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2라는 그룹의 보컬 보노, 이 사람의 음악은 들어본 일이 없어 모릅니다만 이 사람의 말과 행동에 대해서는 뉴스에서 많이 봤습니다. 밥 겔도프와 함께 '좋은 일' '가난한 사람 돕는 일' 많이 하는 사람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냥 돕는 것이 아니라 지구상의 절대빈곤을 없애자고 부자 나라들과 국제기구들 상대로 목소리 높여 싸우고 있지요.
제프리 삭스의 '빈곤의 종말'을 펼쳤더니, 보노의 추천사가 맨 앞에 나와 있습니다. 한번 읽어볼 만한 글인 것 같아 옮겨둡니다. 하나하나 베껴 치느라고 손목이 좀 아팠어요. :)
2004년, U2의 보컬 보노
천둥을 품은 구름 위에 떠서 아프리카로 가는 비행기 속에서 여독에 지친 두 남자가 서로에게 비스듬히 기대어 있다. 한 사람은 말끔하게 면도를 했지만 그 주변에는 종이들이 흩어져 있다. 칙칙한 검은 양복을 입은 그 사람은 잠이 부족해 약간 멍해진 눈을 하고 자신의 큰 머리로도 감당하기 어려운 큰일을 생각하고 있다.
다른 한 사람은 차림새가 보헤미안식으로 좀 너저분하다. 이 남자는 며칠 동안 면도도 하지 않았고 머리는 제멋대로 헝클어져 있다. 동안의 얼굴만이 그의 나이를 어렴풋이 짐작하게 만들 뿐이다. 마치 오랜 여행이 건강을 해칠 수 있다며 조심하라는 캠페인성 광고를 보는 것 같다. 그가 몸을 뒤척이며 정신을 차린 듯하자 항공기 여승무원이 그에게 기념 사인을 해달라고 요청한다. 그는 약간 우스꽝스러운 표정을 지으며 서류들 사이에 누워 있는 검은 양복 차림의 괴짜를 가리킨다.
보헤미안 차림새를 하고 있는 남자가 바로 나다. 잠시 내 소개를 하면 이름은 보노이고, 록스타이며 학생이다. 나와 함께 있는 사람은 제프리 삭스라는 위대한 경제학자인데, 내가 몇 년 동안 가르침을 받은 교수다. 머지않아 틀림없이 이 사람의 사인이 내 것보다 훨씬 더 가치있을 것이다.
이제 우리가 어떻게 이 여행을 시작하게 되었는가를 밝힐 차례다. 이야기는 제프리 삭스(동료나 친지들은 보통 제프라고 부른다)가 지구연구소 소장이 되기 이전이자, 제프가 뉴욕으로 와 코피 아난 유엔 사무총장의 특별자문관이 되기 이전으로, 또한 제프가 매사추세츠 케임브리지에 있는 하버드 대학교의 케네디국제개발대학원에서 나를 심하게 채찍질하게 이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나는 밀레니엄 기념행사의 일환으로 LDC(최저개발국들)가 OECD 부국들에게 지고 있는 부채를 탕감해주자는 주빌리 2000을 로비하러 의회에 갈 작정이었다. 그런데 내 친구인 바비 슈라이버가 내게 의회에 가기 전에 먼저 제프를 찾아가 보라고 충고해 주었다. 즉 제프의 도움을 받아 내 주장을 좀더 정확하게 가다듬으라는 것이었다. 그 일이 계기가 되어 나는 다양한 국제기구들을 요령껏 다룰 줄 아는 한 남자의 도움을 받아 국제기구들이 포진한 세계에 발을 들여놓게 되었다. 막강한 힘을 지닌 국제기구들은 당신이 먹고 싶어하는 수프이자 만약 적당히 나누어 먹는다면 더 많은 사람들이 먹을 수 있는 수프를 만드는 일을 하고 있었다.
극단적 빈곤이 의미하는 기아와 질병 그리고 생명의 낭비는 한마디로 전 인류에 대한 모욕이다. 이 문제가 제프에게는 어렵지만 해결할 수 있는 방정식이다. 인적 자본과 금융 자본을 교차시킴으로써, 그리고 부유한 세계의 전략적 목표와 가난한 세계의 새로운 계획을 적절하게 교차시킴으로써 필요한 답을 구할 수 있는 방정식이다.
나는 멜로디를 듣고 그것을 감정이 실린 목소리로 표현할 줄 아는 가수다. 위대한 사상은 멜로디와 공통점이 많다. 명확하고 불가피하며 기억할 만한 것들은 오랫동안 당신의 머릿속에서 떠날 줄 모르고 귀에서 윙윙거린다. 이 책에 담긴 사상들은 멜로디가 아니지만, 당신이 결코 잊을 수 없는 감동적인 음표들을 가지고 있다. 그것은 이제 그만 우리가 사는 세상의 극단적 빈곤을 끝내자는, 우리가 결코 무시할 수 없는 의미 있는 도전이다.
