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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리앗에 맞선 에콰도르의 다윗들

딸기21 2003. 6. 23. 17: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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큰 놈한테 작은 놈이 용감하게 덤비는 걸 '다윗 대 골리앗의 싸움'이라 하죠.


국제 기사에서 보통 '다윗 대 골리앗'이라 하면, 요새는 다국적 거대 기업 대 토착민들의 싸움을 말하는데요. 남미 에콰도르 산골에 이런 싸움이 벌어지고 있습니다.

남미 에콰도르 산간지방의 인디오 원주민들이 지역 환경을 파괴하는 다국적 에너지기업 셰브론 텍사코를 상대로 10년째 힘겨운 법정 투쟁을 벌이고 있다는 소식입니다.


라틴아메리카프레스는 22일 거대기업의 횡포에 맞선 에콰도르 북부 오레야나주(州) 누에바 로하 원주민들의 투쟁을 전했습니다. 셰브론 텍사코 본사가 있는 미국의 법원도, 거대기업의 입김에 좌우되는 에콰도르의 법원도 이들의 편이 아니지만 골리앗에 맞선 다윗의 싸움은 환경단체들과 원주민들의 성원 속에 계속되고 있습니다.

이 지역 원주민 부족과 캄펜시노(농업노동자)들이 세계 4위의 에너지 기업인 셰브론 텍사코를 상대로 처음 소송을 제기한 것은 지난 1993년. 64년부터 소송 직전인 92년까지 텍사코는 이 지역에서 원유를 채굴하면서, 기름 찌꺼기 144만 배럴과 오염된 지하수 750억 리터를 쏟아냈습니다. 오염물질들은 원주민 마을이 흩어져 있는 밀림을 그대로 오염시켜, 암 발생률이 껑충 뛰고 희귀 질병으로 숨지는 이들이 수백명에 이르게 됐습니다. 자연환경 파괴는 말할 것도 없고요.


생명의 위협을 받게 된 주민들과, 농토를 잃은 캄펜시노 3만명은 법원에 소송을 내려 했지만 오레야나 주에 텍사코 지사가 없다는 이유 때문에 자기네 지역에서는 재판조차 받을 수 없었다고 합니다.

주민들은 생각 끝에 미국 연방법원에 셰브론 텍사코를 상대로 15억 달러(약 1조8000억원)를 요구하는 손해배상청구소송을 냈습니다. 회사측은 오염물질 배출을 인정하면서도, 이것이 주민들의 질병을 불러왔다는 증거가 없다는 주장을 되풀이했다지요. 그러다가 파문이 커지자 95년 에콰도르 정부와 협상을 벌여 주민들에게 1500만 달러를 지불한다는 합의를 얻어냈습니다. 이른바 밀실협상이었겠지요. 주민들은 당연히 이를 수용하지 않았고요.

지지부진한 증거 공방 속에 지난해에야 판결이 내려졌습니다. 법원의 결정은 “에콰도르 법원의 판결에 따르도록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다시 원점으로 돌아가 법정 싸움을 시작해야 한다는 사실은 주민들을 무기력하게 만들고도 남았겠지요. 상심한 이들에게 힘을 준 것은 환경단체들과 원주민 단체들이었습니다. 인구(1300만명)의 다수가 백인이나 백인 혼혈이고 원주민은 4분의1 밖에 안 되는 에콰도르에서, 누에바 로하 주민들의 싸움이 ‘원주민 문제’로 다뤄지기 시작한 겁니다.

주민들은 다시 한번 힘을 모아 지난 5월 에콰도르 최고법원에 소송을 냈습니다. 법원은 셰브론 텍사코의 데이비드 오릴리 회장에게 출석을 요구했지만, 미국에 거주하는 오릴리 회장이 법정에 나올 리 없지요. 이런 저런 절차적인 이유로 소송은 또 지연되고 있지만 주민들은 이런 사태에는 이미 이골이 나 있습니다. 


원고 중 하나인 파올라 델가도는 “배상금보다 더 중요한 것은 생명을 앗아가는 오염원인을 제거하는 것”이라면서 싸움을 포기하지 않겠다고 말합니다. 환경단체인 ‘생태행동’의 에스페란사 마르티네스는 “다국적 기업이 기술을 앞세워 환경을 파괴하는 일은 아마존 밀림에서는 일상적인 일”이라면서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이 싸움을 국민 전체의 일이라 생각하고 있다”고 전했습니다.

텍사코는 나이지리아에서도 비슷한 짓을 저질러 지탄받았던 적 있고요. 재작년에는 콜롬비아에서 우와 인디오들이 옥시덴탈 피트롤리엄의 횡포에 맞서 '자살 선언'을 한 적도 있습니다. 인도네시아 아체에서도 비슷한 일이 벌어지고 있습니다. 나이키, 까르푸 같은 기업들이 제3세계에서 아동착취로 지탄받은 것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고요. 


골리앗도, 다윗의 돌팔매에 무너질 수 있습니다. 누에바 로하의 원주민들이 그런 승리를 보여줬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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