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 얘기 저런 얘기/딸기의 하루하루

괜한 걱정

딸기21 2000. 12. 13. 07: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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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초등학교 친구 두 명을 만났다.
'아이러브스쿨'에 가끔 들어가보지만,
사실 들어가봤자 나같은 사람은 별볼일 없다.
날 보고싶어하는 사람도 없고, 나 역시 특별히 보고싶은 사람도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만나고 싶은 사람이 있었다면, 바로 그 두명이다.
두 친구와 용케 연락이 되어 어제 만났다.
종로3가 피카디리 극장에서 2가 쪽으로 오는 길에
오른쪽에 있는 롯데리아로 오라고 친구가 나에게 신신당부를 했었다.
찾아가긴 잘 찾아갔는데, 전철역에서 헤매느라 한 10분 늦었다.
하필이면 어제는 핸드폰을 집에 두고 나오는 통에
애들이 나 기다리면서 굉장히 걱정했다고 했다.
내가 안 나오는 것은 아닐까 하고.

난 어제 우리의 만남을 정말 눈 빠지게 기다렸다.
국민학교 졸업한 뒤에 중학교 다닐 때에도 동네에서 마주친 적은 있지만
사실상 17년만의 첫 만남이니까 설레는 것도 당연하지.
내가 걱정한 것은 '내가 안 오는 줄 알고 애들이 가버리면 어쩌나' 하는 거였고,
애들이 걱정한 것은 내가 맘이 바뀌어서 안 나오면 어쩌나 하는 거였다.

물론 정말로 걱정한 것은 다른 문제였을 것이다.
내 친구들은 둘 다 대학을 나오지 않았다. 집안이 참 어려웠고,
둘다 여상에 진학해서 취직을 했다는 걸
며칠전 전화통화를 통해 알고 있었다.
전화 통화에서도 그랬다. '저 애가 나를 잊어버렸으면 어쩌나,
나는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는데, 나는 니가 아주아주 보고 싶은데
넌 나를 별로 반가와하지 않으면 어쩌나'하는 걱정이 안개처럼 끼어서
머리를 아프게 하고, 모처럼의 반가운 마음에 상처를 입히고 있었다.
괜한 걱정이었다. 내 친구가 나에게
"니가 나 잊어버렸을까봐 걱정했다"고 하길래 나는
"내가 바보냐, 널 잊어버리게"라고 대답했다.

정말 바보다. 잊어버릴 리가 없잖아.
우리 셋은 국민학교 6학년 때 같은 반이었을 뿐 아니라 '동네친구'였다. 동네를 헤집고 다니면서 같이 놀고, 시험공부도 하고,
친구들 흉보기도 했는데.
애들은 옛날 기억을 말하면서 나한테 '쥐' 얘기를 했다.
국민학교 때 나는 상당히 터프하고 겁이 없었다고 한다.
죽은 쥐(기억은 안 나지만, 설마 산 쥐는 아니겠지)의 꼬리를 잡아들고
아이들에게 보여줬단다, 내가.
내가 '귀신의 집'에는 죽어도 못 들어간다는 걸 얘들은 모를거야.

우리가 맨 처음에 어떻게 알게 됐는지 기억을 되새겨보고,
6학년 때 우리반 반장 부반장 하던 애들의 흉을 봤다.
걔네들 때문에 우리반은 반창회가 안 된다면서.
멀리 있었는데도 서먹서먹한 감정은 전혀 없었다.
'수다'의 막강한 위력 덕택에 우리는 다음달에 다시 만나기로
약속을 할 수 있었고, 꼭 다시 만날거다.

내 마음속에 벽이 없었다고 하면 거짓말이다.
난 분명히 마음의 벽을 느끼고 있었고, 애들 역시 마음 속에
벽을 세워두고 있다는 걸 알고 있었다. 그런데 다행히도
그 벽이 높지가 않아서 순식간에 허물 수 있었던 것뿐이다.

참 이상하다. 난 사회적 조건이라는 면에서
나와 비슷한 사람들을 많이 알고 있다.
내 주변은 사실 100% 그런 사람들로 채워져 있다.
그런데 가끔 과 동기모임이나 단과대학 친구들을 만났을 때 느끼는
그 서먹함이 얘네들한테서는 오히려 느껴지지 않았던 이유가 뭘까.

얼마전에 '친구등록'에 대해 얘기했던 적이 있다.
며칠전에 프리챌에 '커뮤니티'를 만들었는데,
내가 그 커뮤니티의 '관리자'다. 내가 만들었으니까
난 그걸 '관리'를 해야 한다.
세상에, 내가 한 개의 '커뮤니티'를 만들다니.
'친구등록'이라는 말과 마찬가지로 말장난이라면 말장난이고,
신기하다면 신기한거고, 씁쓸하다면 씁쓸한 거다.
사람과 사람 사이의 관계라는 것도 그렇고,
사람과 사람 사이에 만들어지는 '커뮤니티'라는 것의 속성도 그렇고,
참 알다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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