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타나모는 어떤 곳일까.
쿠바 남동쪽 끝부분, 바다에 면한 곳. 미군 해군기지.
백과사전의 설명 만으로는 이해할 수 없는 그곳에, 외신기사의 보도 만으로는 짐작할 수 없는 상황이 벌어지고 있다. 포로수용소. 아우슈비츠, 거제도, 굴라크, 그런 것들이 떠오르면 피묻은 상처와 함께 문학의 냄새가 나지만 관타나모의 포로수용소란.
나는 수용소는 고사하고, 감옥에도 가본 일 없고 재판을 받아본 적도 없다. 관타나모에 수용된 '테러용의자'들은 아프가니스탄과 파키스탄의 고향에서 1만5000km 떨어진 카리브해의 섬나라에 갇혀 어떤 생각들을 하고 있을까. 모두들 나어린 병사였을 사람들. 그들의 투쟁이 정당했다고, 논리로 무장하기에는 못 배우고 가난한 젊은이들. 아마 분노와 좌절감 속에 때로는 가슴에서 불이 오르고 때로는 공포 속에 지난 여정을 후회하고 있지 않을까.
외신을 보면서, 지구 반대편에서 벌어지는 일이라 해도 역시나 '사람'의 일이기 때문에, 머리 속으로 상황을 상상하곤 하는 일이 종종 있다. 아프리카의 엽기적인 범죄들 따위야 상상하고 싶지도 않지만, 제3세계의 '싸우는 사람들'의 이야기는 아무래도 상상력이 동한다. 다니엘 미테랑이 치아파스를 찾아 들어가던 모습이라든가, 오래된 이집트 여가수 움 칼툼의 노래를 듣는 군중들, 팔레스타인 사람들의 분노 같은 것들. 연민과 동경이 뒤죽박죽된 감정이 되어 보는 것--그 상태에서 글을 쓰는 것이, 기자로서는 최선의 글쓰기 방법이라고 생각한다. 그런데 관타나모 포로들의 마음이 되어본다는 것은, 여기 있는 나에게는 아마도 불가능한 일이지 싶다.
미국과 유럽이 이번에는 아프가니스탄전쟁 포로 처리를 놓고 외교갈등을 빚고 있다. 이슈는 바로 관타나모 미군기지에 수감된 알 카에다 용의자 6명의 재판 문제다. 미국이 이들을 군사법정에서 재판하겠다고 밝히면서 포로수용소 인권 실태와 군사재판의 정당성 문제가 다시 도마에 올랐다.
유럽연합 집행위원회는 4일 "미국이 관타나모 기지에 수용된 포로들에게 사형을 선고한다면 `테러와의 전쟁'을 위한 연대에 금이 갈 것"이라는 입장을 밝혔다. 특히 영국은 군사법정에서 재판을 받게 될 포로 6명 중 2명이 영국인인 것으로 드러나자 미국정부에 강하게 항의하고 나섰다. 다른 모든 인권문제도 마찬가지이지만 특히 관타나모 수용소 문제에 대해서도 꾸준히 보도를 해온 BBC방송은 "토니 블레어 총리는 이라크전쟁에서 미국을 지지한 점을 들어서라도 미 행정부에 공정한 재판절차를 요구해야 한다"며 "이같은 인식이 각료들 사이에도 널리 퍼져 있다"고 전했다.
미 국방부는 전날 알카에다 혐의자 6명을 군사재판에 부칠 것이라고 발표했었다. 발표하나 마나, 이미 진작부터, 아프간전이 시작된 뒤부터 바로 얘기했던 것을 실행에 옮기고 있는데 불과하다. 국방부는 재판을 받을 사람들이 아프간에서 테러 훈련을 받고 조직원 확충과 오사마 빈라덴 경호, 자금 마련 등의 역할을 맡았던 인물들이라고 설명한다. 미국은 그들의 신원을 구체적으로 밝히지 않았는데, 영국 외무부가 2명이 아랍계 영국인으로 확인됐다면서 이름을 공개했다. 1명은 호주 출신으로 전해졌다. 재판 장소는 확정되지 않았지만 관타나모 기지에서 진행될 가능성이 높다.
