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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 "미군에 항공로를 열어주마"

딸기21 2009. 7. 5. 22: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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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가 미군에 영공을 내주기로 했다. 아프가니스탄 전쟁에서 보급로를 확보하지 못해 애를 먹던 미군에게 항공로를 열어주기로 한 것이다. 최근 몇년간 냉기가 돌았던 두 나라 사이에 훈풍이 불 조짐이다.

뉴욕타임스 등은 4일 양국 관리들을 인용해, 미국과 러시아 간 영공통과협정 협상이 타결됐다고 보도했다.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은 6~8일 모스크바 방문 때 드미트리 메드베데프 러시아 대통령과 만나 협정에 서명하고 공식 발표할 예정이다. 보급로 제공은 아프간 대공세에 나선 오바마 정부를 위한 크렘린의 선물인 셈이다. 메드베데프 대통령의 수석 보좌관 세르게이 프리호드코는 “육로와 항공로 모두를 열어주겠지만 미군의 보급은 대부분 항공로를 통해 이뤄질 것”이라고 말했다.
협정에 따르면 미군은 하루 10~12회까지 러시아 영공을 통과하는 비행을 할 수 있게 된다. 드미트리 로고진 나토 주재 러시아 대사는 “아프간에 파병하고 있는 프랑스와 독일, 스페인과도 보급로 제공 추가협정을 벌써 체결했다”고 밝혔다.

미국과 러시아는 빌 클린턴-보리스 옐친 정부 시절만 해도 아주 사이가 좋았었다. 조지 W 부시-블라디미르 푸틴 정부 초기에도 나쁘지는 않았다. 러시아는 아프간전 초반에도 나토군에 영공을 열어준 바 있다. 
하지만 부시 행정부가 동유럽 미사일방어(MD)시스템 배치 계획을 추진하면서 러시아의 신경을 긁었다. 푸틴은 집권 말기 국제회의 때마다 틈만 나면 미국을 공격했다. 러시아가 2007년 8월 핵무기 탑재 가능한 전략폭격기의 장거리 비행훈련을 재개하면서 양국간 군사적 대립까지 벌어졌다. 지난해 2월 러시아의 전략폭격기가 태평양 상에서 미군 니미츠 항공모함 위로 저공비행하며 미군 전투기들과 대치했다. 곧이어 다시 러시아 폭격기가 미 알래스카주 비행제한구역에 들어와 급발진된 미군 전투기와 맞닥뜨리는 일이 벌어졌다.

결정적으로 사이가 나빠진 계기는 지난해 8월의 그루지야 전쟁이었다. 러시아는 코카서스 지방에서 미국의 교두보 노릇을 하던 그루지야와 전쟁을 일으켜, 미군 장교들과 미 민간군사회사(PMC)들을 통해 훈련받은 그루지야군을 맹공했다.
9·11 테러 뒤 대테러전을 적극 돕겠다고 나섰던 러시아는 아프간전 협력도 거둬들였다. 러시아는 미군과 나토군에 ‘치명적이지 않은 무기’의 육로 수송만을 허용했다. 올들어서는 미군에 내줬던 보급기지 사용허가를 취소하게끔 중앙아시아의 키르기스스탄을 회유하기도 했다. 결국 임대료를 올려주어 다시 키르기스 기지를 쓸 수 있게는 됐지만 안정적인 보급로를 찾는 것은 미군에겐 전투보다 더 시급한 일이었다. 미군은 파키스탄 쪽 보급로가 무장세력의 공격으로 막히자 적대국가인 이란 쪽을 뚫어보는 방안까지 검토했을 정도였다. 오바마 정부는 이 때문에 집권 초반부터 러시아와의 관계개선에 크게 공을 들였다.

아직까지 일부 이견은 남아 있다. 미국 쪽 관리들은 “이제 필수적인 무기와 병력을 아프간에 실어나를 수 있게 됐다”고 말하는 반면, 러시아 쪽에서는 “미군의 이동은 안되고 무기만 실어나를 수 있다”며 다른 목소리를 냈다. 하지만 이것만 허용돼도 미군기가 연간 수천회에 걸쳐 러시아의 하늘을 드나들 수 있게 된다.
뉴욕타임스는 “몇년째 얼어붙었던 양국 관계가 풀리고 있음을 보여주는 가장 확실한 외교적 성과가 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오바마 공격에 발끈한 푸틴

“냉전을 답습하는 것은 러시아가 아니라 미국이다.”

6일부터 시작되는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의 러시아 방문을 앞두고 오바마와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총리 간 설전에 불이 붙었다. 오바마가 지난 2일 “푸틴은 여전히 과거의 냉전적인 사고방식에 한 발을 담그고 있다”고 포문을 열었더니, 푸틴은 3일 “러시아는 두 발로 굳건히 서 있어야 한다”며 맞받아쳤다. 로이터통신 등에 다르면 푸틴은 이날 국영TV에 출연해 “두 발이 따로 있어서는 설 수가 없다”며 “러시아인들은 두 발로 굳건히 서 있다”고 반격했다.
그는 “우리는 항상 미래를 지향해왔고, 이것이 러시아를 강하게 만들어준 힘이었다”고 강조했다. 그는 냉전 시대의 사고방식을 되풀이하고 있는 것은 오히려 미국이라고 주장하면서, 양국간 관계의 걸림돌이 돼온 미국의 동유럽 미사일방어(MD) 계획을 다시 비판했다. 또 나토(북대서양조약기구)의 동유럽 확대에 대해서도 “냉전식 군사정치적 블록을 늘리고 있다”고 말했다.

오바마는 드미트리 메드베데프 러시아 대통령과는 지난 4월 첫 정상회담 때부터 좋은 관계를 유지하고 있고, 앞서 푸틴을 비판하면서도 메드베데프에 대해서는 호평했다. 하지만 러시아의 실세가 푸틴임은 오바마도 잘 알고 있다. 관측통들은 오바마가 모스크바행을 앞두고 푸틴의 기를 누르기 위해 먼저 ‘도발’을 한 것으로 보고 있다. 푸틴의 답변은 오바마와의 기싸움에서 밀리지 않겠다는 의지의 표현으로 해석된다.

하지만 그러면서도 양측은 지난 몇년간의 대립을 벗어나 한층 가까워진 모습을 보여줄 것으로 전망된다. 러시아는 미군에 아프가니스탄 전쟁 보급로를 열어주기로 결정을 했고, 공식 발표만 앞두고 있다. 뉴욕타임스는 “오바마 정부는 반대급부로 러시아의 세계무역기구(WTO) 가입을 밀어준다는 약속을 할 것”이라고 보도했다. 미국 관리들이 지난달 모스크바를 찾아가 이미 이같은 의사를 알린 것으로 전해졌다. WTO 관련 합의도 이번 오바마 방문에서 공식 발표될 지 관심거리다.
오바마는 또 러시아와 전략무기감축협정(START-I)의 후속협정을 논의할 계획인데, 양측이 핵탄두 감축에 대해서도 의견 접근을 이룰 것으로 예상된다. 두 나라는 이미 수차례 실무진 교환방문을 통해 올해말 완료되는 START-I을 대신할 새 협정을 준비해왔다. 다만 러시아가 재래식 무기를 핵무기와 연계해 같이 줄일 것을 요구, 이견이 남아있다고 뉴욕타임스는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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