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기가 보는 세상/아시아의 어제와 오늘

혼돈의 태국

딸기21 2008. 9. 2. 21: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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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국이 또다시 혼돈 속으로 빠져들었다. 친정부·반정부 시위대 간 충돌로 유혈사태가 빚어진 뒤 수도 방콕에 비상사태가 선포됐다. 공공부문 노조들은 반정부 시위에 합세해 총파업을 선언한 상태다.

 

집권 여당 ‘국민의 힘(PPP)’을 이끄는 사막 순다라벳 총리는 2일 반정부 시위대 진압을 위해 방콕 시내에 군 병력을 투입하고 비상사태를 선포했다. 전날 밤부터 이날 새벽까지 방콕 시내에서는 총리 퇴진을 요구하는 학생·노동자·야당 지지자들의 격렬한 시위가 벌어졌다. 이들 반정부 시위대는 정부청사 주변에서 친정부 시위대와 충돌을 빚었다. 이 과정에서 시위대 1명이 숨지고 40여명이 다쳤다고 방콕포스트가 보도했다.

사막 총리는 5명 이상의 집회를 금지하고 방콕 시내 치안권을 군에 넘겼다. 그는 “조기 총선은 없다”며 시위대가 정부 청사 점거를 풀지 않을 경우 강제 해산하겠다고 압박했다. 하지만 반정부 시위대 측은 “사막 총리가 퇴진하지 않으면 해산을 위한 협상에 임할 수 없다”는 뜻을 명확히 밝히며 해산을 거부했다. 시위대 수는 오히려 불어났다. 선거관리위원회마저 헌법재판소에 여당인 PPP 해산명령 청구 소송을 내기로 했다.

질서유지의 전권을 맡게 된 군부의 쿠데타 움직임은 아직 보이지 않고 있다. 아누퐁 파오진다 육군 참모총장은 기자회견에서 군의 쿠데타 가능성에 대해 “우리는 법과 의회 체계를 통해 해결방안을 찾아야 한다”면서 “군·경은 어떤 시민에게도 폭력을 사용하지 않을 것임을 약속한다”며 반정부 시위대에 협상을 제안했다.

앞서 국민민주연대(PAD)를 지지하는 43개 국영기업 노조들은 반정부 연대 파업을 선언했다. 관공서의 수도·전기 공급을 중단하고 정부기관과 각료들의 집 전화도 끊기로 했다. 방콕 국제공항에서는 2일부터 항공 운항에 차질이 빚어졌고 시내 버스의 80%는 발이 묶였다. 태국 증시는 이날 19개월 만에 최저로 추락했다.

태국에서는 군사정권이 물러나고 후반 민주화가 시작된 뒤로 20여년간 소요와 진압, 쿠데타와 총선거의 악순환이 반복됐다. 겉으로는 자유시장경제와 입헌민주주의를 지향하지만 여전히 후진성을 면치 못하고 있는 정치·경제·사회 구조 때문에 혼란이 사라지지 않는다는 지적이 많다.

태국은 1932년 입헌군주국이 됐지만 아직까지도 왕정의 권위가 절대적이다. 46년 즉위한 푸미폰 국왕은 입헌 정부를 웃도는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 태국은 80년까지 권위주의적인 군사정권 체제였다가 88년 찻타이(타이국민당)의 차티차이 추나반 총리가 취임하면서 사실상 첫 민주화 정부가 들어섰다. 그러나 곧바로 군 장성 출신 수친다 크라프라윤 총리 체제로 바뀌는 등 곡절을 겪었다. 92년 5월 ‘방콕의 봄’ 때 군사정권 반대시위가 일어나 750여명이 군 발포로 숨지는 비극을 겪기도 했다.
같은 해 민주당 추안 릭파이 총리 정부가 들어선 뒤로 한동안 안정을 찾는 듯했으나 차왈릿 융차이윳 총리 시절인 97년 금융위기로 인해 나락으로 떨어졌다.

이번 소요사태의 원인제공자인 탁신이 정권을 잡은 것은 2001년. 재벌기업가 출신인 탁신은 타이락타이(TRT)라는 정당을 만든 뒤 경제성장과 개발 내세워 하원 500석 중 296석을 휩쓰는 승리를 거두고 집권했다. 2005년에는 쓰나미 피해를 입은 농촌에 대거 보조금을 지급하는 등의 포퓰리즘 정책을 펼친 덕에 총선에서 다시 압승을 거뒀다. 하지만 탁신은 2006년 부패 문제로 야당들의 탄핵 위기에 몰렸고, 여론은 극단적으로 양분됐다. 이 해 9월 군부 쿠데타가 일어나면서 탁신은 국외로 망명하는 처지가 됐다.
지난해 말 총선에서 TRT의 후신인 ‘국민의 힘’이 승리를 거둬 친탁신파 사막 총리가 집권했지만 갈라진 여론을 한데 모으진 못했다. 대학생과 노동자·지식층은 “사막은 탁신 1인 독재정권의 꼭두각시일 뿐”이라며 다시 반정부 시위를 벌이고 나섰고, 결국 방콕 비상사태로 이어지게 됐다.

최대 불만은 역시 ‘경제’에 있다는 분석이 많다. 태국은 동남아에서 인도네시아에 이어 2위의 경제 규모를 갖고 있다. 1985년부터 96년 사이에는 연 평균 9.6%에 이르는 경제성장률을 보이기도 했다. 하지만 금융위기 뒤 성장의 모티브를 다시 찾지 못한 채 관광산업과 농산물 수출에만 매달리고 있다.

탁신은 집권 시절 대외의존도를 낮추고 내수시장을 키우는 정책을 펼쳐 경제성장률을 5.3%(2002년)-7.1%(2003년)-6.3%(2004년)로 끌어올린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여전히 노동인구의 절반에 가까운 49%는 농업에 종사하고 있고 제조업 고용비율은 14%에 불과하다. 하루 30만 배럴 가량의 원유를 생산하고는 있으나 만성적 에너지부족에 시달리고 있다. 수출품목도 쌀, 타피오카(곡물 종류), 고무, 설탕, 새우, 닭고기 같은 1차 상품이 대부분이다. 탁신이 농민들 지지만으로 ‘인기에 의한 독재’를 할 수 있었던 것도 이런 구조 때문이었다.
북부 산악지대 소수민족과 남부의 무슬림 등 소수민족·소수종교 신도들을 강압적으로 다루는 탓에 불안요인이 상존하고 있다. ‘국경없는 기자회’가 발표한 언론자유 순위에서는 169개국 중 134위에 그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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