Britain condemns US terror trials (BBC)
인권단체들과 변호인들은 포로들을 민간법정에서 재판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첫째, 인권 감시가 취약한 군사법정에서 재판할 경우 민간 법정에서는 증거 능력을 인정받지 못하는 `강압에 의한 조사' 결과들까지 모두 증거로 채택될 수 있는 데다, 항소도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미국 내 교도소에 수감된 9.11 테러 용의자들이 민간법정에서 재판을 받는 것과도 형평성이 어긋난다. 게다가 군사재판은 비공개로 진행되기 때문에 변호인들의 지적처럼 `인권 블랙홀'이 될 수도 있다.
게다가 미 국방부가 추진하고 있는 것은 이들을 정식 군사법원(military court)도 아닌 특별 군사법정(military tribunal)에 세운다는 것이다. 미국은 "미국의 적을 미국 법으로 보호할 이유는 없다"고 주장한다. 무고한 우리 시민을 죽인 테러범들을 보호하기 위해 미국의 법률을 동원하라고? 엉클 샘이 그런 맘 좋은 일을 할 리가 없다.
미 국방부는 테러 관련 정보들이 공개될 경우 또 다른 테러그룹에 악용될 수 있다는 점, 알카에다 포로들이 공개 재판에서 제 2의 테러 지령을 조직에 전달할 우려가 있다는 점 등을 이유로 들고 있다.
요상한 논리가 있는데, 관타나모는 미국의 영토가 아니라는 것이다. 그 말은 맞다. 거기는 쿠바 땅이다. 미국이 '점령'하고 있을 뿐이다. 그러니까, 미국 땅이 아니니까, 거기 갇힌 자들은 아무렇게나 해도 된다는 거다. 미국 땅에 수감된 사람들은 미국 법의 적용을 받아 미국 법정에서 재판 받을 혜택이 주어지지만 관타나모나 아프간의 수용소에 있는 자들은 그런 고급스런 은혜를 누릴 수 없다는 거다.
현재 관타나모에는 680명 이상이 수감돼 있다. 아프간과 인도양의 디에고 가르시아섬 등에도 포로들이 수용돼 있으나 정확한 숫자는 확인되지 않고 있다. 미국은 이들을 `불법 전투원'으로 규정, 제네바 협약에 의거한 전쟁포로 처우를 해주지 않고 있다. 전쟁포로(PoW)들은 제네바협약에 따라 원치 않는 조사에 응하지 않을 권리를 갖는다. 또 전쟁포로를 처벌하려면 반드시 정식 재판을 거쳐야 한다. 그래서 미국은 '전쟁에서 잡은 포로들'을 놓고 '전쟁 포로가 아니다'라는 황당한 주장을 하고 있다.
"As I understand it, technically unlawful combatants do not have any rights under the Geneva Conventions."
도널드 럼즈펠드의 말이다(이 자는 악마다. 부시도 그렇지만, 콘돌리자 라이스와 럼즈펠드도 악마다. 정책과 노선의 옳고 그름을 넘어, 그들의 사고방식과 언술, 모든 것을 자신들의 선악 기준에 맞춰 규정하고 린치하는 최악의 오만함과 그 극악함이 무섭고 두렵다. 럼즈펠드가 하는 말을 들으면 마치 증오의 화신 같아 소름끼칠 때가 한두 번이 아니다).
관타나모 수용소에 고립된 포로들은 이중 철망에 갇혀 밤에도 불을 밝히고 있어야 한다. 아프간전 직후에 임시변통으로 만든 수용소에 미군은 '엑스레이'라는 이름을 붙였다. 벽이 아니라 철망으로 된 감옥이었다. 그러니까 딱 동물 우리였다는 얘기다. 열악한 수용 조건 때문에 자살을 기도하는 수감자가 잇따랐고, 단식투쟁도 번번이 일어났다.
인권단체들의 항의가 계속되자 미군은 최근에 '캠프 델타'라는 이름으로 건물을 만들어서 포로들을 이감했고, 일주일에 두 번씩 햇볕을 볼 수 있게 해주고 있다고 한다.
관타나모에 갇힌 사람들의 국적을 분류하면 40개국이 넘는다는데, 이 나라들 중 여덟 나라에서 미 국무부에 포로 처우를 개선해줄 것을 요구했다. 그래서 콜린 파월 국무장관이 럼즈펠드에게 의사를 전달했고, 그나마 여건이 나아진 것이라고 했다. 조금은 나아졌는지 몰라도, 갇혀 지내는 사람들 중에 최소 3명은 13-15세의 소년들이다. 그들은 벌써 2년 째 그 곳에 그렇게 '살고' 있다. 실험실의 쥐들처럼, 우리 안에 갇혀서, 형광등 불빛 아래서 밤을 보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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