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9년 군부 쿠데타로 집권한 뒤 미국의 지원 속에 9년간 정권을 유지해온 무샤라프가 물러남으로써 파키스탄 정국에 큰 변화가 예상된다. 또 아프가니스탄에 인접한 파키스탄에서 이슬람 극단주의의 발흥을 일정 부분 저지해온 무샤라프 정권이 물러남으로써, 미국은 남아시아 대 테러 전쟁의 최대 동반자를 잃게 됐다.
무샤라프는 이날 TV로 생중계된 대국민 연설을 통해 “탄핵 공방이 계속돼 국익이 훼손되는 것을 막기 위해 물러나기로 했다”면서 “나의 미래는 국민들의 손에 맡긴다”고 말했다. 그러나 탄핵 추진에 대해선 “내게 제기된 어떤 탄핵 사유도 성립될 수 없는 것”이라며 부당성을 주장했다. 그는 “집권 기간 내린 모든 결정은 파키스탄 국민들의 이익을 최우선적으로 고려한 것이었다”면서 카슈미르 분쟁을 끝내고 인도와의 관계를 정상화한 것 등을 치적으로 내세웠다.
무샤라프의 사임 선언은 의회의 탄핵안 상정을 하루 앞두고 나왔다. 의회 다수 의석을 차지하고 있는 야권의 파키스탄인민당(PPP)과 파키스탄무슬림리그(PML-N) 등은 지난 7일 무샤라프 탄핵에 합의하고 퇴진 압력을 가해왔었다. 야권은 무샤라프가 대통령직을 내놓을 경우 신변 안전을 보장하는 등의 방안을 제시함으로써 사임을 설득한 것으로 알려졌다.
파키스탄 일간 ‘돈(DAWN)’은 “(무샤라프의 권력 기반이던) 군부가 중립을 약속하는 대신, 무샤라프를 탄핵이 아닌 명예로운 방식으로 퇴진시켜줄 것을 요구한 것도 야당과 무샤라프 간 합의에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인다”고 보도했다. 여기에 미국마저 등을 돌리면서 무샤라프는 더 이상 버틸 힘을 잃은 것으로 분석된다.
지난해 암살된 베나지르 부토 전 총리의 아들로 PPP 공동 대표를 맡고 있는 빌라왈 자르다리 부토는 “민주주의가 승리함으로써 어머니의 복수는 이뤄졌다”며 무샤라프의 사임을 반겼다. 그러나 야권은 무샤라프 이후 체제의 구성에 대해서는 아직 구체적 합의를 이루지 못한 것으로 알려져 당분간 정국 혼란이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미국은 물러나는 무샤라프를 치하하면서, 차기 정부와도 대테러전 공동전선을 계속 추구할 것이라는 입장을 밝혔다. 콘돌리자 라이스 미국 국무장관은 콘돌리자 라이스 미국 국무장관은 “알카에다와의 싸움을 함께했던 무샤라프 대통령에게 감사한다”며 “그는 극단주의·테러리즘과 싸우는 데 있어 세계에서 가장 훌륭한 파트너 중 하나였다”고 추켜세웠다.
라이스 장관은 “파키스탄의 새 정부와도 협력을 계속할 것”이라고 말했다. 앞서 라이스 장관은 “미국은 무샤라프 대통령에게 망명처를 제공하지는 않을 것”이라며 거리를 뒀었다. 영국 외무부도 성명을 내고 “무샤라프 대통령의 사임 발표로 파키스탄 역사의 임계상황은 끝날 것”이라고 평가했다.
파키스탄의 페르베즈 무샤라프 대통령이 결국 사임을 선언했다. 군부 쿠데타로 권력을 장악한 무샤라프는 국민들의 민주화 요구를 묵살하다가 결국 탄핵을 앞두고 등떼밀려 정권을 내놓는 처지가 됐다.
무샤라프는 18일 TV방송을 통해 생중계된 대국민 연설에서 “내가 처한 상황을 놓고 법률 전문가들의 자문을 받고 정치적 동지들의 의견을 들어본 결과 사임을 결정하게 됐다”고 밝혔다. 이로써 무샤라프의 친미 쿠데타 정권은 막을 내리게 됐으며 파키스탄은 9년만에 민간 정부로 돌아가게 됐다.
이슬라마바드와 카라치, 페샤와르 등 대도시에서는 시민들이 거리로 뛰쳐나와 무샤라프 퇴진에 환호했다. 무샤라프의 사임 발표를 이끌어낸 최대 정당 파키스탄인민당(PPP)은 “민주화를 염원해온 파키스탄 국민들의 승리”라며 이른 시일 내 다른 정당들과 협의해 새 정부를 구성할 것이라고 밝혔다.
무샤라프 사임으로 파키스탄 정국이 안정을 찾을 지는 불투명하다. PPP 소식통들은 “무샤라프 이후 체제에 대해서는 더 논의할 필요가 있다”고 밝혀, 연정 내 여러 정당들이 아직 차기 정부 구성에 대해 합의하지 못했음을 시사했다. PPP는 베나지르 부토 전 총리의 아들 빌라왈과 남편 아시프 알리 자르다리가 공동의장을 맡고 있으나 빌라왈은 아직 19세에 불과하다. 자르다리는 부토 집권 시절의 부패 전력 때문에 국민들의 완전한 신뢰를 얻지 못하고 있다.
