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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가 그루지야로부터 독립을 선언한 남오세티야 자치공화국을 자국 영토로 병합할 준비를 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블라디미르 푸틴 총리는 CNN방송과 인터뷰를 하면서 작심한 듯 미국을 공격했다. 러시아는 또 서방에 보란 듯이 탄도미사일 발사실험과 흑해함대 훈련을 하면서 무력 시위를 하고 있다.
AP통신은 29일 러시아가 몇년 이내에 남오세티야를 흡수, 자국령 북오세티야와 통합하려는 계획을 갖고 있다고 보도했다. 즈나우르 가시예프 남오세티야 의회 의장은 이미 며칠 전 에두아르드 코코이티 남오세티야 대통령이 모스크바를 방문해 크렘린과 이 문제를 논의했다고 밝혔다.
가시예프는 러시아가 늦어도 몇년 안에는 남오세티야를 합병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루지야에 속해있는 남오세티야는 러시아령 북오세티야와의 통합을 바라고 있다. 러시아는 며칠전 남오세티야, 압하야지의 독립을 ‘승인’한 바 있다.
인테르팍스 통신은 남오세티야 관리들의 말을 인용해 “러시아가 남오세티야에 군사기지를 만들기로 했다”고 보도했다. 러시아는 다음달 초 쯤 남오세티야와 군사기지 설치 협정을 맺을 것으로 알려졌다. 이는 그루지야의 거센 반발을 불러올 것이 뻔하다. 뿐만 아니라, 남오세티야에서 완전히 군대를 철수시킬것을 요구해온 미국과 유럽으로부터도 비난이 쏟아질 것으로 보인다.
러시아와 서방의 관계는 악화일로로 치닫고 있다.
그루지야 전쟁을 주도한 푸틴 총리는 28일 “미국이 올 대선에 이용하기 위해 그루지야 긴장을 조성했다”고 주장하며 미국을 맹공격했다. 그는 CNN 인터뷰에서 “미국이 대선 후보들 중 어느 한쪽을 유리하게 만들기 위해 이번 사태를 촉발시킨 것 같다”면서 “미국은 아마도 대선에 이용할 ‘작은 승리’가 필요했던 것 같다”고 말했다. 이 발언은 대 러시아 강경론을 펴온 공화당의 존 매케인 대선후보를 겨냥한 것으로 보인다.
푸틴 총리는 “미국인이 남오세티야 전투 현장에 있었다는 사실이 이런 의심을 뒷받침해주는 증거”라고 주장했다. 앞서 아나톨리 노고비친 러시아군 부합참의장은 26일 기자회견을 갖고 “그루지야군이 학살을 저지른 남오세티야 전장에서 ‘마이클 리 화이트’라는 텍사스 출신 미국 남성의 여권을 찾아냈다”고 주장했었다. 때를 같이해 러시아 검찰은 “그루지야가 남오세티야를 침공한 사실을 보여주는 증거물 5000여개를 수집했다”고 발표했다. 검찰은 이 ‘증거물’들 중에 그루지야군 무기 뿐 아니라 북대서양조약기구(나토) 무기와 독일·미국 등의 군사장비들이 포함돼 있다고 주장했다.
그루지야에 130여명의 미군 장교들이 파견돼 그루지야군·경찰 훈련을 맡고 있다는 것은 미 국방부도 인정한 사실이다. 미국계 민간군사회사(PMC) 직원 20~30명이 그루지야 수도 트빌리시에서 군사용역을 맡고 있다는 것도 확인됐다. 하지만 미국은 남오세티야에 미군이 있었다는 것은 말도 안된다고 주장한다. 미 국방부는 지난 8일 그루지야가 남오세티야를 공격한 직후 트빌리시의 미군들에게 ‘사태에 개입하지 말 것’을 지시했다고 미국 언론들이 보도한 바 있다.
데이너 페리노 백악관 대변인은 푸틴 총리가 제기한 ‘미국 음모론’에 대해 “명백히 잘못된 소리”라고 일축했다. 미하일 사카슈빌리 그루지야 대통령은 푸틴 총리 인터뷰에 맞춰 프랑스24 TV에 출연해 “남오세티야에 미군은 없었다”고 주장했다.
