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두운 시대를 상징했던 인물이지만 우리는 그를 기억할 것이다."
악명 높은 아파르트헤이트(인종 분리)를 실시했던 남아프리카공화국의 PW 보타 전대통령이 세상을 떠났다. 극심한 탄압을 받았던 넬슨 만델라 전대통령은 보타의 마지막 길에 용서와 애도를 보냈다. 90세 고령이었던 보타의 사망은 큰 뉴스가 아니지만, 일생의 숙적이었던 그를 용서하고 누구보다 먼저 추모한 만델라의 모습은 다시 한번 세계인들에게 감동을 안겼다. (언제나 할아버지 하시는 일에 감동하는 딸기는 당근 또다시 감동받음 ㅠ.ㅠ)
▶ P.W. Botha (left) and Nelson Mandela meet in November 1997 to discuss the Truth and Reconciliation Commission after Botha refused to testify. Botha, who was president at the height of the anti-apartheid struggle, died yesterday.
BBC방송, AFP통신 등은 1일 만델라를 비롯한 남아공 흑인, 백인 지도자들이 보타의 사망에 앞다퉈 애도를 보냈다고 보도했다. 이날 국제앰네스티가 주는 인권상을 받기 위해 요하네스버그에서 열린 시상식에 참석한 만델라는 보타의 미망인 바버라 여사와 유족들에게 조의를 표한 뒤 "많은 이들에게 보타씨는 아파르트헤이트의 상징으로 남겠지만 그가 평화로운 협상의 기반을 닦아준 것도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라며 애도했다. 만델라는 "감옥에 있는 동안에 보타씨와 협상을 하면서 중요한 여러 가지 문제들에서 의견 일치를 볼 수 있었다"며 고인을 치하했다.
1978∼1989년 대통령을 지낸 보타는 흑백 분리를 고수하고 국제사회의 제재 속에서도 만델라 석방을 끝내 거부한 장본인. 심지어 남아공의 `백인 언론'들로부터도 비판을 받았던 인물이다. 다혈질에 싸움꾼으로 유명했던 보타는 `늙은 악어'라는 별명으로 불리기도 했다. 1991년 후임자 프레데리크 데클라크 대통령은 만델라를 석방하고 자유선거를 약속함으로써 흑백 분리를 종식시켰다.
보타는 물러난 뒤에도 남아공의 분열과 어두운 과거를 상징하는 인물로 여겨져왔다. 그의 집권 시절 3만명이 인종차별에 반대하다 투옥됐고, 심지어 흑인 인권을 옹호하는 백인들도 거센 탄압을 받았다. 숱한 사람들이 정보기관에 끌려가 고문당하고 살해된 사실이 드러나기도 했다.
그러나 1994년 집권 뒤 과거사 문제에서 `잊지는 않지만 용서한다(forgive without forgetting)'는 원칙을 내걸었던 만델라는 과감히, 때로는 흑인 피해자들의 반발을 무릅써가며 백인 정권 잔존세력을 끌어안았다. 한때 자신을 테러범으로 몰아붙였던 보타와도 만남을 갖고 화해 의지를 알린 바 있다.
만델라가 세운 `망각 없는 용서'의 원칙은 남아공에 뿌리를 내렸고, 보타의 사망은 그것을 다시금 세계에 확인시켜줬다. 보타 정권 시절 가혹한 탄압을 받았던 타보 음베키 현대통령은 만델라의 뒤를 이어 보타를 애도하며 측근을 유족에 보내 위로하게 했다. 음베키 대통령의 아버지 고반 음베키는 보타 정권 시절 만델라와 함께 로벤섬에 수감됐었고, 음베키 대통령의 아들과 남동생도 보타 정권의 하수인에게 피살된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음베키 대통령은 하지만 "보타는 어려운 시절 대통령을 지낸 사람이며, (말년에는) 서로 포용해야 한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고 말했다.
아파르트헤이트에 반대하며 철저하게 흑인들 편에 서 `보타 정권의 가시'로 불렸던 백인 여성정치인 헬런 수즈먼(만델라 할아버지 자서전에도 수즈먼이 여러번 나오는데 이 사람에 대해선 좀더 자료를 찾아서 정리를 해놓고 싶다)과 줄루족 흑인운동을 주도한 망고수투 부텔레지 인카타자유당(IFP) 당수 등도 나란히 애도사를 건넸다.
보타의 유족들은 국장 대신 가족끼리 장례식을 치르기로 결정했으나, 남아공 관공서들은 오는 8일 장례식 때 조기를 게양하기로 했다고 현지 언론들은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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