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라크 근무 명령은 사형선고다"
"대사관 크게 지어놓고 `사람채워넣기'를 하는 것이냐"
어제 미국 워싱턴의 국무부 청사에 외교관 300여명이 모여 국무부의 이라크 강제 근무명령에 항의하는 `항의집회'를 열었다고 합니다. 외교관들이 특정 지역 근무를 거부하며 대규모로 반발 의사를 표출하는 것은 극히 이례적인 일이죠. 영국 BBC방송은 미국 외교관들이 이라크 근무를 거부하고 있다면서 바그다드에 거대한 미국대사관을 지으면서 촉발된 국무부 내 이상기류를 전했습니다.
발단은 국무부가 최근 이라크 근무자를 배정하면서 지원자 발령 원칙 대신 `강제 발령'으로 방침을 바꾼 거였는데요.
지금까지는 인센티브를 주고 자원자를 모집해 우선적으로 발령했으나 미군 사망자가 4000명에 육박하고 이라크 치안 상황이 나아지지 않자 인력 충원에 차질이 빚어지기 시작했습니다. 국무부는 고심 끝에 강제 발령 쪽으로 지침을 바꾸고, 지난달 26일 이라크 발령 후보자로 선정된 250여명에게 통지를 했다는군요. 이들 중 48명이 이라크로 발령돼 내년부터 1년간 근무를 하게 되는 거지요.
이라크 대사관 이참에 문닫아라
31일 회의는 당초 국무부가 새로운 지침을 직원들에게 설명하기 위해 소집한 것이었지만, 항의집회로 변질되고 말았다고 합니다. 이라크 발령 후보자로 지목된 이들은 오는 5일까지 승낙 여부를 밝혀야 하는데, 국무부는 심신 장애 같은 결정적인 결격사유를 대지 못하는 한 누구든 바그다드로 보낼 수 있다는 입장입니다. 거부하면 해고할 수도 있다는 으름장까지 놓았다고 합니다.
통보를 받은 이들 중 극소수 자원자를 뺀 나머지 대부분은 거세게 반발하고 있습니다. 한 외교관은 아예 공개적으로 단상에 올라와 "사실상의 사형선고"라면서 "위험지역 근무를 자원하는 것과 강제적으로 발령하는 것은 전혀 다른 문제"라고 항변했다.
국무부는 외교관들을 각국에 내보낼 때 1차적으로 협의를 거치지만, `강제 발령'을 했던 전례도 없지 않습니다. 베트남 전쟁 중이던 1969년에는 신임 외교관 전원을 베트남에 강제 발령했고, 1970∼80년대에는 아프리카 치안 불안 지역의 공관들에 일부 직원을 강제 배치했다.
축구장 80개 크기 대사관
그러나 이라크의 경우 무리하게 배정 인원을 늘려놓고 사람을 채우려다가 이번 `사단'이 발생했다는 지적이 적지 않습니다. 안전 문제를 들어 수영장에 운동장, 호텔급 주거시설까지 딸린 초대형 대사관(사진)을 짓고 거기 맞는 방대한 인원을 배정하려다보니 무리가 왔다는 겁니다. 이번 국무부 회의에 모인 외교관들 사이에선 "아예 이 시점에서 제 기능도 못하는 바그다드 대사관을 닫아야 한다"는 주장까지 나왔다고 BBC는 전했습니다.
미군은 이라크 점령 뒤 사담 후세인 전대통령이 쓰던 대통령궁을 임시 대사관 겸 점령사령부로 사용해 이라크인들의 거센 반발을 샀습니다. 아프가니스탄 카불에서 4500만달러(약 400억원)를 들여 대사관을 지어 빈축을 샀던 미국은 2005년 바그다드에 축구장 80개 규모의 거대한 부지를 책정, 궁궐같은 대사관을 지었습니다. 그것도 이라크인들의 반대 때문에 쿠웨이트 노동자들을 데려와 공사를 벌여야 했지요.
미국대사관 짓는데 오겠다는 일꾼이 없어 쿠웨이트 가서 노동자들 낚아오는 미국.
어느 만평인지 잘도 그렸습니다.
증오의 궁전을 만드나
카불과 바그다드의 미국대사관은 공교롭게도 모두 딕 체니 부통령이 최고경영자를 지냈던 핼리버튼 계열사가 건축을 맡아 특혜 의혹을 받는 등, 여러 문제점을 드러내왔습니다.
미국대사관 얘기가 나와서 말인데, 잔혹한 내전 때문에 초토화된 시에라리온에서, 말 그대로 '궁궐같은 미국 대사관'을 직접 본 적 있습니다. 그 사진을 여기 올리면 좋겠지만 아쉽게도 없어서...
산 중턱에 대사관을 짓고 주변 나무는 모두 베어 없앴더군요. 적들이 다가올까봐... 그런 것이라죠. 저도 뭐 가까이 갈수는 없어서 멀찌감치서 봤는데, 어찌나 크던지 이스탄불의 블루모스크처럼 보일 정도였습니다. 무슨 일이 일어나면 미국인들 헬기 태워 빼갈 수 있도록 부지를 넓게 쓰는 거라나 어쩐대나..
시에라리온이야 미국이 침공해서 망하게 만든 나라는 아니니까 그냥 꼴불견이다 쳐도, 총독부 건물마냥 바그다드에 그 지x을 해놓으면 이라크 사람들이 좋아하겠습니까? 우리는 식민지 끝나고 50년 지나서도 총독부 건물 지긋지긋하다고 부숴버렸는데, 말이 좋아 축구장 80개 크기이지... 저렇게 지어놓는 것은 이라크인들 마음에 두고두고 증오의 상징을 심어놓는 것과 똑같은 짓이겠지요.
폴란드의 새 총리 지명자가 취임도 하기 전 `이라크 철군'부터 다짐하고 나섰습니다.
지난달 총선에서 승리, 말도 많고 탈도 많던 `쌍둥이 총리' 야로스와프 카친스키를 밀어내고 자리를 이어받게 된 도날드 투스크(50ㆍ사진) 총리 내정자는 31일 일간지 `폴스카'와의 인터뷰에서 "내년에는 이라크 파병부대를 철수시킬 것"이라고 밝혔다고 AP통신이 보도했습니다.
투스크 총리내정자는 구체적인 철군 날짜는 밝히지 않았지만 "2008년에는 임무를 모두 끝내길 바란다"고 말해 철군 계획을 분명히했습니다. 이날 여론조사기관 CBOS가 발표한 여론조사에서는 폴란드 국민의 81%가 이라크 파병에 반대하는 것으로 나타났다고 합니다.
폴란드는 2003년 미국이 이라크를 점령한 뒤 부대를 파병, 아직까지 900여명을 주둔시키고 있다. 이는 미군을 제외하면 영국, 한국에 이은 3위 규모입니다.
폴란드군은 영국군이 총지휘하는 남부 바스라 일대에 주둔하고 있는데, 이미 22명이 저항세력 공격 등으로 목숨을 잃었습니다. 2004년 집권한 좌파 정부가 한때 철군을 추진했지만 카친스키 총리의 우파 정부가 들어선 뒤 `계속 주둔'으로 방침을 바꿨었는데요. 요동을 겪었던 이라크 파병 연장 문제는, 정권이 바뀌면서 다시 `철군'쪽으로 가닥이 잡히게 됐습니다.
친기업 중도우파 정당인 `시민강령'의 당수인 투스크 총리내정자는 오는 5일 의회에서 정식 취임합니다. 어느 나라 '진보적 대통령'보다 훨씬 낫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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