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기가 보는 세상/잠보! 아프리카

아프리카의 한국 붐 2

딸기21 2006. 10. 2. 23: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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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이로비에서 인기 끄는 한국 상품들

케냐 수도 나이로비 시내 대형유통체인 나쿠마트 상점. 
인도 자본으로 운영되는 나쿠마트는 케냐 전역에 15개의 점포를 운영하고 있다. 동아프리카 상권을 장악한 인도-파키스탄계 부유층과 흑인 중산층의 소비 중심인 나쿠마트의 가전제품 코너는 한국 제품 일색이다.

시내 중심가의 나쿠마트에서는 삼성 40인치 LCD TV가 25만 실링(약 325만원), 은나노 트윈쿨링 냉장고가 16만5000실링(약 214만원)에 팔린다. 구매력기준 연간 1인당 국내총생산(CDP)이 1100달러에 불과한 케냐에서 예상을 뒤엎고 값비싼 삼성 제품이 순항을 하고 있다. 
독일 보슈, 일본 산요, 네덜란드 필립스 제품은 한켠에 밀려나있는 반면 삼성과 LG 등 한국 제품들이 한가운데 넓은 자리를 차지하면서 현지인들의 마음을 사로잡고 있는 것. 26일 나쿠마트에서 만난 켐(46)은 DVD 플레이어 사러 왔다면서 "한국기업들은 케냐에서도 아주 유명하고 제품 질이 좋은 것으로 정평이 나 있다"고 찬사를 보냈다. 
삼성전자 케냐지점의 김종희씨는 "TV와 냉장고가 한국에서보다 30% 정도 높은 가격에 판매되고 있는데 부유층들에게 잘 팔려나간다"고 전했다. 매장 매니저 제임스(34)는 하루 평균 한국산 TV 10~15대, 냉장고 10대 정도를 판매하고 있다면서 "제품의 품질이 기본이지만 마케팅과 애프터서비스가 훌륭한 것도 큰 장점"이라고 말했다. 나쿠마트 계산대의 모니터도 모두 삼성제품이었다.

아프리카 동부에 위치한 케냐는 소말리아, 에티오피아, 수단 등과 접경하고 있다. 면적 58만㎢, 인구 3300만명으로 아프리카에서는 중간 규모에 해당된다. 
아직 국민소득은 높지 않지만 정치.경제가 비교적 안정돼 있다. 적도에 위치하고 있으나 고원지형인 까닭에 기후가 무덥지 않아 다국적기업들 대부분이 동아프리카 사업 본부를 나이로비에 두고 있다. 나이로비 외곽 조모 케냐타 공항에서 시내로 들어가는 뭄바사 로드에는 삼성 광고판들로 도배돼 있고, 시내 중심가 우후루 하이웨이에는 LG 광고판들이 줄지어있다.

케냐에서 일하는 한국인들은 "아프리카는 물류 장사"라는 말들을 한다. 아프리카로 건너오는 물건들의 1차 기착지는 아랍에미리트(UAE)의 수출항 두바이. 이 곳을 기점으로 누가 어떻게, 얼마나 좋은 조건에 통관을 시켜 시간에 맞춰 물품을 대느냐가 관건이라는 것이다. 
인도양에 면한 케냐 제2의 도시 뭄바사는 동아프리카 최대의 항구로 아프리카의 물류 중심지가 되고 있다. 두바이에서 아프리카로 건너온 상품들이 뭄바사에서 철도를 통해 내륙으로 보내진다. 

뭄바사-나이로비 철도는 한국 기업들에겐 아프리카의 열악한 현실을 그대로 보여주는 고난의 길임과 동시에, 드넓은 시장으로의 문을 열어주는 엘도라도의 길이기도 하다. 자동차로 6∼8시간 걸리는 이 길에서 열차로 컨테이너를 운반하는데 걸리는 시간은 길게는 몇주가 걸린다. 
지난 6월 삼성전자 나이로비지점에서는 LCD TV를 홍보하기 위한 이벤트를 마련했다. 진작에 주문한 상품 컨테이너가 오는데 2주가 걸렸다. 열차 탈선에 중간관리들의 시간끌기, 전력 부족 등의 고질적인 문제들 때문에 컨테이너는 행사 이틀 전에야 간신히 도착했다.

