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영어학원 선생님 크리스는 남아프리카공화국에서 왔습니다. 한 2주 전이었나요.
너무 졸리다면서 자꾸 하품이 난대요. 이상하대요. 전날 일찍 잤는데, 술도 안 마셨는데 왜 졸린지 모르겠대요.
저하고 제 친구는 “머가 이상해, 봄이니깐 그렇지” 이랬지요. 그랬더니 말도 안 된대요.
크리스는 ‘봄에는 졸리다’는 말은 들어본 적도 없답니다.
“봄이라서 졸린 거라니깐. 우린 그런 걸 가리키는 말까지 따로 있는데...”
“말도 안돼, 그런게 어딨어”
“나도 잘은 모르지만 아무튼 과학적인 이유가 있겠지.”
“그렇겠지. 일본인들이 한국에 쇠못을 박아놓아서 그런 거 아냐?”
“그게 과학적인 설명이라고 생각하니. -_-”
“아니. -_-”
그 다음시간에 크리스는 매우 재미난 발견을 했다며 얘기하더군요.
“데이빗(영국 출신)도 하품이 난대!!!”
“그래, 봄이라니깐!”
한국에선 왜 봄에 더 졸릴까. 외국인들에겐 신기한 현상으로 보이나 봅니다.
그럼 춘곤증은 우리나라에만 있는 것일까. 그렇다면 왜 그런 것일까.
남아공도 영국도 온대기후입니다. 우리와 차이가 있다면 우리나라는 연교차가 큰 편이지요.
우리의 겨울은 훨씬 혹독하다는 것, 우리의 봄은 훨씬 건조하다는 것.
중국과 일본은 어떨까요?
기온차이와 습도가 공기 중 산소 농도에 영향을 주고(즉 하품이 많이 나오게 하고)
혈중 산소 농도가 떨어져 신체 활동이 떨어지게 하는(즉 졸리게 만드는) 것이라면
연교차가 크고 건조한 곳에선 봄에 졸릴 확률이 높겠지요?
졸리게 만드는, 신체의 활기를 떨어뜨리는 것에는 순환 말고 여러 가지 요인이 있대요.
일례로 비타민이 부족하면 신진대사가 떨어진다고 합니다.
확실히 북반구 온대지방은 비타민 부족 되기 쉽지요. 겨울이 혹독한 극동지방에서는
겨우내 파란것들은 다 죽어서 초봄 비타민 섭취가 힘들테니깐...
‘춘곤’은 중국에서 온 말입니다. 중국엔 ‘춘곤추핍(春困秋乏)’이란 말이 있답니다.
봄에는 졸리고 가을에는 피곤해지기 쉽다는 뜻입니다.
당나라 때 시인 맹호연(孟浩然)의 ‘춘면불각효(春眠不覺曉)’라는 유명한 시가 있습니다.
春眠不覺曉(춘면불각효) 봄잠에 취해 날 밝는 줄 몰랐더니
處處聞啼鳥(처처문제조) 여기저기 들리는 새 우는 소리
夜來風雨聲(야래풍우성) 밤새 비바람 소리 거세더니
花落知多少(화락지다소) 꽃은 또 얼마나 졌을까
이미 당나라 때부터 봄에는 졸렸다는 증거가 되겠습니다.
일본에도, ‘봄철 졸음’을 가리키는 말이 있습니다. ‘蛙の目借り時’라는 건데요. ‘개구리가 눈을 빌려가는 시간’이라는 뜻이라고 합니다. 개구리가 겨울잠 자고 봄에 일어나 짝을 찾느라고 눈을 빌려가는 바람에 눈을 뜰수가 없다, 즉 졸리다는 말.
제가 지금 매우 졸립니다. 오늘 나른한 봄날은커녕 장맛비같은 굵은 빗자락이 쏟아지는데 말입니다. 요 며칠 버지니아 사건 때문에 평소보다 조금 일찍 출근한데다 올들어서는 낮잠도 못 자니 피곤합니다. 덕택에 리뷰는커녕 그날그날 기사도 올리질 못하고 있어요. 지금도 무언가 해야 하는데...
이렇게 딴짓을 하면서 지금 춘곤증과 싸우고 있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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