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기가 보는 세상/유럽이라는 곳

기후변화로 달라지는 그린란드

딸기21 2008. 9. 26. 21: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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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세 비예레(50)는 북극 가까이 있는 덴마크령 그린란드의 척박한 산악지대에 살고 있다. 가장 가까운 도시도 배를 타고 32㎞를 가야 나올 정도로 외진 곳이다. 그가 사는 마을은 짧은 여름을 보내고 9월만 되면 차가운 얼음에 덮이는 곳이었는데, 재작년부터 마을 풍경이 달라지기 시작했다. 비예레는 나무로 만든 오두막 주위에 밭과 비닐하우스를 만들고 그린란드 최초의 상업적 채소 농사를 하고 있다. 밭에는 양배추, 콜리플라워, 상추 등이 자라고 있다. 올여름엔 비닐하우스에서 딸기를 조금 키워봤는데 뜻밖에도 성공적이었다. 마을에는 비예레처럼 새로 농업에 뛰어든 농사꾼이 2명 더 있다. 주민들은 처음으로 자기네 땅에서 난 채소를 사먹을 수 있게 됐다. 지구온난화 때문이다. 피요르드의 얼음땅이 녹아내리면서 농사가 가능해진 것이다. 물론 아직까지 농사가 쉽지는 않다. 겨울이 지나고 6월이 되어서까지도 밤이 되면 서리가 내린다. 서리 때문에 브로콜리 농사는 결국 망쳤다. 하지만 다른 채소는 그럭저럭 자라났다.


비예레와 동료들이 농사를 시작하기 전, 그러니까 2년 전만 해도 이 지역 사람들에게 채소를 키워 내다파는 일은 꿈에 불과했다. 텃밭에서 식구들 먹을 만큼 채소를 키우는 이들은 있지만 돈을 벌기 위한 직업으로서의 ‘농업’은 불가능한 환경이었다. 그린란드 사람들은 지구 상 농업의 ‘북방한계선’, 즉 농작물이 자라날수 있는 한계지점에 아슬아슬하게 걸쳐 사는 데에 익숙해진 사람들이다. 섬세한 손길과 날씨의 뒷받침이 필요한 채소·과일은 모두 외지에서 비싸게 사다 먹었다. 그런데 근래 들어 농업의 희망이 싹텄다.

그린란드는 세계에서 기후변화를 가장 크게 느끼는 곳 중 하나다. 주민들 말에 따르면 “유럽 사람들은 그저 날씨가 변하는구나 정도로 여기고 말겠지만 그린란더(그린란드 사람)들은 말 그대로 생활이 달라지기 때문”이다. 영국 일간지 더타임스는 최근호에서 지구온난화로 달라지기 시작한 그린란드 사람들의 삶을 소개했다.


서서히 녹아 내리고 있는 그린란드 칸제를루수아크의 거대한 빙하. <경향신문 자료사진>

가장 큰 변화는 식생이 달라진 것이다. 그린란드 자치정부 농업자문관 케네스 회는 “기후변화가 이대로 진행된다면 10년 안에 그린란드의 풍경이 바뀔 것”이라고 말한다. 전문가들은 지난 15년 새 그린란드 북부를 덮고 있던 얼음이 5㎞나 물러났다고 지적한다. 욘스타인 가르트라는 농부는 남서부 우페르나비아수크에 농장을 만들었는데, 이 곳에는 ‘지구상 최북단 농장’을 찾는 관광객들의 발길이 이어지고 있다.

‘녹색의 땅(Greenland)’이라는 이름과 달리 그린란드에는 푸른 숲은 없었다. 그런데 갑자기 숲을 가질 수 있게 되리라는 희망도 생겼다. 1893년 덴마크의 한 식물학자가 바이킹 마을에 소나무 네 그루를 심었다. 이 나무들은 아직까지 살아있으나, 100여년 동안 조금씩 자라나는데 그쳤다. 그런데 기후가 바뀌면서 최근 몇년새 갑자기 나무들의 생장 속도가 빨라졌다. 자치정부는 나무를 더 심어 100㏊ 정도의 ‘진짜 숲’을 만들 계획이다. 그린란드 최초의 숲이 생겨날 날도 머지 않았다고 사람들은 기대하고 있다. 

