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민주당 대선후보 경선에 나선 힐러리 클린턴이 궁지에 몰리고 있는 모양입니다. 버락 오바마 돌풍에 밀려 예상 밖으로 고전을 면치 못하고 있는 클린턴은 눈물을 글썽이는 감정적 호소까지 하면서 예비선거(프라이머리) 참가자들의 마음을 얻으려 하고 있으나 상황은 여의치 않아 보입니다.
뉴햄프셔, 7일, 유세 중인 클린턴. /AP
뉴욕타임스, ABC방송 등 미국 언론들은 클린턴이 뉴햄프셔주 포츠머스의 한 카페에서 평소의 차가운 이미지를 뒤집으며 눈물을 글썽이는 모습을 보여 참가자들을 놀라게 했다고 전했습니다.
유권자 16명과 티타임 형식의 간담회를 갖던 클린턴은 이날 만남을 시작할 때만 해도 평소와 다름없이 논리정연하고 차분한 모습이었지만 대화가 진행되면서 점점 감정이 북받치는 모습을 보였다고 합니다. 그는 "어떻게 그렇게 늘 씩씩해 보이느냐"는 질문을 받자 "쉽지는 않다"고 답하면서 눈시울을 붉혔다는데요. 이어 "내가 다양한 기회를 누릴수 있도록 해준 이 나라가 뒷걸음질치는 걸 보고싶지 않다"고 말했지만 목소리가 떨리고 있었다고 참석자들은 전했습니다.
퍼스트레이디 시절 성추문에 휩싸인 남편을 구하기 위해 파파라치들 앞에서 살짝 보여준 `수영복 블루스' 연출이라든가 `아이팟(iPod) 속 음악트랙까지도 철저히 계산해서 공개한다든가 했던 과거 행동으로 봤을 때 이날의 눈물은 '냉정한 여인' 클린턴이 얼마나 힘들게 고비를 맞고 있는지를 보여주는 것 같습니다. 하지만 늘 그랬듯이, 눈물 한 방울 역시 치밀한 계산에서 나온 것 아니냐는 시각도 많습니다. AP통신은 "측근들은 클린턴에게 `따뜻하고 인간적인 모습을 보여달라'는 주문을 했고, 공교롭게도 다음날 클린턴은 눈물을 흘렸다"며 의심 섞인 시선을 전했습니다.
클린턴 캠프 측에선 너무 냉정하고 계산적으로 보이는 모습이 마이너스가 된다는 판단을 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워싱턴의 정치뉴스 전문미디어 폴리티코닷컴은 지난 5일과 6일 뉴햄프셔 내슈어의 고등학교 체육관에서 나란히 열린 오바마와 클린턴의 유세를 비교, 두 사람의 판이한 스타일을 분석하면서 "오바마는 시(詩), 클린턴은 산문"이라는 표현을 썼습니다.
오바마는 구체적인 이슈들을 언급하지 않은 채 `희망과 변화'를 얘기하면서 30분 동안 마치 `최면을 거는것 같은(mesmerizing)' 매혹적인 연설로 지지자들을 사로잡았다는군요. 반면 클린턴은 1시간반에 걸쳐 참석자들의 질문까지 받으며 이슈를 꼼꼼히 설명했지만 막판엔 청중들이 빠져나가 썰렁해졌다는 건데요.
클린턴의 측근들은 자금력을 바탕으로 조직적, 계획적 캠페인을 벌여왔던 전략을 바꿔 `자유롭고 자연스럽게' 다가가는 쪽으로 방향을 바꾸려 하고 있다고 폴리티코닷컴은 분석했습니다.
오늘 시사주간지 타임 기사를 보니 클린턴 캠프에 돈도 떨어져가고 있다는데, 여기서 클린턴이 무너질까요. 아니면 캘리포니아나 플로리다처럼 대의원 숫자가 많은 주들에서 판세를 뒤집어 결국 대권 후보 자리를 거머쥐는데 성공할까요. 클린턴이 미국의 대통령이 될 수 있을까요, 없을까요.
얼마전 CNN 방송에서 들었는데, 미국인들 중에 "아프리카계 대통령 받아들일 수 있다" 64%, "여성 대통령 받아들일 수 있다" 62%였다고 하더군요(못 받아들이겠다는 자들은 솔직한 건지 뇌에 벌레가 낀 것인지 -_-).
미국에서 여성이 투표권을 얻은 것이 흑인들보다 느렸다지요. 여기서 누가 더 마이너리티인가를 따지자고 한다면 멍청한 짓이겠지요. 클린턴을 지지하지 않는 사람이 단지 그가 여자라서 싫어하는 것만은 아닐 것이고, 오바마를 좋아하는 사람이 그가 '검은데도 불구하고 참아주겠다'며 지지하는 것은 아닐테니까요. 저도 드러난 정책들만 보면 이라크전 놓고 말 바꾼 클린턴보다는 시종일관한 오바마에게 더 마음이 갑니다.
그래도 클린턴이 무너지는 것은 어쩐지 싫은 기분이네요. 한국 대선엔 관심도 없었으면서 남의 나라 대선에 이러쿵저러쿵... 웃깁니다만, 어쩌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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