터키에 공 들이는 오바마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이 유럽순방 마지막 방문국인 터키에 도착해 ‘이슬람과의 화해’를 선언했다. 첫 본격 해외순방에서 이슬람국가를 방문, 우정을 강조한 것은 전임 행정부와 선을 긋고 미국의 이미지를 높이려는 뜻으로 풀이된다. 이라크·아프가니스탄 전쟁에서의 협력을 얻겠다는 의도도 들어 있다.

 

오바마는 6일 터키 의회에서 연설하며 “미국은 이슬람권과 전쟁을 하는 것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오바마는 또 터키 민주주의의 진전을 높이 평가하면서 “어려운 정치적 개혁들을 잘 수행하고 있다”고 치하했다. 또 압둘라 귤 터키 대통령과 회담한 뒤 공동기자회견을 갖고 “미국과 터키는 서구와 이슬람 간의 갈등을 극복하는 데에 모델이 될 만한 관계를 만들어낼 수 있다”며 협력을 늘려나갈 것임을 강조했다.
오바마는 이어 터키의 국부인 무스타파 케말 아타튀르크 묘지를 참배했다. 이날 의회로 향하는 오바마의 차량 행렬 앞에는 삼엄한 경계 속에서도 환영인파가 몰렸다. 2003년 조지 W 부시 당시 미 대통령이 터키를 찾았을 때 의회가 방문 반대 결의안을 냈던 것과는 전혀 다른 분위기였다고 현지 언론들은 전했다.

오바마는 이날 오후에는 실권자인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 총리와 만나 새 아프간 전략과 이라크 미군철수 계획을 설명하고 병참 수송로 제공 등 협력을 구했다. 에르도안 총리는 “문명간의 연대는 가능하다”며 “(이슬람) 극단주의에 단호히 대처해야 한다”고 답했다고 AP통신은 전했다. 오바마는 이튿날에는 이스탄불에서 소피아사원, 블루모스크 등의 유적지들을 둘러보고 ‘문명간의 연대’ 포럼에 참석한다.

 

 

미국은 터키에 유독 공을 들이고 있다. 지난달 초 힐러리 클린턴 국무장관도 유럽 순방 때에 터키를 방문했다. 오바마는 영국 주요20개국(G20) 회담과 프랑스·독일에서 열린 나토회담, 체코 미-유럽연합(EU) 정상회담에 이어 터키를 찾았다.
백악관은 “이웃한 나라들을 한번에 방문하는 것”이라고 설명했지만 터키 방문에는 두 가지 목적이 있는 것으로 분석된다. 첫째 부시 시절 손상된 미국과 이슬람권 관계를 복원하는 것이다.
터키는 유럽에 끼고 깊어하는 세속 국가다. 내부 민주주의 제도·관행에 문제가 없지 않지만 다른 이슬람 국가들에 비하면 두드러지게 서구화되고 경제도 세계화돼 있다. 앙카라경제정책연구소 니하트 알리 오잔은 AP인터뷰에서 “미국 새 정부는 전임 행정부와는 이슬람권에 대한 생각이 다름을 강조하고 싶어한다”며 “오바마는 그 ‘쉬운 상대’로 터키를 고른 것 같다”고 말했다. 터키는 나토 내 유일한 이슬람국가이자, 이슬람권에서 손꼽히는 미국의 맹방이기 때문이다. 워싱턴의 전문가들도 “오바마의 터키 방문은 잘 한 결정”이라고 평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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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하나의 목적은 전략적이면서도 실질적인 것이다. 터키는 이라크·아프간전 병참 수송로에 위치한 전략요충지다. 북쪽으로는 러시아, 남쪽으로는 시리아와 이라크, 서쪽으로는 유럽, 동쪽으로는 이란과 맞닿아 있다. 이슬람과 서방의 가교 역으로는 제격이다. 미국은 터키와의 관계를 굳건히 해놓는 것이 중동-이슬람권의 다양한 문제들을 풀어가는데에 밑거름이 되리라는 인식을 갖고 있다.

오바마는 벌써 ‘당근’을 터키에 쥐어줬다. 5일 EU 정상회담에서 독일·프랑스의 반대입장을 알면서도 터키의 EU 가입을 지지한다는 뜻을 다시한번 밝힌 것이다. AP는 “오바마는 터키에게 줄 수 있는 최선의 것을 주려고 하고 있음을 보여줬다”고 평가했다. 앞서 터키도 오바마의 요청에 따라 기존의 반대 입장을 뒤집고 덴마크 전임총리를 나토의 새 사무총장에 앉히는데 찬성해줬다.

하지만 오바마가 이번 방문으로 현안들을 모두 풀어내기는 힘들 것으로 보인다. 터키 일간 후리예트는 “오바마는 무거운 짐더미를 들고 앙카라에 왔다”고 보도했다. 터키에서 오바마의 인기가 높은 것은 사실이지만, 반미 감정은 아직 사그라들지 않았다. 5일 앙카라 시내에서는 오바마 환영 행렬과 함께 반미 시위도 벌어졌다. 우파 이슬람 정권의 탄압을 받아온 지식인과 야당들은 “오바마 정부가 전쟁에서 도움을 받기 위해 우익 정권과 손잡으려 한다” 비판도 나온다.
터키 정부가 이라크·아프간전 지원 약속을 흔쾌히 해줄 것 같지는 않다. 프랑스·독일 정상은 오바마의 요청을 거부하며 즉시 “터키를 EU에 받아들일 수 없다”고 못박았다. “터키인들은 오바마의 요청만으로 EU에 받아들여지지는 않으리라는 것도 잘 알고 있다”고 후리예트는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