양을 키우는 이들도 늘어, 50개에 이르는 목장이 생겨났다. 날씨가 온화해지면서 목축 비용은 덜 들어가고, 양들은 잘 자란다. 남부 최대 항구 나노르탈릭에서 배로 30분 거리에 있는 목장을 운영하는 말릭 프레데릭센(32)은 “2년 동안 가뭄이 들었는데, 비가 예전처럼 와줬다면 금상첨화였을 것”이라고 말했다.

몇몇 어업부문도 호황을 이루고 있다. 특히 찬 바다에 사는 대구가 그린란드 근해로 많이 올라온다. 바다를 떠다니던 빙산이 줄어들고 수온이 적당하게 올라갔기 때문이다. 올해 33세의 대구잡이 어선 선장 에이드스타인 소렌센은 “3년 전엔 내 배를 갖고 나가 대구 3톤을 잡았는데 지금은 18톤을 꽉꽉 채운다”고 말했다. 18톤이면 18만 크로네(약 4000만원) 어치에 이른다. 한번 조업에 이 정도 돈을 벌 수 있다는 것은, 어업 외에 별다른 산업이 없는 그린란드 젊은이들에겐 대단한 유혹이다. 어부들은 대구 풍년을 ‘대구떼의 습격’이라 표현할 정도다.

그린란드는 전체면적의 81%가 빙하에 덮여있었으나 최근 지구온난화로 얼음이 녹으면서 식생의 변화를 겪고 있다. <경향신문 자료사진>

외국 광산회사들도 잇달아 진출하고 있다. 빙하가 물러나면서 광산 개발이 가능해졌기 때문이다. 영국 광업회사 앵거스 앤드 로스는 다음달 그린란드 서부의 아연광산을 다시 문 열 계획이다. 블랙앤젤이라는 이름의 이 광산은 1989년 한파로 빙하에 덮인 뒤 계속 닫혀있었다. 

금과 다이아몬드를 찾는 ‘미네랄 사냥꾼’들도 몰려들고 있다. 그린란드는 여름에도 땅을 파기가 쉽지 않아 광업이 활성화되지 못했지만, 조사가 진행된다면 상당한 규모의 광물·에너지 자원을 찾아낼 수 있을 것으로 예상된다. 예전같으면 채굴 비용이 비싸 다들 엄두도 안 냈겠지만 고유가·자원가격이 크게 오르면서 동토의 광산들까지 파헤쳐질 처지가 된 것이다. 업체들은 “요즘 같은 상황에서는 이 지역 광산들도 충분히 수지가 맞을 것”이라며 기대에 들떠 있다.

미국 알루미늄 생산회사 알코아는 세계 최대 알루미늄 제련소를 그린란드에 만들기로 했다. 그린란드 사람들이 가장 크게 기대하는 것은 바로 이 공장이다. 공장이 문을 열면 전체 노동인구의 10분의 1인 3500명을 고용할 것으로 예상된다. 

그린란드에서는 국영 석유회사 누나오일(NUNAOIL)과 국영 광업회사 누나미네랄(Nunamineral)이 유전·금광 개발을 하고 있다. 하지만 주요 산업은 여전히 어업이다. 전체 수출액의 45%가 수산물 혹은 수산물 가공품에서 나온다. 하지만 경제가 나아지고 일자리가 늘어나면 외지로 나가는 젊은이들이 줄어들고 인구도 증가할 것으로 정부는 기대하고 있다. 자치정부 외무·재무장관인 알레카 하몬트는 더타임스 인터뷰에서 “빙하가 녹으면 저렴한 비용으로 수력발전을 할 수도 있을 것”이라며 경제개발에 대한 희망을 드러냈다.

