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과 아프리카를 잇는 바다밑 길이 열린다.
남유럽 스페인과 북아프리카 모로코 사이 지브롤터 해협에 해저터널을 뚫는 계획이 진행돼 내년 착공될 것으로 보인다. 이 터널이 유럽-북아프리카 간 활발한 경제적 융합과 이주를 불러 `유라프리카'의 탄생으로 이어질지 관심을 끌고 있다. BBC방송은 이 터널이 태초의 지각변동 이래 수억년 만에 유럽과 아프리카를 다시 잇는 대역사가 될 것이라고 보도했다.
모로코 관리들은 14일 스페인과 모로코 양국 정부가 지브롤터 해저터널 건설계획 세부안에 거의 합의를 했으며 이르면 내년에 공사를 시작할 수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 터널은 스페인 남단 타리파와 모로코 북단 탕헤르를 잇는 40㎞ 구간에 만들어진다. 건축비로는 130억 달러(약 11조원) 가량이 소요될 것으로 예상되며, 2025년 쯤 개통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스페인과 모로코 정부는 이 터널이 최근 활성화되고 있는 남유럽과 북아프리카 간 경제적 협력관계를 더욱 강화해 새로운 경제공동체를 만드는데 기여할 수 있을 것이라며 한껏 기대감을 드러내고 있다. 터널이 완공되면 일본 혼슈(本州)와 홋카이도(北海道) 사이 세이칸(靑函) 해저터널(50.7㎞), 영국-프랑스 간 유로터널(50.4㎞)에 이어 세계에서 세번째로 긴 해저터널이 될 전망이다.
터널은 스페인 남단 타리파와 모로코 북단 탕헤르 사이에 3중으로 만들어진다. 승객과 화물, 차량을 동시에 이동시킬 수 있는 철로용 터널을 양쪽에 만들고 그 가운데 소형 터널을 놓아 양쪽 터널 간 통행이 가능하게 만든다는 것. 해저터널 설계는 스위스 알프스의 고타르 터널과 프랑스-이탈리아 간 몽블랑 터널을 만든 스위스의 베테랑 공학기술자 지오바니 롬바르디가 맡게 될 것으로 보인다.
지브롤터 해저터널 이야기가 처음 나온 것은 1980년대로 거슬러 올라가지만 이슬람국가인 모로코와 반이슬람 정서가 강한 스페인의 사이가 좋지 않아 `상상 속 아이디어'에 그쳐왔다. 그러다 2003년부터 건설계획이 구체화되기 시작했고, 이듬해 스페인에 호세 로드리게스 사페테로 총리의 좌파 정부가 들어서면서 논의가 빨라지기 시작했다.
정계 일각에서 무슬림 이주민들이 몰려들 것이라는 반대의 목소리가 있었으나 터널 건설을 경제적 기회로 여기는 분위기가 우세해진 것. 서구문화 유입을 우려해 터널 건설에 반대했던 모로코 이슬람 정치세력의 입김도 약해졌다.
양국 정부의 의지가 굳어진 뒤 가장 큰 문제가 됐던 것은 어느 지점을 뚫느냐 하는 것이었다.
지브롤터 해협의 유럽과 아프리카쪽 최근접 지점은 스페인의 타리파와 모로코의 시레스곶으로, 두 지역 간 해협 폭은 13㎞에 불과하다. 하지만 그리스 신화 속 영웅 이야기를 따서 `헤라클레스의 기둥'이라고도 불리는 이 두 지점 사이 지역은 폭이 좁은 만큼 물살이 빠르며 수심이 900m에 이르는 곳도 있어 후보에서 제외됐다.
터널 위치가 정해진 이후에도 기술적인 난제들은 여전히 남아있다. 설계를 맡게 될 롬바르디는 BBC 인터뷰에서 "유로터널보다 훨씬 힘든 작업이 될 것"으로 내다봤다. 유로터널이 놓여있는 영국-프랑스 사이 도버해협은 수심이 45∼40m 정도로 얕은 반면 타리파-탕헤르 구간에는 수심이 300m가 되는 곳도 있다. 따라서 지브롤터 터널은 깊게는 해저 450m까지 내려가야 한다.
