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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라크 문화재 수난사

딸기21 2003. 4. 12. 14: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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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라크 수도 바그다드에서 시민들의 약탈행위가 계속되고 있는 가운데 11일에는 세계적인 유물들이 즐비한 바그다드국립박물관에서까지 약탈전이 자행됐다. AFP통신 등 외신들은 거리로 몰려나온 시민들이 상점과 공공건물을 약탈하다가 바그다드 고고학박물관에도 난입, 유물들을 훔쳐갔다고 보도했다. 약탈 과정에서 바그다드박물관의 자랑거리였던 4000년된 은제 하프까지 도난당한 것으로 알려졌다.
바그다드박물관은 고고학박물관과 민속학박물관 등 28개 전시관으로 구성돼 있으며, 고대 오리엔트에서 이슬람시대와 근세에 이르는 수천년 역사를 한눈에 볼 수 있는 세계적인 박물관이다. 이 때문에 문화재 전문가들은 이 박물관이 미군 폭격을 받을까봐 우려해왔는데, 간신히 폭격을 피한 박물관은 결국 시민들의 발에 짓밟힌 꼴이 됐다.

기원전 5000년 경부터 문명이 싹트기 시작한 이라크는 국토 전체가 문화재라 해도 될 만큼 풍부한 유적들을 갖고 있다. 바빌론 문명의 고향인 바벨(바빌론), 앗시리아제국의 터전이었던 님루드, 9세기의 미나레트(첨탑)가 있는 사마라, 아가르구프의 지구라트(신전건축), 파르티아왕조 유적인 크테시폰 등 세계적인 유적들이 산재해있다. 미국 시카고대 고고학팀은 90년대 후반 이라크 전역을 조사한 뒤 무려 50만곳에서 역사유적이 발견됐다고 보고한 바 있다.
그러나 역사가 오랜만큼 이라크 문화재의 수난사(受難史) 또한 길고 길다. 유라시아의 중앙에 위치한 이라크는 숱한 외침을 겪어야 했기 때문이다. 기원전 18세기에 만들어진 `함무라비 법전'은 이미 고대 페르샤제국에 약탈돼 1902년 이란에서 발견됐다. 법전은 지금 프랑스의 루브르박물관에 가 있다. 근대에는 서구 열강의 문화재 약탈이 이어졌다. 세계 7대 불가사의의 하나인 바빌론의 공중정원은 성벽들이 조각조각 잘려나갔다. 바빌론 문명의 상징인 `이슈타르의 문'은 독일이 실어갔다.
사담 후세인 정권이 들어선 뒤 문화재의 수난은 더 심해졌다. 후세인은 곳곳에서 유적을 파괴하고 가짜 유적들을 만들었다. 바빌론에는 느부차드네사르왕의 공중정원 터에 새 건물을 짓고 자기 이름을 새겨넣은 벽돌들을 끼워넣었다. 사마라의 칼리프모스크 터에도 자신의 치세를 기념하는 새 사원을 짓는 등 유적들을 무참히 짓밟았다.
걸프전 때에는 우르 부근의 지구라트가 미군 공습으로 산산조각났고, 바그다드의 고대건축과 크테시폰의 왕궁도 엄청난 피해를 입었다. 걸프전 직후 남부에서 시아파 반군이 봉기하자 후세인 정권은 반군을 진압한다며 나시리야와 디와니야의 모스크들을 탱크로 짓밟았다. 이번 전쟁에서는 시아파 성지인 나자프와 카르발라가 교전장이 됐으나 다행히 알리·후세인·아바스 모스크 등 3대 모스크는 무사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라크 문화재 수난사

중동사 책을 보면 "중동을 지배하는자가 세계를 지배한다"는 말이 종종 나온다. 유라시아 대륙의 중심에 중동이 있으니, 저 말도 틀린 말은 아니다. 그러나 저 말을 지배당하는 자의 입장, 즉 이라크의 입장에서 보면 "세계를 지배하려는 자는 모두 우리나라에 처들어온다"가 된다. 이라크인들은 "카우보이 200년 문화가 7000년 바빌론을 부순다"고 하는데, 사실 우리나라식의 호국사관으로 보자면 이라크인들의 역사는 자랑으로 가득찬 것만은 아니다. 침략받은 역사로 보자면--자신들 말로는 7000년 저항의 역사라는데, 바꿔 말하면 7000년간 수없이 침략을 받았다는 얘기다. 바로 옆에 있는 이란이 '완전정복' 된 일 없이 독자적으로 영토와 문화를 계속 지켜온것과는 상반된 역사를 갖고 있다.

지난 1991년 걸프전으로 미국의 침공을 받기 이전에도 이라크 땅에서는 전쟁이 끊이지 않았다.
유라시아대륙의 중앙에 위치한 지정학적 조건 때문에 역사적으로 문명의 명멸과 외침이 계속됐다. 이는 이 지역이 역동적인 역사를 갖고 있다는 뜻도 되지만 그만큼 파란을 많이 겪었다는 뜻이기도 하다. 고대로부터 이어진 이라크의 역사는 눈부신 문명을 낳았음에도 불구하고 '끊임없이 정복당하는' 역사였다.
현재의 이란-이라크 지역을 제패했던 페르시아인들은 기원전 330년 유명한 알렉산드로스 대왕에게 정복됐고, 알렉산드로스의 뒤를 이은 셀레코스 왕조가 200여년 동안 이 지역을 지배했다. 그후 파르티아와 로마, 사산조 페르시아와 비잔틴 제국이 번갈아 넘나들었으며 7세기부터는 아라비아반도에서부터 세력을 확장한 이슬람 제국의 지배를 받았다. 8세기에 아바스 왕조가 성립되면서 잠시 바그다드는 이슬람 세계의 중심으로 부상했으나 13세기 몽골족의 침입으로 붕괴됐다.

16세기부터는 오스만인들에게 넘어가 1917년까지 지배를 받았다. 이 기간 내내 내분과 외침이 끊이지 않았다. 1차 대전 중에는 영국이 이라크를 점령했으며, 1932년에야 독립을 이룰 수 있었다. 그러나 2차 대전 중에는 영국에 재점령됐고 뒤이어 미국의 영향권에 들어가게 됐다. 1968년 바트당의 사회주의 혁명 이후 70년대 오일붐으로 잠시 국가가 안정되는 듯 했지만 80년대 내내 이란과 전쟁을 치러야했다. 91년 걸프전쟁 이후로는 계속해서 미국의 위협을 받았고, 결국 21세기에도 미국의 공격을 받고 점령을 걱정해야 하는 처지가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