제프는 다른 사람들에게 강한 영향을 끼친다. 내가 기회있을 때마다 하는 연설에는 제프의 영향이 짙게 배어있다(몽키스가 비틀스를 따라했던 것과 마찬가지다). 이 사람의 목소리는 어느 전자 기타보다 더 크고 어느 헤비메탈보다 더 격렬한 울림을 전한다. 제프는 오페라 총감독 같은 열정을 품고 있고, 어디서나 뚜렷한 존재감을 드러내며, 생기가 넘친다. 제프가 말하는 방법은 좀 직설적이고 거칠지만, 논리는 분명하다. 제프는 천부적으로 확성기 같은 목소리를 가진 듯하지만, 그 목소리는 인류 발전을 위해 꼭 필요한 일을 해내자고 주장하는 데 꼭 필요하다.
그러나 제프가 언제나 활기 넘치는 것은 아니다. 때로 잔뜩 화가 나 있기도 한다. 세계 곳곳의 발전도상국이 직면한 많은 위기들이 조금만 노력하면 피할 수 있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말라위 리옹베 근교의 병원에서 세 명이- 두 명은 병상 위에서 한 명은 병상 아래서- 죽어가는 모습을 본 적이 있다. 충분히 피할 수 있는 죽음이라는 걸 알면서 속수무책으로 바라본다는 것은 무척 힘든 일이었다. 그때 나는 말할 수 없이 큰 충격을 받았다.
제프는 창조적이다. 제프는 통계 수치들에 생명을 불어넣을 수 있는 경제학자다. 제프는 숫자들을 보던 눈을 들어 스프레드시트 너머로 도움을 요청하는 얼굴들을 볼 수 있다. 머나먼 세계 끝까지 힘든 여행을 함께 하는 제프의 가족과 똑같은 모습을 한 가족의 얼굴들이다. 제프는 말도 안 된다고 여겨지는 일들이 실제로는 무엇을 의미하는지 알게 해 준다. 즉 제프는 우리가 병원(부유한 세계의)에만 가면 쉽게 구할 수 있는 약이 없어 예방할 수 있고 치료할 수도 있는 질병들- AIDS 결핵 말라리아-로 날마다 1만5천 명의 아프리카 사람들이 죽어가는, 어쩌면 말도 안 되는 현실의 의미를 명확하게 알게 해 준다. 이 통계 하나만으로도 우리 가운데 많은 사람이 확고하게 인식하고 있는 사상, 즉 인류는 모두 평등하다는 사상이 웃음거리가 된다.
오늘날 아프리카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은 우리가 생명에 대해 품고 있는 경건함을 조롱하게 만든다. 또한 인류 역사가 낳은 위대한 사상을 존중하고 다르며 지키겠다고 약속한 점에 대하여 의문을 낳게 한다. 그 이유는 우리가 정말로 정직하다면 그런 무고한 죽음이 세계 어느 곳에서도 날마다 일어나도록 그냥 내버려둘 수 없기 때문이다. 북아메리카나 유럽 또는 일본이라면 결코 그 지경이 되도록 방치하지는 않을 것이다. 그러나 화염에 휩싸인 아프리카 대륙은 어떠한가? 아프리카인의 생명이 우리가 소중하게 여기는 우리와 똑같은 생명이라는 것을 마음 속 깊이 받아들인다면, 우리 모두 아프리카 대륙 전체로 번져 나가는 불을 끄기 위해 하루빨리 더 많은 일을 해야만 한다. 이 점은 선뜻 받아들이기 어렵더라도 분명한 진실이다.
이 책은 귀중한 생명을 구할 수 있는 대안을 이야기하고 있다. 즉 평등을 향한 여정에서 취해야 할 다음 조치를 제시하고 있는 것이다. 평등이란 무척 큰 사상이고 자유와 연관되어 있다. 그러나 그 사상은 아무런 대가를 치르지 않고는 얻을 수 없다. 우리가 생명을 구하는 일을 진지하게 생각한다면 마땅한 대가를 지불할 의사가 있어야 한다. 일부 사람들은 우리에게 그럴 여유가 없다고 말할 것이다. 나도 동의한다. 나는 우리가 적당한 핑계거리를 만들어 그 일을 미룰 만큼 여유롭지 않다고 생각한다. 거리 개념으로는 더 이상 이웃의 범위를 정의할 수 없는 세계에서 인류 평등, 즉 생명에 대한 평등한 가치를 실현시키는데 필요한 대가를 지불하는 것은 감성적 행위가 아니라 이성적 계산에 의한 영리한 행위다. 오늘날 ‘가진 자들’의 운명은 ‘아무 것도 갖지 않은 자들’의 운명과 불가피하게 연결되어 있다. 예전에는 미처 이 점을 몰랐다고 하더라도 2001년 9월 11일 이후로 너무나 명확해졌다. 9·11 사건을 일으킨 범인들이 부유한 사우디아라비아인이었을 수도 있겠지만, 그들이 원군과 도피처를 발견한 곳은 정치와 사회가 붕괴되고 빈곤에 찌든 아프가니스탄 국가였다. 아프리카는 테러와의 전쟁에서 최전선은 아니지만 곧 그렇게 될 수밖에 없다.