역경 속에 도착한 전시상품 100여대는 열흘만에 다 팔렸다. 아프리카가 힘든 시장인 동시에 성장하는 시장임을 보여주는 사례다. 케냐의 경우 실업률이 20%에 이르고 저소득층이 많지만 경제규모는 연간 5% 넘는 성장률을 보이며 커지고 있다. 
특히 상권을 거의 장악한 인도-파키스탄계 주민들의 재력을 무시할 수 없고, 흑인 주민들 중에서도 중산층이 생겨나면서 구매력 있는 계층이 늘고 있다. 
빈틈이 많은 시장에서는 틈새를 잘 파고든 기업이 이길 수 밖에 없다. 삼성전자는 주력상품인 휴대전화에 스와힐리어 문자메시지 전송 기능을 넣었다. 유선 인프라가 깔려있지 않고 영화관도 많지 않은 이 곳에서 휴대전화는 여러가지 기능을 한다. 
전화요금이 비싼 탓에 이곳 소비자들은 문자로 먼 고향의 친지들과 연락을 하고, 휴대전화에 내장된 라디오를 즐겨 듣는다는 것.

LG전자는 케냐에서 영업중인 가전업체 중에서는 처음으로 자사 제품만 파는 전문점 파나리 센터를 작년 5월 오픈했다. LG는 가전제품 판매점 중 실적이 좋은 곳을 뽑아 집중 지원, 시범케이스로 육성하는 전략을 쓰고 있다. 
최근에는 외부 광고보다 대형매장 안에 쇼룸을 두는 인스토어 마케팅을 펼치는데 집중한다. 브랜드 인지도는 거의 완성됐다는 판단에서다. 또 한국 기술자들을 불러 뭄바사, 키수무, 엘도레트 등 주요 도시에서 무료수리 서비스를 해줘 호평을 받고 있다.


동부아프리카 시장을 잡아라

케냐에서 뿐 아니라 아프리카 전역에서 한국상품 붐은 무섭게 퍼지고 있다.
케냐를 거점으로 한 동부 아프리카는 한국 기업들의 우선 진출 대상. 연간 7∼9%의 경제성장률을 보이는 수단과 에티오피아는 최대 성장지역으로 부상했다. 두 나라 모두 빈부격차와 부패, 지역분쟁 등 문제를 안고 있지만 석유 등 천연자원을 갖고 있고, 경제개발이 빠른 속도로 진행되고 있다.

에티오피아에서 삼성은 TV 냉장고 오디오 등 가전제품 시장점유율 1위를 자랑한다. 수단은 오일달러 덕에 황금시장으로 떠올랐는데 특히 휴대전화 붐이 한국 기업들을 즐겁게 하고 있다. 
수단에서 휴대전화의 사용주기는 고작 6개월, 교환이 많고 신형 고가제품 수요가 커졌다. 수단은 최근 CDMA 서비스를 시작했는데, 삼성전자 나이로비 지점 측에 따르면 "한차례 광고를 했더니 반응이 너무 좋아 본사에 선적을 독촉하고 있는 형편"이라고 한다. 
삼성은 수단과 에티오피아 시장에 이어 남쪽으로 내려가 중부 아프리카 자원부국인 콩고민주공화국(DRC) 시장에 진출할 계획을 갖고 있다.

LG전자 나이로비 지점은 작년 한 해 동안 2억달러의 매출을 올렸다. 매출신장률로만 보면 지난해 LG 해외영업 전체에서 가장 높은 수준이다. 수단에서 휴대폰 `대박'이 터져준 것이 큰 보탬이 됐다. LG는 수단 영업을 확장하기 위해 현지 직원 2명을 더 뽑았다. 
더운 지역에서 에어컨은 언제나 효자 상품이다. LG는 지난해부터 대형건물들을 대상으로 상업용 에어컨 판매에 집중하고 있는데, 최근 수단 수도 카르툼의 세계식량계획(WFP) 건물 에어컨 계약을 따내는 성과를 거뒀다.

아프리카 시장의 가장 큰 특징은 열악한 조건을 밑천으로 전환시켜야 한다는 것이다. 그런 과제 중의 하나가 암시장 대책이다. 
한국산 가전제품의 인기가 많다보니 암시장에서 밀거래되는 물건도 많다. 소형 가전제품과 휴대폰이 주요 밀매대상이 된다. 유럽, 아시아 시장의 재고 물품들이 아랍에미리트(UAE) 수출항 두바이와 동남아에서 `세탁'돼 케냐 뭄바사로 들어온다. 
삼성 측은 폴더형 휴대전화가 암시장에서 1대 200∼300 달러 가격에 팔리는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 이런 물품들은 뭄바사에서 소말리아를 거쳐 동아프리카 전역을 퍼진다. TV와 비디오플레이어의 절반은 밀매품일 것이라는 추정도 있다. 
삼성의 박한배 나이로비지점장은 "계속 신제품을 내보내 밀매품들과 차별화하고 애프터서비스를 강화해 암시장에 대응할 생각"이라고 말했다.


