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기가 보는 세상/유럽이라는 곳

13년만에 붙잡힌 보스니아 학살자

딸기21 2008. 7. 23. 10: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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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스니아 내전 '인종청소'의 주범인 옛 세르비아 정치지도자 라도반 카라지치(63/사진)가 21일(현지시간) 13년간의 도피 끝에 결국 체포됐습니다.

보리스 타디치 세르비아 대통령이 이날 긴급 성명을 내고 카라지치가 이날 밤 베오그라드에서 보안요원들에 의해 체포됐다고 발표했는데요. AP통신 등은 카라지치가 현재 세르비아 내 전범재판소로 옮겨져 유전자 감식을 비롯한 신원확인 절차를 밟고 있다고 보도했습니다.
카라지치는 베오그라드에 있는 세르비아 재판소에서 조사를 받은 뒤 조만간 헤이그 국제유고전범재판소(ICTY)로 이송될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카라지치 체포에 총력을 기울이도록 세르비아 정부를 압박해왔던 유럽연합(EU)과 북대서양조약기구(나토)는 즉시 환영했구요. <성명>을 내는 것이 아마도 업무의 상당 부분을 차지할(비아냥이 아니라 꼭 필요한 맥락에서라도)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도 환영 인사를 했네요.

EU는 "이번 카라지치 체포는 새로운 세르비아 정부가 발칸 지역의 평화와 안정에 기여하려는 의지를 보여준 것"이라며 높이 평가했는데요. 카라지치를 ICTY에 넘기게 되면 세르비아는 EU 가입에 한걸음 더 다가서게 될 것으로 전망됩니다.

미 정부도 성명을 내고 "카라지치 체포는 세르비아 정부가 유고전범재판소에 적극 협조했다는 중요한 표시"라며 전쟁 희생자들에게는 더 없는 희소식이라고 논평했습니다. 카라지치의 체포를 계기로, 그동안 지지부진했던 ICTY의 유고 전범재판도 다시 활기를 띨 것으로 보입니다.


카라지치는 옛 유고연방의 중심 국가 중 하나였던 세르비아의 정치지도자이지요. 연방 내에서 이웃하고 있던 보스니아가 독립을 선언하자, 1992년 슬로보단 밀로셰비치 당시 유고 대통령의 지원 속에 내전을 일으켰더랬습니다. 2차 대전 이후 유럽에서 벌어진 최대의 전쟁인 이 '보스니아 전쟁'은 3년간 계속됐고, 대부분 무슬림들인 보스니아계 주민 수만명, 그리고 크로아티아계 주민들이 세르비아계에 학살됐습니다.

(그 참혹상을 굳이 알고 싶으시다면 조 사코의 훌륭한 만화책 <안전지대 고라즈데>, 후안 고이티솔로의 <전쟁의 풍경> 중 보스니아 부분을 보시면 되고요. 보스니아와 연관된 문제로는 마크 마조워의 <발칸의 역사>, 김철민의 <보스니아 역사>, 이보 안드리치의 <드리나 강의 다리> 같은 것들을 참고하세요)


카라지치 체포 사실 알려진 뒤 베오그라드, 코소보 등지에서는 긴장이 고조되고 있는 모양입니다. 여전히 카라지치를 추종하는 세르비아 민족주의자들은 베오그라드의 법원 앞에서 소규모 시위를 벌이기도 했다고 BBC방송이 보도했네요. 코소보 독립을 주장하는 알바니아·보스니아계와 세르비아계가 충돌할 가능성도 없지 않지요, 베오그라드 주재 미국 대사관 주변과 전범재판소 등지에는 무장병력이 배치되는 등 경비가 강화됐다고 합니다.


 

의사로 변장한 학살범... 체포 전말은 여전히 '수수께끼'


사용자 삽입 이미지



"희대의 학살범은 변장을 한 채 병원에서 일하고 있었다."

13년간 도피 행각을 벌였던 옛 보스니아 내전 전범 라도반 카라지치가 붙잡히면서 전격적인 체포 과정을 둘러싼 뒷얘기들도 속속 흘러나오고 있다. 세르비아 정부의 라심 랴지치 국제유고전범재판소(ICTY) 협력 장관은 22일 카라지치의 체포 사실이 대통령실 발표와 국영방송 보도 등을 통해 발표된 뒤 베오그라드에서 공식 기자회견을 갖고 붙잡히기 전 카라지치의 행적과 체포 전말을 공개했다.

발표에 따르면 카라지치는 트레이드마크인 은발을 염색하고 턱수염을 길러 히피같은 분위기로 모습을 바꾼 뒤 '드라간 다비치'라는 가명을 쓰면서 베오그라드 인근에 숨어지냈다. 또 카라지치는 은신해 있는 동안 민간인들을 상대로 의료시술을 하며 돈을 벌어 생활했던 것으로 드러났다고 랴지치 장관은 밝혔다. 널리 알려진대로 카라지치는 옛 유고슬라비아대학 의대를 졸업했으며, 1970년대 중반에는 미국 컬럼비아대학에 유학하기도 했던 의사 출신이다.

