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기가 보는 세상/아시아의 어제와 오늘

고문관, 학살자의 '뒤늦은 눈물'

딸기21 2008. 2. 27. 1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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캄보디아 폴포트 정권 때 반대파들에 대한 고문과 학살을 저질렀던 전범이 희생자들의 무덤을 찾아 뒤늦은 후회의 눈물을 흘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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캄보디아 유엔 전범재판소(IWCT) 반인도범죄 재판에 회부된 카잉 구엑 에아브(64.사진)는 범행 `현장 검증'을 위해 26일 프놈펜 외곽의 집단 매장지를 찾았다. 재판관과 변호인 등 80여명과 함께 129개의 무덤이 모여 있는 매장지를 찾은 카잉은 이름도 적혀 있지 않은 희생자들의 묘소 앞에서 무릎을 꿇고 30여년 만에 참회의 눈물을 흘렸다. IWCT의 리치 삼바스 대변인은 "카잉은 두어차례 눈물을 보인 뒤 희생자들의 무덤 앞에서 두 손을 모으고 기도를 올렸다"고 전했다.
예전엔 논이었던 이 매장지엔 카잉과 그 수하들에 의해 희생된 사람들이 묻혀 있으나 시신 몇 구나 매장됐는지는 완전한 발굴이 이뤄지지 않아 집계조차 되지 않고 있다. 카잉의 부하들은 이 곳에서 부모를 잃은 어린 아이들을 때려 숨지게 하는 만행도 저지른 것으로 알려져 있다. 무덤들 한켠엔 폴포트 정권에 희생된 이들의 두개골 더미가 쌓여 있어 아직도 가시지 않은 학살의 악몽을 증언하고 있었다고 로이터 통신은 보도했다.

`두크'라는 이름으로 더 많이 알려져 있는 카잉은 폴포트가 이끌던 크메르 루주 정권의 `고문 책임자'로 악명을 떨쳤던 인물. 그는 투올슬렝 교도소, 일명 `S-21 수용소' 소장을 지내며 고문과 살인을 자행했다. 그가 소장으로 있던 1970년대 후반 이 교도소에서 고문 당해 죽어나간 사람이 1만4000여명으로 추산된다.
크메르 루주 정권은 1975∼78년 `킬링 필드'로 알려진 대규모 학살극으로 전체 인구의 3분의1에 이르는 170만명을 희생시킨 것으로 알려져 있다. 크메르 루주 정권은 1990년대 들어 현재의 훈센 총리가 이끄는 군부에 의해 축출됐으며, 훈센 정부는 유엔의 지원 하에 국제 전범재판을 준비하고 있다.

카잉은 전범재판 논의가 시작된 1999년 당국에 체포된 뒤 지금껏 구금돼 있으며, 폴포트 정권 고위 관리로서는 최초로 지난해 IWCT에 기소됐다. 그러나 그는 지난해 자신에 대한 구금은 불법이라며 캄보디아 법원에 소송을 내는 등 죄를 뉘우치는 것과는 거리가 먼 모습을 보여 캄보디아인들의 지탄을 받아왔다.
IWCT는 27일에는 킬링필드 추모관이 건립돼 있는 옛 투올슬렝 교도소 자리로 카잉을 데려가 현장을 둘러보게 할 계획이다. 로이터는 "캄보디아인들은 카잉의 눈물이 진심이기를 바라면서, 오는 7월 공판에서 과거의 죄상을 낱낱이 고백해주길 기다리고 있다"고 전했다. 카잉은 폴포트의 오른팔이었던 누온 쉬아와 크메르 루주의 대통령이었던 키우 삼판 등의 재판에서도 주요 증인으로 채택될 것으로 예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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