정당연합의 양대 축인 PPP와 파키스탄무슬림리그-나와즈(PML-N) 간 분열이 일어날 가능성도 없지 않다. PML-N을 이끄는 나와즈 샤리프 당수는 1998~99년 민선 총리를 지내다가 무샤라프의 쿠데타에 축출됐었다. 그는 오랜 망명생활 뒤 지난해 귀국했다. 자르다리와 샤리프 세력 간 절충을 거쳐 예상 밖의 인물이 의회에서 대통령으로 선출될 가능성도 있다. 일간 ‘더 네이션’은 자르다리가 “다음번 대통령은 여성이 될 수도 있다”고 말했다고 보도했으나 이 잠재적 여성 후보가 누구인지는 밝히지 않았다.
특히 지난해 말 8년간의 망명 끝에 돌아온 부토 전총리가 피살되자 정국은 폭풍전야의 긴장으로 치달았다. PPP는 지난 2월 총선에서 압승한 뒤 다른 정당들과 연정을 구성, 그에게 사임 압력을 가해왔다.
탈레반·알카에다 계열 무장집단이 파키스탄 변경지대를 장악하자 무샤라프 정권은 미국으로부터도 신임을 잃었다. 군부와 막강한 권세를 자랑했던 군 정보부(ISI)도 중립을 선언, 그에게 등을 돌렸다.
미국은 2001년 아프가니스탄 공격을 시작한 이래 파키스탄의 페르베즈 무샤라프 대통령을 남아시아 최대 ‘대테러전쟁 동반자’로 삼고 지원해왔다. 파키스탄에서 이슬람 극단주의의 득세를 막는 역할을 해왔던 무샤라프가 18일 물러남으로써, 미국의 대테러전쟁 전략에도 차질이 불가피해졌다.
무샤라프는 아프간 전쟁이 일어나자 미국에 군사기지를 내주고 천문학적인 원조를 얻어냈다. 그러나 미국의 원조는 부패한 정권의 권력유지 수단이 되었을 뿐 국민들에게 돌아가지 않았다. 이는 파키스탄인들의 반미·반무샤라프 정서를 키우는 역효과를 낳았다.
무샤라프가 물러남으로써 파키스탄은 이슬람 포퓰리즘에 휩싸일 가능성이 더욱 높아졌다.
무샤라프는 정통성 없는 집권자이긴 했으나, 파키스탄에서 이슬람 극단주의의 득세를 어느 정도나마 막아주는 역할을 했었다. 대도시를 제외하고 파키스탄 대부분 지역들은 이슬람 극단주의와 전근대적인 부족주의를 벗어나지 못한 상태여서, 여성들에 대한 이른바 ‘명예살인’ 등 비상식적인 살해행위와 인권탄압이 버젓이 일어나고 있다. 미국을 비롯한 서방국들이 정통성 없는 무샤라프 정권을 우호적으로 대해온 것은 무샤라프와 군부가 ‘세속주의’를 지키는 보루 역할을 해왔기 때문이었다.
파키스탄 북서부 산악지대는 이미 몇년 전부터 아프간에서 넘어온 알카에다·탈레반 계열 극단주의 무장조직에 장악돼 있다. 특히 북서변경주와 와지리스탄은 파키스탄에서 사실상 독립돼 정부의 힘이 미치지 못하는 상태여서, 이들 지역의 ‘탈레바니스탄(탈레반 국가)’화가 가속될 것으로 보인다. 새 정부의 주축이 될 파키스탄인민당(PPP)은 세속주의 정당이지만 이슬람세력의 눈치를 보지 않을 수 없는 처지다.
전문가들은 남아시아·중앙아시아의 독재정권들을 밀어주고 대테러전 기지로 삼았던 미국의 전략이 총체적으로 잘못된 것이었다고 지적한다. 미국은 무샤라프를 지원함으로써 파키스탄 내 탈레반·알카에다 지원세력을 제거, 아프간 전쟁의 기지로 동원할 수 있다고 믿었지만 현실은 반대였다는 것이다.
실제 파키스탄은 인도네시아·모로코·영국·스페인 연쇄 테러의 주범들이 활동했던 근거지였음이 드러났다. ‘무하마드 만평파문’과 쿠바 관타나모 ‘코란 모독 사건’ 때 가장 격렬한 반미·반서방 시위가 일어났던 곳도 파키스탄이었다. 파이낸셜타임스는 워싱턴 안보전문가들의 말을 인용, “미국은 파키스탄 같은 나라들을 다룰 때 현지 정서를 무시하는 경향이 있다”며 이것이 실패를 불러왔다고 지적했다.
영국의 파키스탄 전문가 파르자나 샤이크는 AFP통신 인터뷰에서 “무샤라프의 퇴진은 그와 동맹을 맺었던 서방국들에도 큰 타격을 입힐 것”이라고 전망했다.
무샤라프 집권 기간 파키스탄과 카슈미르 분쟁을 끝내고 휴전협정을 맺었던 인도도 핵 보유국이자 역내 라이벌인 파키스탄의 ‘권력 공백’을 우려했다. 반면 아프간 정부는 공개적으로 환영 의사를 밝혔다고 외신들은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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