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권자가 100명도 안 되는 시골 마을에서 주민투표가 실시됐는데 미군기지 설치에 `반대' 몰표가 나온 것. 외딴 시골마을을 미군에 내주고 원조를 받으려던 체코 정부는 당혹스런 처지가 됐다. 이웃한 폴란드에서도 MD 반대 움직임이 일어나는 등 미국의 동유럽 MD 계획이 장애에 부딪치고 있다고 BBC방송, AFP통신 등이 18일 보도했다.
체코 수도 프라하에서 남서쪽으로 70㎞ 가량 떨어진 시골마을 트로카베츠에서는 전날 유권자 90명을 상대로 미군 레이더기지 설치에 대한 찬반 여부를 묻는 주민투표가 실시됐다. 이 투표에는 71명이 참여해 1명을 제외한 70명이 반대표를 던졌다.
체코 정부는 지난달 미국 측과 협상을 벌여 미사일방어용 레이더 기지를 제공하기로 약속했으며 곧바로 트로카베츠에서 2㎞ 떨어진 곳을 후보지로 선정했다. 마을 주민들은 미렉 토폴라넥 총리가 이끄는 우파 정부가 시골마을을 희생시켜 정치적 이익을 얻으려 하고 있다면서 반대 운동을 벌이기 시작했다. 주민들은 "군사적 충돌이라도 벌어지면 우리가 포탄받이가 되는 것 아니냐"며 거세게 반발하고 있다. 얀 네오랄 시장은 "주민투표를 통해 우리의 메시지를 정부에 분명히 전달했다고 본다"며 "주변 다른 마을들도 투표를 실시할 계획인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이번 주민투표는 법적 구속력은 없으나 의회 내 소수파인 토폴라넥 총리 정부에겐 큰 정치적 부담이 될 것으로 보인다. 토폴라넥 총리가 이끄는 우파 시민민주당은 지난해 6월 총선에서 사민당 정부를 몰아내고 승리를 거뒀으나 득표율이 30% 대에 머물러 연립정부 구성에 애를 먹었으며 지난달에야 내각이 공식 출범했다. 정부는 국민투표 대신 의회의 승인만으로 미군 기지 배치를 밀어붙이려 하고 있는데, 트로카베츠 마을의 `반란' 여파로 의회에서도 반대 움직임이 커질 것으로 보인다.
지난달 의회 보고 때 토폴라넥 총리는 "안보 문제는 투표로 결정할 수 없다"며 기지 배치를 강행할 것임을 선언했다. 하지만 야당인 사민당과 공산당은 반대 입장을 분명히 하면서 국민투표를 요구하고 있고, 프라하에서는 수차례 MD 반대 시위가 열렸다. 18일에도 이라크전 4주년을 앞두고 반미, 반전 시위와 함께 트로카베츠 주민들의 호소에 동조하는 집회가 개최됐다. 체코 언론들의 여론조사에서는 국민 60% 이상이 MD 배치에 반대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미국은 현재 유럽에서 영국과 덴마크령 그린란드 두 곳에 미사일 방어기지를 두고 있는데 체코와 폴란드에 추가로 12억∼16억달러를 들여 레이더기지와 미사일 요격기지를 설치하려 하고 있다. 이 때문에 지난달 러시아의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이 미국을 맹비난하고 나서는 등 `신냉전' 논란이 벌어졌었다. 17일에는 프랑크-발터 슈타인마이어 독일 외무장관이 "미국은 동유럽 MD배치에 대해 우방들과 의논할 필요가 있다"며 경고 메시지를 보냈다. 폴란드에서도 우파 야로스와프 카친스키 총리의 MD 배치 계획에 대해 국민적인 반대 여론이 고조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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