한국의 무역전사들

케냐 수도 나이로비 시내 어퍼힐은 1963년 독립 이전 식민종주국이었던 영국인들의 주택단지였다. 영국인 지주들이 물러난 자리에 지금은 주택들을 밀어내고 대형 건물들이 들어서고 있다. 
멀리 나이로비를 대표하는 빌딩인 케냐타 컨퍼런스홀이 보이는 곳, 빅토리아타워스 빌딩 5층에 삼성전자 나이로비지점 사무실이 입주해있다. 26일 케냐의 경제개발 붐을 한눈에 볼 수 있는 이 곳에서 박한배(38) 지점장을 만났다.

지점 직원 8명 중 현지인 7명, 유일한 파견직원인 박지점장은 삼성전자의 50여개 해외 법인장, 지점장 중 최연소 지점장으로 지난 4월 이곳에 왔다. 
미주, 유럽 등 선진시장과 달리 말 그대로 이머징 마킷(신흥시장)인 아프리카에서 장사를 하려면 보통 각오로는 모자란다. 박지점장은 매주 적어도 한번은 출장을 나간다. 수단, 에티오피아, 탄자니아 등 나이로비지점이 맡고 있는 17개 국가가 모두 그의 사업장이다. 
박지점장은 부임 이래 일주일 내내 나이로비에 있어본 적이 거의 없다면서 "출장이 잦고 통신사정 등 인프라가 열악해서 힘들긴 하지만 뛴 만큼 성과가 나오는 곳이니 그만큼 신나는 곳이기도 하다"고 말했다. 
마침 이 날은 SGH i320 최신형 휴대전화 견본이 들어온 날이었다. 미국과 유럽의 고급시장에 파는 제품인데 아프리카에서도 판매가 가능할지 알아보기 위해 본사에 샘플을 요청했다고 했다. 박지점장은 현지인 직원들을 상대로 새 전화에 대해 설명한 뒤 곧바로 탄자니아 다르에스살람으로 다시 출장을 떠났다.

LG전자 나이로비지사는 시내 번화가에서 조금 벗어난 곳, 덴마크대사관 건물에 함께 입주해있다. 2년 전 나이로비에 온 하만영(36) 차장도 시장 개척에 바쁜 것은 마찬가지다. 
LG전자는 이 지사에 5명의 직원을 두고 있는데, 신흥 산유국으로 부상한 수단 쪽 영업을 확대하기 위해 최근 2명을 새로 뽑았다. 하차장은 한달의 절반을 수단이나 에티오피아에서 보낸다면서 "아내에게 `돈 벌어 올테니 잃어버린 남편으로 생각하라'고 했다"고 말했다. 
아프리카 영업의 가장 큰 어려움은 일할 사람을 구하기가 힘든다는 것. "현지채용을 한다고 광고를 냈더니 300명이 응모를 해왔습니다. 그런데 정작 필요한 고급인력이 없어서 인도에까지 가서 뽑아다가 수단에 배치했어요."

시장조사도 제대로 되지 않고, 통계수치 하나 정확한 것이 없다. 치안문제도 심각하다. 
이곳에서 일하는 한국인들은 항상 강도에 대비, 주머니에 현금을 넣고 다닌다. 빈털털이로 다니다간 자칫 몸을 다칠 수 있기 때문이다. 이태 전에는 나이로비 지점에 근무하던 한 대기업 직원 가족이 브루셀라병에 걸려 서울로 급히 돌아간 적도 있었다. 
하차장은 "경제가 발전하고 있다고는 하지만 네살배기 아들한테 원조물품으로 들어온 셔츠를 사입혀야 하는 것이 여기 상황"이라고 전했다. 아랍에미리트(UAE) 두바이에서 이틀전 돌아온 그는 곧바로 수단 카르툼 출장을 앞두고 있었다. "라마단(이슬람 금식성월) 기간이 겹쳐서 거기 가면 밥도 못 먹게 생겼다"면서도 "그래도 3년전에 비해 작년에는 지사 매출이 5배나 늘었다"고 자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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