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기가 보는 세상/아시아의 어제와 오늘

'위구르의 어머니' 레비야 카디르

딸기21 2009. 7. 6. 2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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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정부는 신장위구르에서 다시 대규모 반정부 시위가 일어나자 강경진압에 나서면서, 미국에 망명 중인 위구르족 여성 독립운동가 레비야 카디르(61.사진)를 ‘배후’로 지목했습니다. 미국 당국의 보호를 받는 카디르가 위구르인들에게 돈을 대고 시위를 부추겼다는 겁니다.

중국 정부의 이같은 주장으로 새삼 주목을 받게 된 카디르는 위구르 출신의 여성사업가이자 분리운동가로서, ‘위구르인의 어머니’라 불리는 인물이랍니다. 

그는 1948년 동투르키스탄(지금의 신장위구르 자치주)의 산악지대에서 태어났는데, 중국 공산당이 한족을 그곳으로 강제이주시키면서 사막으로 쫓겨났습니다. 카디르는 15세에 결혼해 여섯 아이를 낳았는데, 남편의 구타에 시달리다가 28세에 이혼했습니다. 
힘겨운 결혼생활과 문화대혁명의 소용돌이 속에 고초를 겪으며 보낸 뒤 혼자 세상에 나왔을 때 그에게는 아이들과 맨손 뿐이었습니다. 하지만 세탁업을 시작한 카디르는 타고난 사업수완과 억척으로 돈을 모았습니다. 
“빨래판 세 개와 비누 다섯 개로 시작한 세탁소가 내 첫 비즈니스였다.” 그는 목재·부동산·요식업 등으로 사업을 확장해, 한때 중국 부자순위 7위에까지 올랐습니다.

돈을 번 카디르는 위구르인들의 비참한 현실에 눈을 돌려 분리독립운동에 투신했습니다. 재혼한 남편 시딕 로우지도 위구르 독립운동가였습니다. 
민족을 위해 헌신하겠다고 나선 카디가르는 중국 당국엔 곧바로 눈엣가시가 됐지요. 그는 1999년 위구르 지역의 상황을 알아보러 방문한 미국 의회조사단을 만나러 가던 길에 당국에 체포돼 징역 8년을 선고받았습니다. 카디르의 세 아들도 징역형과 벌금형, 감금과 고문에 시달렸습니다. 
당국은 2005년 콘돌리자 라이스 당시 미 국무장관의 베이징 방문을 앞두고 투옥 6년만에야 카디르를 석방했습니다. 그는 그 해 가족들과 미국으로 망명, 지금까지 워싱턴에 살고 있습니다. 2006년 세계위구르인대회(WUC)에서 해외 위구르인들은 카디르를 의장으로 선출했습니다. 



카디르는 이후 매년 노벨평화상 후보로 거론되고 있으며, 그의 인생을 담은 <하늘을 흔드는 사람>이라는 책이 국내에도 출간돼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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