“테러와의 전쟁은 빈곤과의 전쟁과 단단히 결부되어 있다.” 누가 이 말을 했던가? 나는 물론 아니고 비트족 평화그룹도 아니다. 바로 미국의 콜린 파월 국무부 장관이 한 말이다. 그런데 우리는 군인이 그런 말을 하기 시작할 때는 경청해야 한다. 긴박하고 흥분된 상황에서는 잠재적 적군에 맞서 방어하기보다는 그 적군을 친구로 만드는 것이 비용이 더 적게 들고 더 영리한 행동이 아닐까?
우리는 ‘사태가 이런 식으로 흘러오지 않았으면 좋았을텐데...’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그러나 이런 희망이 여기서는 결코 도움이 되지 않을 뿐만 아니라 아주 위험하다. 제프가 그려내는 설계도에는 빈곤을 절반으로 줄인다는 2015 밀레니엄 발전목표- 세계의 모든 정부가 서명한 목표-를 달성하기 위한 최단 경로에 대한 구상만 들어있는 게 아니다. 그 설계도는 우리가 그 일을 어떻게 완수할 수 있는가를 친절하게 가르쳐 주는 길잡이이기도 하다. 즉 어린아이들이 풍요의 세계에서 기아 때문에 죽어가고, 단돈 20센트의 예방접종 비용으로 방지할 수 있는 질병 때문에 죽어가는 현실에서, 우리가 절대적이고 바보 같은 빈곤을 추방할 수 있는 첫세대로서 과연 어떤 역할을 해야 하는가를 안내하는 길잡이인 것이다. 그렇다. 우리는 그렇게 할 수 있는 여력이 있는 첫 세대다. 잘못된 무역과 악성 부채 그리고 복잡하게 뒤엉킨 불운한 실타래를 풀 수 있는 첫 세대다. 또한 너무나 오랫동안 너무나 잘못되어 온, 세계의 힘 있는 곳과 힘없는 곳 사이의 뒤틀린 관계를 바로잡을 수 있는 첫 세대인 것이다.
우리 목에 걸린 기회의 맷돌은 제프의 손에서는 가슴 설레는 모험이 된다. 온 힘을 기울일 만하고 이룰 수 있는 무엇인가가 된다. 제프의 주장은 명확하다. 우리는 서로 다른 출발점에서 시작하여, 즉 제프는 시장에서, 나는 플래카드에서 시작하여 한 곳에서 만난다. 다행스럽게도 우리는 여러분이 두 가지 모두를 필요로 할 것이라는데 동의한다. 그러나 이 책의 탁월한 설득력에도 불구하고 여러분은 가장 중요한 질문에 대한 해답을 발견하지는 못할 것이다. 해답은 방정식이나 실지조사 같은 것에서 발견할 수 있는 게 아니다. 그것은 바로 우리 어깨에 달려 있다. 우리는 위도의 고저가 아이들의 삶과 죽음을 결정하는 것을 더 이상 용인하지 않는 세대가 될 수 있다. 그러나 우리는 과연 그런 세대가 될 의지를 가지고 있는가? 서구에 사는 우리는 잠재력을 인식할 것인가, 아니면 우리 귀에 부드럽게 속삭이는 무관심과 냉담함으로 날마다 풍요로움 속에서 안락하게 잠드는 것에 만족할 것인가? 날마다 1만5천명의 사람들이 AIDS와 결핵, 말라리아로 무고하게 죽어가고 있다. 어머니 아버지 교사 농부 간호사 기계수리공 어린아이들 등 모든 부류의 사람들이 죽어가고 있다. 이것이 아프리카의 현실이며 위기다. 이것은 야간 뉴스에는 나오지 않는다. 서구는 아프리카가 당면한 위기를 별로 위급한 일로 다루지 않는다. 바로 이것이 우리가 처한 다급한 위기다.
미래 세대들이 이 책을 읽다 보면 우리가 핵심적 질문에 대답했는가를 알게 될 것이다. 증거는 미래 세대들의 눈에 보이는 세계일 것이다. 역사가 우리를 심판하겠지만, 역사에 기록될 내용은 우리에게 달려 있다. 우리는 누구이고, 누구였으며, 무엇으로 기억되길 원하는가? 우리는 우리 세대가 과연 무엇을 해야할지 몰랐다고 말할 수 없다. 또한 우리 세대가 그것을 할 여유가 없었다고 말할 수 없다. 더욱이 우리 세대가 그것을 해야할 이유는 없었다고 말할 수 없다. 그것은 이제 우리에게 달려 있다. 우리는 책임을 전가하는 길을 선택할 수도 있다. 그러나 제프리 삭스가 이 책에서 여러 차례 힘주어 제안하듯이 우리 세대가 힘을 모아 인류 역사의 패러다임을 바꾸어 나갈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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