 분쟁지역으로 부상하면서 세계의 이목이 쏠리고 있다. 과거 산발적인 봉기가 일어나긴 했었지만, 위구르족 분리독립 움직임은 근래 특히 가열되고 있는 양상이다. 이번 유혈사태는 위구르족과 한족의 충돌, 중국 당국의 고질적인 위구르족 탄압, 경제개발에서 따돌림당한 변두리의 불만 등이 합쳐지면서 일어난 것으로 보인다. 외신들과 전문가들의 분석을 통해 이번 사태의 원인과 전망을 알아본다.


Q.신장위구르 사태가 일어난 계기는.
홍콩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 등은 지난달 26일 광둥성의 장난감 공장에서 일어난 위구르 노동자 살해사건이 직접적인 원인이 됐다고 보도했다. 당초 이 사건은 한 한족노동자가 “한족 여성 2명이 위구르족에게 성폭행 당했다”는 거짓말을 퍼뜨리면서 일어났다. 중국 당국은 한족 노동자들이 위구르족을 공격해 위구르족 2명이 숨졌다고 밝혔다. 하지만 위구르닷컴(http://www.uygur.org) 등 위구르 뉴스사이트들은 광둥성 공장 분규로 여성노동자를 포함해 위구르족 27명이 살해됐다고 주장한다. 
사망자 수에는 차이가 있지만 한족 노동자들에 의한 살해사건이 벌어진 것은 분명해보인다. 하지만 당국은 아무도 처벌하거나 기소하지 않았다. 미국 크리스천사이언스모니터는 공안당국이 지난달에도 위구르족 분리운동가 색출작전을 벌이는 등 최근 탄압 강도를 높였다고 보도했다.

Q. 반세기 동안 잠잠했던 위구르족 분리운동이 최근 격렬해진 이유는.
1970~80년대에도 산발적인 게릴라 투쟁과 시위가 있었으나 냉전시절에는 물 위로 떠오르지 않았고, 세계에 알려지지도 않았다. 하지만 냉전이 끝나고 90년대 옛소련권 공화국들이 독립하면서 위구르족도 자극을 받았다. 전세계 위구르인은 1140만명 정도로 추산되나, 일부 위구르 단체들은 2500만명에 이른다고 주장한다. 대부분 신장을 비롯한 중국 내에 살고 있고 카자흐스탄, 키르기스스탄, 우즈베키스탄, 터키 등지에 소수가 살고 있다. 
중앙아시아 국가들은 중국을 건드리고 싶어 하지 않기 때문에 신장 위구르인들을 돕지 않지만 해외로 나간 위구르인들은 위구르 분리운동(‘판투르키즘)’을 지원하고 있다.




Q. 중국 정부는 분리주의에 왜 이토록 강경 대처하는 것인가.
중국 내에는 정부가 공식 인정한 민족집단만 56개다. 중국은 소수민족이 언어와 문화를 유지할 수 있도록 비교적 관대한 정책을 쓰고 있다는 평이다. 하지만 분리독립을 추구하는 집단에 대해서는 가차 없는 탄압을 가한다. 중국 내에 머물 때에는 괜찮지만 그 틀을 벗어나려 하는 것은 용납할 수 없다는 것이다. 분리운동이 일어나고 있는 신장위구르 자치구와 시짱 자치구(티베트)를 합친 면적은 중국 국토의 3분의 1에 이른다. 중국 정부가 이 땅과 자원을 포기할 리 없다. 
게다가 신장위구르는 중국공산당이 본토 전역을 장악하면서 지배권을 굳힌 지역이다. 사회주의 체제하에 동화정책을 표방해온 신장에서 분리 요구가 일어난다는 것은 공산당 정부의 정치적, 도덕적 정통성을 공격하는 것이 된다. 중국전문가 존 리는 포린폴리시 기고에서 “특히 티벳과 달리 신장위구르의 분리독립 요구는 중국 당국에는 극히 최근에 일어난 ‘갑작스런 짓’으로 비치고 있다”고 지적했다. 또한 중국은 옛소련이 무너지는 것을 생생히 지켜봤다. ‘소련처럼 무너져서는 안 된다’는 것은 현 중국 지도부에는 절체절명의 과제다.

Q. 중국 정부가 소수민족 정책을 바꿀 가능성은.
홍콩대학 중국정치 전문가 배리 사우트먼은 로이터통신 인터뷰에서 “정치지도부 내 강온 양론이 있겠지만, 당장은 강경론이 힘을 얻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후진타오 국가주석은 89년 티베트 분리 시위 때 당내 강경론을 주도한 사람이다. 그는 ‘체제 균열 조짐에 강력 대처하지 않는 것은 이적행위’라는 신념을 갖고 있다. 우크라이나, 그루지야 등의 이른바 ‘색깔혁명’ 때에도 공산당 지도부를 모아 ‘민주주의 바이러스’를 규탄했었다. 
그는 비즈니스 마인드가 강한 실용주의자로 알려졌지만 파룬궁, 가톨릭, 독립적인 노조운동, 소수민족 분리움직임 등에 대해서는 누구보다 단호하다. 인구 대부분을 차지하는 한족도 정부의 이런 방침을 지지하고 있다. 한족 국민들 사이에는 변방을 제압함으로써 근대 이후 훼손된 중국의 영광을 되살릴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도 적지 않다. 

