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기가 보는 세상/유럽이라는 곳

러시아 인권운동가 또 피살

딸기21 2009. 7. 16. 18:52
728x90
러시아에서 체첸 인권 실태를 비판해온 여성 인권운동가가 또 피살됐습니다. 러시아의 지원을 받아온 체첸 대통령이 이번 사건의 배후라는 의혹이 제기되고 있습니다. 체첸 문제를 거론하는 사람들은 러시아에서는 살아남기 힘들다는 잔혹한 현실을 다시한번 보여주는 사건입니다.




체첸 인권단체 ‘메모리얼’에서 활동해온 나탈랴 에스테미로바(50)가 15일 체첸에서 납치·살해됐다고 BBC방송 등이 보도했습니다. 에스테미로바는 이날 체첸 수도 그로즈니에서 차량을 탄 무장괴한들에 납치됐으며, 몇시간 뒤 인접한 잉구셰티야 공화국의 나즈란에서 머리와 가슴에 상처를 입은 시신으로 발견됐습니다.
에스테미로바는 러시아-체첸 혼혈로, 대학을 졸업하고 그로즈니에서 역사교사로 일하다가 2000년 인권운동에 뛰어들었습니다. 2006년 체첸문제를 보도한 뒤 살해된 여성 언론인 안나 폴리트코프스카야의 친구였다고 합니다. 에스테미로바는 위험을 무릅쓰고 체첸 실태를 외부에 알려 2007년에는 여성 노벨상 수상자들이 선정한 ‘폴리트코프스카야 인권상’을 받았으며 유럽의회의 로버트 슈만 메달을 받았습니다.

그가 피살당한 것은 최근의 메모리얼 활동과 관련있을 것이라는 분석이 많습니다. 에스테미로바는 지난달 체첸 당국이 분리주의 반군의 집들을 모두 불태우며 극심한 탄압을 하고 있다고 비판하는 조사 보고서를 냈습니다. 또 지난 7일 그로즈니 도심에서 총격전이 벌어진 뒤 보안군의 무력 남용과 민간인 사살을 맹비난했습니다. 그의 사무실은 외국 취재진이 그로즈니를 방문하면 가장 먼저 들르는 곳으로 잘 알려져 있었다고 BBC는 전했습니다.

에스테미로바가 숨지자 메모리얼 측은 블라디미르 푸틴의 지원을 받아온 람잔 카디로프 체첸공화국 대통령(32)을 배후로 지목했습니다. 
카디로프는 체첸 독립을 요구하는 반군의 공격에 숨진 아흐마드 카디로프 전대통령의 아들로, 분리운동을 강경 탄압해왔죠. 푸틴이 1999년 ‘2차 체첸전쟁’을 일으켜 반군을 초토화시킬 때 자신의 이름을 딴 사병(私兵) 조직 ‘카디로비츠’를 이끌고 러시아군에 합세했던 인물인데요. 2000년대 들어서는 체첸 정보국장을 맡아 러시아 국가정보국(FSB)의 파트너로 일하며 푸틴의 신임을 굳혔습니다. 
2004년 아버지가 숨진 뒤 부총리에서 총리 대행, 다시 총리로 초고속 승진을 했고 2007년3월에는 푸틴에 의해 체첸 대통령으로 임명됐습니다. 그가 체첸의 석유를 빼돌려 재산을 불렸다는 소문이 무성하고, 폴리트코프스카야 사건에도 개입했다는 의혹이 있습니다.

푸틴은 지난 4월 10년에 걸친 체첸작전의 종료를 공식 선언했으나 체첸에서는 독립운동가들에 대한 납치·살해·고문과 친 카디로프 민병대의 횡포가 계속되고 있습니다. 올들어서만 반정부 인사 50여명이 납치됐다고 합니다. 
메모리얼 측에 따르면 카디로프는 이를 비판하는 에스테미로바를 눈엣가시처럼 여겼습니다. 지난해에는 카디로프가 직접 불러 협박하는 바람에 에스테미로바가 잉구셰티야로 몇달간 피신하기도 했었다는군요. 카디로프는 “살인범은 응당 처벌을 받아야 한다”며 이번 사건과의 관련을 부인하고 있으나, 인권단체들은 “우리를 겁주기 위해 경고성으로 저지른 살인사건이 틀림없다”고 주장합니다.

이번 사건으로 유럽과 러시아 간에는 인권 갈등이 다시 불거지고 있습니다. 유럽연합(EU) 순회의장국인 스웨덴은 러시아를 맹비난했고, 유럽의회는 “러시아 연방정부 차원의 조사”를 촉구했습니다. 인권단체 휴먼라이츠워치(HRW)도 진상규명을 요구했고요. 
드미트리 메드베데프 러시아 대통령은 이런 비판을 의식한 듯 “연방기구를 통해 철저히 조사하겠다”는 성명을 냈지만 제대로 이뤄질지는 회의적입니다. 올초 체첸문제를 비판한 언론인과 인권변호사가 피살됐을 때에도 메드베데프는 ‘철저한 조사’를 약속했으나 범인은 오리무중이죠. 지금까지 비판적인 언론인·인권운동가 살해사건의 진상이 밝혀진 경우는 거의 없습니다. 뉴욕타임스는 “지난해 취임 때 ‘법치 확립’을 강조했던 메드베데프가 시험대에 오르게 됐다”고 보도했습니다.
728x9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