로이터통신 등은 세르비아 경찰이 외국 정보기구로부터 카라지치의 행방과 관련된 제보를 받고 몇 주 동안 잠복 정찰을 한 뒤 21일 베오그라드 외곽의 은신처를 급습, 체포에 성공했다고 보도했다. 그러나 체포 과정과 관련해서는 세르비아 정부는 구체적인 전말을 밝히지 않아 궁금증이 증폭되고 있다.
세르비아 일간지 폴리티카는 경찰의 말을 인용해 "카라지치는 체포될 당시 여행용 가방을 메고 어디론가 떠나려는 모습이었고 위조 신분증을 갖고 있었다"고 전했으나 진위는 확인되지 않았다.
카라지치의 변호인인 스베토자르 부야치치는 "지난 18일 이동 중에 버스 안에서 붙잡혔다"며 정부가 발표한 체포 장소·시점과는 다른 주장을 하기도 했다. 세르비아 당국이 전말을 밝히기까지, 카라지치의 도피에서 체포까지 이어진 기나긴 과정은 수수께끼로 남을 전망이다.



카라지치는 1995년 전범으로 기소됐으나 이듬해 모습을 감춘 뒤 북대서양조약기구(나토) 군과 세르비아 당국의 추적망을 줄곧 피해다녔다. 이 때문에 서방 국가들은 세르비아 정부가 그를 비호하는 것으로 의심해왔다.


한때 그는 몬테네그로 북서부 산악지대에 숨어지내며 정교회 측의 보호를 받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었다. 러시아나 체코, 심지어 북한으로 도피했다는 추측이 나온 적도 있다. 베오그라드 한복판에 살며 시내를 활보하고 있다는 소문도 있었다.

2006년에는 내전 시절 카라지치와 함께 극우 민족주의자로 악명을 떨쳤던 아내 릴리아나가 남편에게 자수를 권유하는 공개서한을 발표, 위장 제스처인지를 놓고 추측이 분분하기도 했다. 신출귀몰한 그의 도피행각은 지난해 리처드 기어가 출연한 '헌팅 파티'(원제 'Spring Break in Bosnia')라는 블랙코미디 영화로도 만들어졌다.


카라지치 전범재판 어떻게 되나


세르비아 당국에 체포된 옛 유고 내전 전범 라도반 카라지치는 2006년 숨진 슬로보단 밀로셰비치 전 유고연방 대통령 이래 국제유고전범재판소(ICTY)에 기소된 전범들 중 최대 거물이다. 그의 체포를 계기로 전범 재판이 다시 활기를 띠겠지만, 판결에 이르기까지는 기나긴 공방전이 벌어질 것으로 예상된다.


카라지치를 체포한 세르비아 당국은 유전자 감식 등을 통해 신원을 확인한 후 베오그라드 전범재판소로 인도하게 된다.
전범재판소는 간략한 조사를 거친 뒤 최근 의회에서 통과된 국제법정 협력법에 따라 카라지치를 ICTY로 넘길 예정이다. 카라지치는 네덜란드 북해 연안에 있는 특별 구금시설로 옮겨져 구금될 전망이다. 언론에 그의 모습이 공개되는 것은 변호인단이 정해지고 ICTY 판사 앞에서 심리가 열릴 때에나 가능할 것으로 보인다.

카라지치는 1995년 보스니아 스레브레니차에서 무슬림 주민 8000명을 살해한 집단학살 주범으로 ICTY에 1차 기소됐고, 이후 여러 건의 범죄 혐의가 덧붙여졌다.

BBC방송에 따르면 기소장에 드러난 카라지치의 범죄혐의는 집단학살과 전쟁법규 위반, 학자·언론인·정치인 살해와 강간, 사유재산 강탈, 종교시설 파괴 등 16개 항목에 이른다. 내전 당시 그가 이끈 세르비아군과 민병대의 폭력행위는 ICTY가 "인류 역사의 가장 참혹한 페이지", "지옥의 한 장면"이라 묘사했을 만큼 잔혹했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카라지치는 ICTY에 서게된 44번째 세르비아계 피고가 된다. 유죄판결까지는 추격전 못잖은 기나긴 공방이 펼쳐질 것으로 보이지만, 최근 집단학살 행위에 대해 국제법정이 상당히 폭넓은 해석을 적용하는 추세이기 때문에 카라지치가 법망을 피해갈 가능성은 적다.

1990년대 르완다 내전범죄를 관할하는 르완다전범국제재판소(ICTR)는 정치인들과 군벌들은 물론, 유혈사태를 부추긴 언론인들에게도 유죄판결을 내린 바 있다. ITCY도 2004년 카라지치 휘하 군 장성에게 징역 46년형을 선고했었다.

ITCY는 카라지치 재판과 함께 '마지막 남은 도망자' 라트코 믈라디치(66) 체포에 총력을 기울일 전망이다. 세르비아계 군사령관이었던 믈라디치는 카라지치의 손발이 되어 집단학살을 자행한 주범 중 하나로 1995년 카라지치와 함께 기소됐으나 여전히 도피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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