Q. 위구르 분리운동을 주도하는 단체는.
이번에 중국 정부가 지목한 것은 미국에 체류 중인 여성 독립운동가 레비야 카디르다. 카디르는 세계위구르회의 의장으로서 해외 위구르인들의 지원 투쟁을 이끌고 있다. 신장위구르 지역 내에서는 대략 두 조직이 활발하게 활동한다. 동투르키스탄해방전선(ETLO)과, 거기에서 갈라져 나온 동투르키스탄이슬람운동(ETIM)이다. 중국 정부는 ETIM을 테러단체로 규정하고 있다. 실제 지난해 베이징 올림픽 앞두고 신장위구르 카스(카슈가르)에서 테러공격을 했던 것도 ETIM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이번 시위와 관련해서는 중국 정부가 카디르 등 해외 망명자그룹의 배후조종을 거론했을 뿐이며 ETIM이 관련돼 있다는 얘기는 없다.

Q. 종교적 차이도 갈등의 원인인가.
위구르족은 대부분 수니 무슬림이고 시아파 신비주의 종파인 수피 신도가 일부 있다. 공식 통계는 없지만 중국 인구의 1~2%가 무슬림으로 추정된다. 비중은 적지만, 당(唐)대부터 무슬림과 공존해왔기 때문에 중국에서 이슬람에 대한 문화적·종교적 거부감은 적은 편이다. 신장위구르 소요사태도 종교와는 직접 관련이 없다.
하지만 분리운동세력이 무슬림이라는 것이 중국 정부에 악용되는 측면이 있다. 중국은 ‘테러와의 전쟁’이라는 명분으로 신장 분리주의자들에 강경대응해왔다. 위구르 분리주의자들이 파키스탄에 갔다가 2002년 알카에다 테러범으로 몰려 관타나모 기지에 수감되기도 했다. 당시 끌려갔던 위구르인들 일부가 최근 중미 버뮤다로 옮겨져 화제가 됐었다. 

Q. 경제적 불균형이 위구르족의 최대 불만이라는 얘기도 있다.
신장은 포도, 멜론, 배 같은 과실이 많이 나고 밀과 목화 재배도 많은 지역이다. 광물자원과 석유도 풍부하다. 최근 자원개발에 불 붙어 2004년 280억달러 규모였던 역내총생산(GDP)이 지난해 600억 달러로 늘었다. 악수 유전, 카라마이 유전 등지에서 석유·천연가스가 나오면서 자치구 내 경제구조는 에너지 위주로 급속 재편됐다. 지난해 기준 신장 경제생산의 60%가 에너지 분야에서 창출됐다. 
중국 정부는 카자흐 국경 호르고스와 제미나이 등지에 자유무역지대를 만들어 무역을 촉진하고 있다. 하지만 한족이 옮겨와 우룸치 같은 대도시 경제를 장악하고 주변 지역들까지 점령하면서 위구르족은 ‘2등 시민’으로 전락했다. 홍통대학의 배리 사우트먼 교수는 로이터 인터뷰에서 “갈등의 본질은 경제”라고 잘라 말했다. 한족의 신장 이주는 대부분 신장생산건설공사(XPCC)라는 기구에 의해 이뤄졌는데, 준군사조직에 가까운 이 기구가 한족 이주에 맞춰 위구르인들을 폭력적으로 이동시킨 것도 많은 반발을 샀다.

Q. 소요는 계속 확대될까.
크리스천사이언스모니터는 “이번 사태는 중국 정부의 억압 일변도 정책이 성공적이지 못하다는 것을 보여준 사건”이라 분석했다. 하지만 시위가 더 크게 확산될 수 있을 것 같지는 않다. 신장위구르 지역은 사막과 분지로 이뤄져 있다. 아프가니스탄처럼 험난한 산악지대가 아니기 때문에 위구르족이 게릴라 투쟁을 벌이기도 힘들다. 이 지역에는 오래 전부터 인민해방군이 배치돼 분리세력이 움직이면 즉시 진압에 나서고 있다. 중국 내 다른 소수민족 분규와 연결될 조짐도 아직은 없다.
하지만 당장 시위가 확대되지는 않더라도 비슷한 분규는 계속 일어날 것으로 보인다. 위구르 사태는 소수민족 문제와 경제개발의 부작용이 겹쳐서 나타난 것이었다. 포린폴리시에 따르면 지난 2005년의 경우 중국 내에서는 8만7000건의 크고 작은 봉기가 있었는데, 대부분 조직적 반란이라기보다는 자연발생적 봉기였다. 발전의 와중에 소외감을 느끼는 ‘10억 빈민들’이 들썩이고 있는 것이다. 중국전문가 앤드루 길홈은 로이터통신에 “경제적·사회적으로 특히나 취약한 소수민족의 봉기는 사라지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