또하나는 지각의 운동. 지브롤터 터널은 유럽판과 아프리카판이라는 서로 다른 지각판들 사이를 잇는 것이기 때문에 지각변동이라는 변수를 감안해야 한다. 모로코 정부 지질조사팀을 이끌고 있는 질랄리 샤피크는 "공사에는 무리가 없을 것으로 보인다"고 밝혔지만 올 연말에 공식 조사보고서가 제출돼야 정확한 진단결과를 알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양국 정부는 대륙간 철도가 놓이면 연간 1000만명 이상의 이용자를 끌어모을 수 있을 것이고 경제적 파급 효과가 대단할 것이라 기대하고 있다. 하지만 130억 달러(약 11조원)에 이를 것으로 추산되는 공사비를 어떻게 충당할지도 문제다. 스페인과 모로코 모두 재정이 탄탄하지 않아 막대한 투자를 유치해야 하며, 공사 기간도 20년 이상 걸릴 것이라는 시각이 많다.
유로터널의 경우 1994년 개통 이래 내내 적자에 허덕여 운영업체인 유로스타가 파산지경에 몰려 있다. 세이칸터널도 일본 정부가 엄청난 보수 비용을 들여가며 간신히 유지하고 있다.
세계적으로 국가·지역 간 경제 통합 움직임이 활발해지면서 해저터널에 대한 관심은 갈수록 높아지고 있다. 한국과 일본 간 한일해저터널 구상을 비롯해 아시아와 북미를 잇는 베링해 해저터널, 인도네시아와 말레이시아 간 순다 해저터널 등이 거론되고 있으나 재정적, 정치적 이유 때문에 논의만 무성한 형편이다.
스페인과 포르투갈 등 남유럽 국가들이 최근 아프리카를 향해 적극적인 구애를 하고 있다.
스페인의 후안 카를로스 국왕은 지난 13일 북아프리카의 알제리를 방문, 양국 간 우호관계를 확인하고 경제협력을 다짐했다고 AP통신 등이 보도했다.
같은 날 포르투갈 리스본에서는 아니발 카바코 실바 총리와 튀니지의 자인 알 벤 알리 대통령 간 정상회담이 열려 역시 경제협력을 강화하기로 합의했다. 앞서 지난 8일 유엔 `세계 여성의 날'을 앞두고서 스페인 마드리드에서는 소피아 왕비가 주최하는 아프리카 여성포럼이 열렸다. 이 자리에는 아프리카 최초의 여성 국가원수인 라이베리아의 엘렌 존슨설리프 대통령과 모잠비크의 루이사 디오고 총리 등 여성정치인들이 대거 참석해 눈길을 끌었다.
스페인이 과거 영국과 프랑스의 세력권이었던 아프리카, 특히 북아프리카 국가들과 가까워지기 위해 애쓰는 것은 물론 경제적인 이유 때문. 북아프리카의 알제리, 리비아는 산유국이고 모로코, 튀니지, 모리타니 등도 정치가 안정되면서 경제발전 도상에 올라 있다.
이들 국가들은 스페인의 새로운 시장이 되고 있는 동시에 노동력을 공급하는 원천이 되고 있다. 스페인 정부는 지난해말 이주노동자들의 유입이 경제성장의 견인차 역할을 하고 있다는 내용의 보고서를 내놓은 바 있다.
이슬람 극단주의자들이 2004년 마드리드 열차테러를 일으킨 뒤 스페인에서 무슬림에 대한 반감이 한때 강해지는 것처럼 보였지만 스페인 정부와 여론은 이미 북아프리카 출신 이주노동력에 경제의 상당부분을 의존하고 있는 현실을 인정하는 쪽으로 가고 있다.
스페인은 유럽국들 중 북아프리카계 노동이민을 받는데 적극적인 입장을 취해왔으며, 이 때문에 이주민들에게 거부반응을 보이는 다른 유럽국들의 반발을 사기도 했었다. 스페인-모로코 간 해저터널이 만들어지면 유럽의 남쪽과 아프리카의 북쪽을 묶는 연결고리는 더욱 강해질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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