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기가 보는 세상/아시아의 어제와 오늘

파산 지경 파키스탄

딸기21 2008. 10. 26. 22: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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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테러전쟁과 미국 원조에 매달려온 파키스탄이 결국 ‘파산 국가’로 전락했습니다. 남아시아의 패권국이자 핵무기 보유국인 파키스탄은 외화보유고가 바닥나 국제통화기금(IMF) 구제금융을 받기로 결정했습니다. 한달전 취임한 민선 대통령은 집권하자마자 외국을 돌아다니며 달러를 구걸해야 하는 처지가 됐습니다.


파키스탄 일간 ‘더 뉴스’는 23일 IMF가 파키스탄에 3년간 96억 달러 구제금융을 제공하는 대신 국방예산 30% 삭감과 정부 규모 축소 등을 요구하는 지원방안을 제시했다고 보도했습니다. 파키스탄 정부는 구제금융 요청 사실을 부인하면서 주변국들과 자금 협력방안을 논의하고 있다고 밝혔지만 ‘IMF행’이 확정돼 가는 분위기입니다.

파키스탄은 2004년부터 4년간 연평균 실질국내총생산(GDP) 성장률이 7%에 이를 정도로 고속성장을 구가해왔습니다. 세계 6위 인구 대국(1억7300만명)인 이 나라는 언제나 국제기관들이 평가하는 ‘성장 잠재력이 큰 나라’에 들어갔었지요. 그러나 외세 의존과 정치 불안, 후진적인 사회구조 때문에 끝내 ‘실패한 국가’로 전락하고 있습니다. 영국 경제전문지 이코노미스트는 23일자 인터넷판에서 “미국의 ‘테러와의 전쟁’ 최전선인 파키스탄이 파산에 직면해있됐다”며 인구의 4분의1이 빈곤선 이하에서 생활하는 파키스탄의 열악한 현실을 전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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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키스탄 북서부 도시 페샤와르 인근의 카챠 가리 난민촌에서 19일 
정부군의 이슬람 무장세력 소탕작전으로 집을 잃은 난민들이 노숙을 하고 있습니다. /A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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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챠가리 난민촌의 어린 소년 /AP


올 들어 파키스탄의 누적 인플레이션은 30%에 이르며 루피화 가치는 25%나 떨어졌습니다. 지난 11일 기준 외환보유액은 중앙은행·민간은행을 다 합쳐 120억9000만 달러였는에 그 중 상당부분을 이달 중순 이후 써버렸고, 지금은 6주치 수출대금 결제분만 남아있다고 합니다.
올 12월, 내년 2월 만기인 수억달러 규모 채권 결제를 해야하는데다 앞으로 2년간 채권 100억달러 어치 추가 결제가 필요해 15~30일 이내 ‘급전’을 마련하지 않으면 안 되는 상황입니다. 신용평가회사 무디스의 애널리스트 아닌다 미트라는 로이터통신 인터뷰에서 “파키스탄의 최악 상황은 아직 오지 않았다”며 더 큰 고비가 올 것이라고 지적했습니다.

베나지르 부토 전총리의 남편으로 지난달 취임한 아시프 알리 자르다리 대통령은 국가부도 위기에 이르자 미국과 중국에 손을 내밀었지만 거절당했습니다. 자르다리는 다음달초 사우디아라비아를 찾아가 지원을 요청할 계획입니다.
이번주 들어 이슬라마바드에서 미국, 사우디, 아랍에미리트연합(UAE), 영국, 프랑스, 일본 대표단이 자르다리 정부와 차관 제공 협상을 하고 있으나 파키스탄의 ‘신용’이 워낙 떨어져 있어 타결될지는 불확실합니다. 자르다리는 부토 집권시절부터 부패로 악명 높았던 인물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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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키스탄이 빚더미에 오른 것은 처음이 아닙니다. 

1990년대 집권했던 베나지르 부토, 나와즈 샤리프 전 총리는 모두 집권과 함께 IMF에 구제금융을 요청했다가 거절당해 디폴트(채무불이행) 직전까지 갔었습니다. 99년 군사쿠데타로 집권한 무샤라프 전대통령은 IMF에 돈을 빌리는 한편, 미국으로부터도 거액 원조를 받았습니다. 2001년11월 미국이 아프가니스탄 전쟁을 일으키자 군 기지를 제공하면서 총 110억 달러에 이르는 원조를 받았고요. 미국이 없애준 빚만 수백억 달러라고 합니다.

파키스탄은 그 돈으로 인프라를 깔고 개발에 나서는 대신 사치품을 수입하며 흥청거렸습니다. 무샤라프가 집권할 때 내세웠던 개혁 약속은 물 건너갔고, 부패한 정부 관리들과 군 장성들만 배를 채웠습니다. 영국 인디펜던트는 “무샤라프 정부가 북서부 아프간 접경지역 알카에다·탈레반을 소탕한다며 군사비를 대폭 늘린 것도 재정 파산의 한 이유가 됐다”고 지적했습니다.
무샤라프 정권은 돈이 떨어지면 채권을 발행, 외국 돈을 끌어다 빚을 갚는 행동을 반복했습니다. 최근 유가가 급등하고 곡물값이 덩달아 오르자 급기야 살림이 거덜 나는 상황이 됐지요.

상황이 이렇게 되자, 전통적 우방이던 중국과 대테러전 동맹이던 미국이 모두 등을 돌렸습니다.
특히 미국은 파키스탄이 대테러전을 빌미로 돈만 얻어낸 뒤 실질적인 협력을 안 하고 있다며 내칠 조짐을 보이고 있습니다.
미국 의회에는 파키스탄에 10년간 15억 달러의 원조를 제공하는 내용의 법안이 올라와 있으나, 이 법안에는 ‘변경지역 극단세력을 소탕할 것’이라는 단서가 붙어 있습니다. 하지만 파키스탄이 이런 상황에서 가시적인 대테러전 성과를 내올 리는 만무하지요.
친미 노선을 내세웠던 무샤라프는 대테러전에 협력했다는 이유로 이슬람 세력의 반발을 사 거센 퇴진 시위에 부딪쳐 결국 실각했습니다. 이슬람 세력의 눈치를 보지 않을 수 없는 처지인 현 의회는 지난 22일 대미 종속에서 벗어나 ‘독자적인 외교정책’을 가져야 한다면서 “대테러전 정책을 전면 재검토할 것”, “대화와 협상을 통해 극단주의를 해결할 것”을 요구하는 결의안을 채택했습니다.

크리스천사이언스모니터는 “자르다리 정부는 외국이 자신들을 도와줄 것이라고 생각했으나 현실은 그리 간단하지 않다는 사실이 드러났다”며 “파키스탄 정부는 곳곳에 손을 내밀며 ‘친구’를 찾아나서야 하는 처지가 됐다”고 지적했습니다. 경제가 나락으로 떨어진 23일에도 아프간에 접한 북서변경주에서는 탈레반과 정부군간 싸움이 계속됐으며 극단주의자들에 의한 주민 살해와 미사일 공격이 이어졌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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