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이 이라크의 후세인 정권을 예상보다 쉽게 무너뜨리면서 중동 전역에서는 미국에 의한 이라크식 강제 '정권교체(Regime Change)'가 이어지는 것이 아니냐는 불안감이 확산되고 있다. 특히 조지 W 부시 미국대통령과 도널드 럼즈펠드 국방장관 등이 잇따라 시리아, 이란 등을 겨냥해 공격적인 발언들을 쏟아내면서 중동에서는 정권교체 도미노에 대한 우려가 커지고 있다.
부시 대통령은 13일 백악관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시리아는 화학 무기를 보유하고 있다", "시리아는 사담 후세인을 숨겨주고 있다"고 주장했다. 시리아를 상대로 군사행동을 하겠다는 의도를 분명히 밝히지는 않았지만 "기리아는 미국에 협력할 필요가 있다"는 등 강도높은 압박성 발언을 내놨다. 럼즈펠드 장관도 이날 여러 언론을 만나 "시리아가 후세인 정권을 지원했다"는 비난을 되풀이했다. 그는 NBC 방송에 출연해 "후세인을 숨겨줬다면 시리아는 대단히 큰 실수를 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같은 방송에 출연한 이마드 무스타파 유엔 주재 시리아 대리대사는 럼즈펠드 장관의 주장을 전면 부인했으나, 미국 매파들의 대(對) 시리아 강경발언은 계속되고 있다. 토미 프랭크스 미군 중부사령관은 CNN 인터뷰에서 "시리아 출신 용병들이 후세인정권 편에서 미군에 저항하고 있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서방 언론들과 중동국가들은 미국이 이라크 다음 타겟으로 시리아를, 그리고 장기적인 전략적 공격목표로 이란을 찍어놓고 있는 것으로 의심하고 있다. 부시대통령은 이미 전쟁 전부터 중동질서를 미국식으로 고쳐놓겠다는 생각을 공공연히 밝혀왔다. 이른바 '중동 길들이기'의 첫번째 타겟이 이라크였다면, 전쟁이 끝난 지금 다음 목표물은 시리아가 될 것으로 분석가들은 보고 있다.
사회주의 국가로서 이라크, 북한과 친밀한 관계를 유지해온 시리아는 과거 하페즈 알 아사드 전대통령의 30년 통치기간 동안 군사대국을 꿈꾸며 병영국가 체제를 만들어왔다. 지난 2000년 아사드가 죽고 차남인 바샤르 현 대통령이 정권을 물려받은 뒤로 시리아는 대미관계를 개선하기 위해 눈에 띄게 노력을 해왔지만, 미국은 시리아를 북한, 이라크, 리비아와 함께 대표적인 세습독재국가로 꼽으며 적대를 계속하고 있다.
최근 미국 강경파들이 시리아를 겨냥해 쏟아내는 공격성 발언들은 과거 미국이 쿠바나 이라크를 국제사회에서 격리시키려 할 때와 똑같은 전철을 밟고 있다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그러나 냉전시절 '쿠바 왕따시키기'나 걸프전 이후 '후세인 사탄만들기'가 국제사회에 순순히 먹혀들어갔던 것과 달리 시리아를 대상으로 한 압박이 미국 뜻대로 이뤄질 수 있을지는 아직 미지수다.
백악관이 주장하는 시리아의 혐의는 ▲시리아는 후세인 세력을 숨겨주고 있다 ▲시리아는 대량살상무기(WMD)를 갖고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후세인이 죽었는지 살았는지도 알 수 없는 판에 시리아가 그를 숨겨주고 있다는 증거는 아무데도 없다. 후세인 정권에게는 80년대 후반 쿠르드족을 생물학무기로 학살했다는 '원죄'가 있었지만 시리아의 경우 화학무기를 갖고 있다는 의혹은 전혀 입증된 바 없다. 미국이 국제무대에서 무소불위의 권력을 휘두르고 있지만, 바로 그 이유 때문에 중동 국가들의 긴장감과 반발도 그만큼 더 크다. 더우기 시리아는 67년부터 이스라엘에 골란고원을 무력점령당하고 있는 처지다. 미국이 시리아를 공격한다면 중동의 반발은 엄청날 것으로 예상된다.
이란의 경우는 문제가 더 복잡하다. 미국이 중동 재편의 희생양으로 삼기에는 너무 큰 나라다. 따라서 '손볼 상대'라기보다는 오히려 미국의 전략적 타격대상에 해당된다고 보는 편이 옳다. 미국의 싱크탱크들은 이란을 이라크보다 훨씬 다루기 어려운 상대로 꼽고 있다.
이란은 1979년 이슬람혁명 이후 서방과 거의 관계를 끊고 지내왔으며, 중동에서도 아랍권 국가들은 이란을 극도로 경계하고 있다. 그러나 97년 무하마드 하타미 대통령 집권 이후 줄곧 개혁정책을 펼치면서 독자적인 개혁개방 노력을 벌여왔다. 과거 빌 클린턴 전대통령 시절의 미 행정부는 하타미 개혁정권을 지원하려는 의지를 보였지만 부시행정부가 들어선 뒤로 미국의 대(對)이란 정책은 계속 혼선을 빚고 있다. 이란은 북으로는 러시아, 남으로는 인도와 협력을 유지하며 외교축을 형성하고 있다. 미국이 당장 건드리기에는 버거운 상대다. 따라서 미국은 원전 건설 문제와 무자히딘 등 이슬람 테러집단 문제를 계속 걸고넘어지며 압박의 명분을 쌓는데 주력할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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