그린란드 사람들의 꿈은 그러나 경제개발에만 그치는 것이 아니다. 궁극적인 목표는 현재 덴마크령 자치지역인 그린란드의 완전한 ‘독립’을 이뤄내는 것이다. 1979년 덴마크 정부는 그린란드 사람들의 자치를 공식 인정했다. 덴마크의 마그레테2세 여왕이 형식상 국가 수반으로서 ‘총독’을 파견하지만 자치정부가 실질적으로 통치를 한다. 그린란드는 덴마크로부터 해마다 32억6000만 크로네(약 7200억원)의 지원금을 받고 있다. 자치정부는 어서 자원개발을 이뤄내 그 수입으로 재정을 충당하고 덴마크로부터 단계적으로 독립하는 것을 목표로 삼고 있다.

물론 기후변화가 그린란더들에게 희망의 메시지만 전해주는 것은 아니다.

널리 알려진대로 지구온난화는 세계 곳곳에서 격변을 일으키고 있다. 잦은 기상이변과 재해로 고통받는 남아시아, 해수면이 올라가 나라가 가라앉을 처지에 놓인 남태평양과 인도양의 섬나라들, 사막화가 빨라져 가뭄·기근·분쟁에 시달리는 아프리카 사하라 변방 사람들. 그들과 마찬가지로 그린란더들에게도 희비가 있고 애환이 있다.

농사를 지을 수 있게 되면서 이름 그대로 ‘녹색 땅’이 될 수 있다는 희망도 싹텄지만 한켠에서는 예전에 없던 재난이 일어나고 있다. 갑작스런 폭풍우가 닥치는 일이 많아지면서 주민들이 수시로 고립되는 것도 한 예다. 얼마 안되는 인구가 띄엄띄엄 흩어져 사는 작은 마을들은 헬기나 보트로만 외부와 소통할 수 있다. 그런데 기상이변이 늘어난 것이다. 남부 나노르탈릭 바닷가에서는 2년 새 조난사고가 빈발했다. 어선들의 조업횟수는 전반적으로 줄어들었다.

물론 이런 현상은 그린란드만의 일은 아니다. 이미 미국 알래스카 등지에서도 몇년 전부터 얼음땅이 녹아 숱한 피해가 발생하고 있다. 추운 지역은 추위에 맞춰 인프라가 만들어져 있다. 그런데 단단하게 얼어붙어있던 땅이 녹으면서 도로·교량이 무너지는 일이 속출하고 있는 것이다. 알래스카에서는 소도시 한 곳이 이 때문에 몽땅 내륙으로 옮겨가기도 했다. 지난 2월에는 알래스카 해안의 작은 마을 키발리나 주민들이 거대 에너지회사 24개를 상대로 "기후변화를 일으키는 온실가스를 방출해 마을의 존립을 위협한데 대한 책임을 지라"며 피해 보상을 요구하는 소송을 미국 연방법원에 내 세계적인 뉴스가 됐었다.

그린란드의 사냥꾼들에게도 온난화는 반갑잖은 현상이다. 이들의 주요 사냥감은 얼음 위에 사는 물개들이다. 그런데 요샌 얼음이 녹아 물개 서식지가 줄어들었다. 또 사냥꾼들이 전통적인 교통수단인 개 썰매를 타고 돌아다니기도 힘들어졌다. 평생 동안 물개와 고래를 사냥해 먹고살았다는 야코브 페테르센(61)은 “바다의 얼음덩이 위를 돌아다니며 사냥을 했는데 요새는 얼음덩이가 아예 해안까지 오지를 않는다”고 말했다. 따뜻해진 바다는 페테르센에겐 직접적인 생계의 위협이 되고 있다. “예전엔 한 해에 많게는 800마리의 물개를 잡아 나노르탈릭 항구에서 내다팔았는데 지금은 200마리 채우기도 힘든 지경”이라고 그는 전했다.

