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선 딴소리부터. 나는 계속 '일본 천황' '황실' '황태자'라고 써왔다. 일본의 경우, 예를 들면 황실 법규를 정한 '황실전범'이라는 것이 있고, 이걸 고치기 위한 '황실전범 개정을 위한 전문가회의'라는 기구가 있다. 이건 고유명사다. 그런데 천황을 '일왕'으로 바꾸면, 고유명사에서는 '황실'로 표기하고, 나머지 부분에서는 '왕실'로 쓰는 모순이 생긴다.)
어제는 NHK를 틀어놓고 아침을 보냈다. (물론 방송을 알아듣는 것은 아니다;;) 아들 하나 바라며 목매다는 일본(전체 일본 국민들은 아니겠지만)을 보면서 한심스럽기도 하고, '그러니까 니들은 결국 선진국이 아닌거야' 속으로 욕하면서 그 난리를 들여다봤다.
벌써 어제 뉴스가 됐지만-
일본 국왕의 둘째며느리인 기코(紀子.39) 왕자비가 어제 오전 아들을 출산했다. 일왕의 차남 아키시노노미야(秋篠宮.41) 왕자의 부인인 기코는 이날 오전 8시27분 도쿄 미나토구(港區)에 있는 아이쿠(愛育) 병원에서 제왕절개수술로 아들을 낳았다. 이날 태어난 왕손은 아키히토(明仁.73) 국왕에게는 네 번째 손주이고, 왕위계승 서열로는 나루히토(德仁.47) 왕세자와 아키시노 왕자에 이어 3위가 된다.
41년만에 왕자를 맞은 일본 전역은 크게 들떴고, 방송들은 왕자비가 입원한 병원 앞에 중계차를 대놓고 병원과 왕실 풍경을 생중계하며 `왕자 붐'을 고조시켰다. 이미 일본의 주간지들은 아키시노 왕자의 측근들 말을 인용해 "태어날 아기는 왕자가 틀림없다"며 분위기를 띄웠었다.
출산 당일이 되자 요미우리(讀賣), 아사히(朝日) 등 신문들은 기코 왕자비의 건강과 수술 일정을 상세히 보도했으며 NHK 방송 등은 아침 일찍 병원으로 들어가는 아키시노 왕자의 모습 등을 비추면서 시시각각 병원 스케치를 내보냈다. 기코 왕자비는 당초 이달 중순 출산할 예정이었으나 태반 일부가 자궁 앞쪽에 위치한 전치태반(前置胎盤)인데다 노산(老産)이어서 미리 입원해 있었다.
잘 알려진대로, 아키히토 국왕에게는 두 아들이 있지만 손자는 없었다. 나루히토 왕세자는 부인 마사코(雅子.42)와의 사이에 딸 아이코(愛子.5)만을 두고 있고 아키시노 왕자도 딸만 둘이 있었다. 일본 내에서는 왕위 계승 방식을 규정한 황실전범(皇室典範)을 시대에 맞게 개정해 여성도 국왕이 될 수 있도록 해야 한다는 의견이 많았으나 보수파들은 역사 이래 왕가는 단일 혈통으로 이어져왔다는 이른바 `만세일계(萬世一系)' 논리를 주장하며 반대했다.
고이즈미 준이치로(小泉純一郞) 총리는 총리실 산하에 전문가회의를 만들어서 황실전범 개정을 적극 추진했으나 기코 왕자비의 임신 사실이 알려지면서 논의가 중단됐다. 보수파들이 `기다리고 기다리던' 왕자가 태어남으로써 황실전범 개정 논의는 아예 물 건너가게 됐다. 아사히 신문은 아키시노 왕자 집에 주어지는 황족비(皇族費)도 연간 305만엔(약 2500만원) 증액돼 5490만엔으로 늘어날 것이라고 보도했다.
앞서 뉴욕타임스 등 외신들은 21세기에 `아들낳기'를 갈구하며 온 나라가 들썩이는 일본의 구시대적인 모습을 비꼬는 기사들을 내보내기도 했으나, 어쨌든 일본 전역이 왕자 붐에 휩싸인 것은 분명해 보인다. 일본 언론들은 기코 왕자비의 출산이 가까워지면서 신생아용품 제조업체 등 아기 관련 기업들의 주가가 뛰어올랐고, 베이비붐 조짐까지 일었다고 보도했다. 저출산 고민에 시달리는 일본 정부는 왕자 탄생이 경제회복과 맞물려 베이비붐으로도 이어지기를 기대하는 분위기인 듯.
하지만 그렇다 쳐도, 시대가 어느 시대인데... 좀 너무하잖아?
며칠전 회사 식당에 갔더니 늘 있던 영양사 대신 다른 사람으로 바뀌었다. 영양사 양반이 셋째 아이 낳느라 출산휴가 받았단다. 나보다 늦게 결혼했는데 벌써 셋째아이라니...했더니, 아들 낳으라는 시댁 주문 때문에 '계속' 낳고 있다고.
아니 요즘 세상에 그게 뭔소리? 시골 노인네도 아니고, 아들 낳으려고 줄줄이 낳고 있다니. 뭐라뭐라 변명을 한들 그건 너무 한심하다고 본다. 영양사님, 시부모가 아니라 당.신.인.생.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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