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살인의 추억'의 한 장면을 보는 듯한 이런 일이 멕시코에서 실제로 벌어지고 있다. 미국과 접경한 멕시코 북부 공업도시 시우다드 후아레스시(市)는 젊은 여성들을 노린 연쇄살인으로 공포에 휩싸여 있다.
이 도시에 사는 호세피나 곤살레스 부인은 지난 2001년 10월 여느때와 다름없이 딸 클라우디아(당시 20세)를 일터로 보냈다. 딸은 며칠이 지나도 돌아오지 않았고, 곤살레스 부인이 볼 수 있었던 것은 몇주가 지난 뒤 공장지대 뒷골목에서 발견된 딸의 시신이었다. "클라우디아 뿐 아니라 젊은 여자들이 여럿 숨졌어요. 경찰은 실종신고를 받으면 '기다리라'고 말하지만 가족들은 아무런 희망이 없다는 것을 누구보다 잘 알아요."
이 국경도시에서는 지난 1993년부터 클라우디아 같은 젊은 여성들을 겨냥한 살인극이 잇달아 벌어졌다. 시 당국에서 확인된 미스테리 살인의 피해자는 258명이지만 시민단체들은 납치·실종된 이들까지 합치면 무려 300명 이상이 희생된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희생자의 시신에서는 대부분 성폭행과 고문 흔적이 발견됐고, 몇몇 시신에서는 신체조직 탈취와 같은 엽기적인 양상이 나타나기도 했다.
피해자는 모두 젊은 여성들이다. 이 일대에는 미국으로 수출하는 상품을 생산하는 '마킬라도라'라 불리는 중소공장들이 밀집해 있는데, 희생자들은 대부분 이런 공장의 직공들이다. 야근과 잔업으로 밤늦게 일을 마치고 퇴근길에 변을 당한 경우가 많다. 연쇄살인으로 인구 200만명의 이 도시는 공포의 세월을 보내고 있다고 로이터통신은 전했다.
시우다드 후아레스시가 있는 치와와주는 대부분 낙후된 저소득층 지역으로, 국경의 공장지대가 경제의 중심이다. 취업자 대다수는 치와와주와 멕시코 전역에서 일자리를 찾아온 클라우디아같은 여공들이다.
시민단체들은 10년째 계속되고 있는 연쇄살인을 마약과 경제난, 봉건적 사회구조가 만들어낸 '사회적 살인'으로 보고 있다. 여성단체들은 특히 이 사건들을 제노사이드(genocide·종족학살)에 빗대 '페미니사이드(feminicide·여성학살)'로 규정하고 당국에 강력한 대처를 요구하고 있다. 국경 지역의 사회문제를 조사해온 여성운동가 훌리아 모나레스는 "이 연쇄살인은 변경지대에 여전히 남아 있는 계급적, 성적(性的) 편견을 그대로 보여준다"고 지적하면서 당국의 적극적인 대응을 촉구했다.
그러나 시 당국이 지금까지 보여준 모습은 무능하기만 하다. 당초 여성들이 살해되기 시작했을 때 시 수사당국은 "피해 여성 대부분은 매춘부"라면서 소극적인 대응으로 일관했다. 범죄가 확산되고 사회문제로 비화하자 등 떼밀려 조사에 나서, 현재 60여명을 기소한 상태. 그러나 지금까지 범인이 밝혀져 유죄가 확정된 것은 단 1건 뿐이다. 여성 6명을 살해한 혐의로 기소된 이집트 출신 노동자 압둘 라티프 샤리프는 지난해 1명만을 살해한 것으로 유죄가 인정돼 징역 20년형을 선고받았다.
당국은 지난 1998년 전담수사반을 만들어 인력을 투입했으나 아직 대부분 사건의 범인을 밝혀내지 못하고 있고, 예방과 근절은 엄두도 못 내는 처지다. 외국인 노동자와 버스 운전기사, 사이비종교집단 등 수백명을 체포해 조사했지만 '과학수사'는 꿈도 꾸지 못하는 열악한 수사환경과, 피해여성들에게 비난의 화살을 돌리는 봉건적 관습 때문에 진척을 보지 못했다.
이 지역에는 경제난으로 인한 불만을 정당한 방법으로 표출할 길이 없는 광범한 실업자 계층과 불법 이주민 노동자들, 마약중독자들이 들끓고 있는데다 미국에서 유흥가를 찾아오는 10대 알콜중독자들이 널려 있다. 사건이 해결될 기미를 보이지 않자 여성들의 공포만 커져간다.
멕시코 경제는 자유시장경제와 봉건적 경제구조가 혼합돼 있는 형태인데, 주요 산업은 낙후된 식음료와 담배 생산 등 경공업과 사양산업들이다. 1994년 북미자유무역지대(NAFTA)에 들어간 뒤로 경제의 대미종속이 극심해졌다. 1인당 GDP는 9000달러로 라틴아메리카에서는 높은 수준이지만 경제적 불평등이 워낙 심해 빈곤계층이 광범위하게 존재하고 있다. 1억 인구의 40%가 빈곤선 이하에서 살고 있는 것으로 집계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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