사람들의 생활방식도 변할 수 밖에 없다. 페테르센이 젊었을 때에는 마을 젊은이들은 대부분 사냥꾼이었다. 그런데 지금은 모두 외지로 나가고, 늙은 사냥꾼 여섯 명만 남아 명맥을 유지하고 있다. 자연히 모피산업도 줄어들었다. 래브라도해에 면한 카코르톡 마을은 물개 모피·가죽 가공으로 유명하다. 그런데 한때는 15만마리 분량에 이르던 물개가죽이 지난해에는 9만마리 분량 밖에 안 왔다. 그린란더들은 기후변화가 던져준 희망과 숙제 사이에서 꿈을 실현시키려 분투하고 있다고 더타임스는 전했다. 


그린란드 개황 
면적 217만㎢ (수도 누크) 
인구 5만7500명 (증가율 0.064%) 
평균기대수명 69.46세 
1인당 GDP(구매력 기준) 2만 달러 
실질GDP 성장률 2% 
실업률 9.3% 
주요 산업 어업, 광업

■ 그린란드

북극 바로 아래, 대서양 북단에 위치한 그린란드는 세계에서 가장 큰 섬이다. 면적 약 217만㎢에 인구는 5만7500명.
주민들의 88%는 이누이트 혹은 이누이트-덴마크계 혼혈이고 12%는 유럽계인데 대부분 덴마크에서 온 사람들이다. 언어는 칼라알리수트(그린란드어), 덴마크어, 영어를 쓴다. 종교는 루터파 기독교가 지배적이다.

그린란드는 지리적으로는 북미 대륙에 가깝지만 역사적으로는 유럽과 얽혀 있다. 

학계에서는 선사시대 그린란드에 ‘고(古)에스키모 문화’라 불리는 원주민 문화가 있었던 것으로 추정한다. 이 섬이 본격적으로 유럽의 역사에 등장한 것은 984년 노르웨이에서 살인죄를 짓고 추방당한 ‘붉은 에릭’이라는 남성이 식솔들을 끌고 일종의 식민지를 만들면서부터다. 당시 그린란드 기후는 지금보다는 훨씬 따뜻했던 것으로 추정된다. 

이후 노르웨이계 이주자들 마을들이 피요르드 바닷가 곳곳에 세워졌으며 1261년에는 노르웨이 왕국으로 병합됐다.

그러나 기후가 점점 추워지고 원주민인 이누이트(에스키모)족과의 충돌이 잦아지면서 노르웨이계 이주민 마을들은 점차 사라져 15세기에는 다시 이누이트 땅으로 돌아갔다.
18세기 덴마크와 노르웨이가 공동으로 다시 그린란드를 식민지로 만들었다. 하지만 19세기에 노르웨이가 스웨덴의 식민지가 되면서 그린란드는 덴마크령이 됐다.
2차 세계대전으로 덴마크가 독일에 점령당하자 그린란드는 잠시 동떨어진 신세가 됐다가 1953년 덴마크령으로 돌아갔다.

이 섬은 덴마크어로는 ‘그뢴란트’이고 현지 주민들은 ‘칼라알릿 누아아트’ 즉 ‘그린란더들의 땅’이라 부른다. 전체 섬 면적의 81%인 175만㎢는 얼음에 덮여있다. 

이 섬을 ‘그린란드’라 부르는 이유에 대해서는 설이 분분하다. 10세기에 ‘붉은 에릭’이 이 섬을 그뢴란트라 명명했다고 하는데, 어떤 학자들은 그뢴란트가 단순히 ‘그룬트(땅)’를 잘못 발음한데서 나온 것이라고 주장한다. 

하지만 에릭 시절에는 그린란드가 지금보다 훨씬 따뜻했기 때문에 실제로 ‘녹색 땅’으로 보였을 것이라 주장하는 학자들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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