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 얘기 저런 얘기/딸기의 하루하루

헬로 키티

딸기21 2001. 1. 21. 07: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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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처럼 재미있게 주말을 보냈다. 뭐 특별히 '재미난' 일을 했던 건 아니지만,
나와 남편이 같이 주말에 집 밖으로 나갔다는 것만 해도
우리 부부에겐 대단한 일이었다.
더우기 토요일과 일요일 이틀 모두 외출을 했으니, 역사에 길이 남을 일이다.

이 역사에 남을 외출의 첫 걸음은 토요일 오후 2시30분에 이뤄졌다.
아시는 분은 아시겠지만, 이 정도로 일찍 일어난 것은
딸기의 허즈번드에게는 거의 있기 힘든, 매우 드문 일이다.
외출 장소는 일산 킴스클럽.
그동안 장 보는 것을 게을리한 탓에 집에 모자라는 것들이 많았다.
내 바지와 남편의 트레이닝복(일명 땀복이라 부르는 것),
라면, 귤, 김, 햄, 싱크볼, 뒤집개를 샀다.
그리고 남편의 숙원사업이던 키티 인형을 샀다.
이걸 사줬더니 남편은 간만에 주말 내내 기분이 좋아보였다.
한참 전에 코엑스몰에 갔다가 키티샵에 들렀는데 키티 베개를 안 사줬더니
그 후 남편은 며칠 동안 키티 타령을 했던 전력이 있다.

일요일인 오늘은 어딘가 나가서 놀고 싶었는데
하도 갈 데가 없어서, 영종대교를 지나 드라이브를 하고 왔다.
차 타고 왔다갔다 한 것 밖에 없는데, 통행료만 12200원이 들었다.

난 올 한 해 재미있게 살기로 했다.
내 인생에서 가장 재미있게 보낸 한 해로 만들 생각이다.
그도 그럴 수 밖에 없는 것이, 나에겐 이제 선택의 여지가 별로 남아있지 않다.
내가 좋아하는 '추억은 방울방울'이라는 애니메이션이 있는데,
만화의 주인공인 타이코라는 여자는 이렇게 말한다.
'직장에 다니면서, 나는 나비가 된 것 같았다'고.

나 역시 그렇다. 난 항상 그저그런 애벌레였지 나비였던 적이 없었다.
초등학교 때도, 중학교 고등학교 때도, 대학교 때에도 나는 그저그런 벌레였다.
직장을 다니면서 나는 정말 나비가 된 것 같았다.
일 하는 것도 재미있었고, 돈을 버는 것도 좋았다.
내가 하고 싶은 것, 사고 싶은 것을 나는 내 마음대로 할 수 있었다.
비록 '할 수 있는' 만큼 모든 것을 다 하지는 않았지만,
실행에 옮기지는 않더라도 '할 수 있다'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에
언제나 벼락출세해서 나비가 된 기분이었다.

올해는, 정말 나비처럼 살아야 한다.
원래 깊은 생각이나 목적의식 없이 재미를 추구하며 살아가는 재미주의자다.
언제가 될지 모르지만 나 역시 아이를 낳아야 하고, 키워야 할 것이다.
그래서 난 맘 먹고 놀기로 결정했다.
언제가 될지 모를 '그 때'에 후회하지 않도록 재미나게 살기로 했다.

재미있게 살기 위해 내가 정한 원칙 몇 가지.
첫째, 화를 내지 않는다. 덧붙여 사람을 미워하지 않는다.
둘째, 집안 일을 최소한으로 줄인다.
나는 지난 연말 이미 첫걸음을 내디뎠다. 오늘도 햇반 20개를 주문했다.
밥은 햇반으로 먹고, 물은 냉온수기에서 받아먹고.
다시 말해, 돈으로 때우면서 시간을 벌겠다는 거다.
세째, 돈을 아끼지 말고 여행을 다닌다.
개념을 싹 바꾸어서,
'여행을 다니기 위해 돈을 번다'로 머리 속을 뜯어고치는 거다.
요즘 들어 시간이 아깝다는 생각이 부쩍 든다.
벌써 서른 한 살, 이미 충분히 나이를 먹은 것 같다.
이만하면 놀 나이가 되지 않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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