푸틴 총리는 또 미국산 닭고기·돼지고기 수입 쿼터를 축소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앞서 미국은 러시아가 그루지야에서 철수하지 않을 경우 10년 넘게 끌어온 세계무역기구(WTO) 가입협상이 또 차질을 빚을 수 있다고 경고했었다. 푸틴 총리는 “축산물 수입쿼터를 줄인 것은 미국 수출회사들이 법규를 어긴 사실이 적발됐기 때문이며 그루지야 사태와는 관련 없다”고 말했지만, 미국의 위협에 맞불을 놓으려는 의도로 풀이되고 있다. 월스트리트저널에 따르면 러시아는 미국산 닭고기 최대 수입국이다.
러시아의 ‘무력 시위’도 계속되고 있다. 인테르팍스통신은 러시아군이 28일 모스크바 북서쪽 플레세츠크 우주기지에서 RS-12M 대륙간 탄도미사일(ICBM)을 시험발사했다고 보도했다. 러시아는 지난해 5월에도 미국이 동유럽에 미사일방어(MD)시스템을 확대하는 것에 반발, ICBM을 시험발사했었다.
러시아는 또 나토가 이달 중순부터 흑해에서 합동군사훈련을 벌이고 있는 데에 항의하듯, 우크라이나 연안 흑해에서 함대 훈련을 실시했다. 흑해함대는 28일 “해상훈련을 무사히 마친 아조프 함정이 세바스토폴 해군기지로 돌아왔다”는 성명을 냈다.
전날 친서방계 우크라이나는 자국령 크리미아 자치공화국에 있는 세바스토폴의 흑해함대 기지 사용료를 올리겠다는 뜻을 시사, 러시아를 자극했었다. 러시아와 나토는 서로를 향해 “흑해의 군사적 긴장을 고조시키고 있다”며 비난하고 있다.
그루지야와 밀접한 관계인 이스라엘의 보수일간지 예루살렘포스트는 “러시아군이 시리아를 기항지로 활용해 지중해 해상활동을 강화하려 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러시아는 미국의 동유럽 MD 계획에 항의, 시리아와의 군사교류를 확대하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그루지야에 무기를 공급하고 군사자문을 해줬던 이스라엘은 러시아-시리아 관계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미국과 서방은 러시아의 움직임에 당혹감을 감추지 못하면서, ‘중재’와 ‘대결’ 사이에서 갈팡질팡하고 있다. 백악관은 28일 미-러 간 민간 핵협력협정을 폐지하는 방안도 고려를 하고 있다고 밝혔으나, 러시아 경제제재 등을 논의하긴 이르다며 다소 신중한 입장을 보이고 있다.
유럽은 갈라져 있다. ‘인도적 개입론자’로 유명한 베르나르 쿠슈네르 프랑스 외무장관은 파리에서 28일 기자회견을 갖고 “유럽연합(EU)는 그루지야 철군을 미루는 러시아에 단호히 대처하기 위해 경제 제재를 검토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니콜라 사르코지 프랑스 대통령은 러시아와 그루지야 간 중재에 다시 나서겠다고 밝혀, 외무장관과 엇박자 행보를 보였다.
■ ‘그루지야 사태’ 일지
8.8 그루지야군, 남오세티야 자치공화국 공격.
러시아군, 남오세티야 수도 츠힌발리에서 그루지야군과 교전
9 그루지야군 남오세티야에서 철수. 러시아군, 그루지야 고리 등 폭격
10 미국·유럽, 그루지야에 중재단 파견
11 그루지야 정부, 휴전협정안 서명
13 메드베데프 러시아대통령, “작전 종료” 선언.
14 그루지야, 러시아가 철군 미루고 있다고 비난
미국, “그루지야 군사적 원조 검토” 발표
15 러시아·유럽, 모스크바에서 평화협정안 논의
16 러시아, 유럽이 중재한 평화협정안 서명
17 메드베데프 러 대통령, “철군 진행중” 사르코지 프랑스대통령에 통보
19 북대서양조약기구(나토) 외무장관 긴급회담
21 미국, 폴란드와 미사일방어(MD)시스템 배치협정 체결
24 미군 함정, 구호품 싣고 그루지야 바투미항 입항
25 부시 미 대통령, “러시아가 그루지야 분리세력 지지하는 것 우려”
26 러시아 정부, 남오세티야·압하지야 자치공화국 독립 승인
27 푸틴 러 총리, “흑해에 나토군 드나드는 것은 협정 위반” 경고
28 푸틴 총리, “그루지야 사태는 미국 음모에서 나온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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