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 얘기 저런 얘기

영화 <300>

딸기21 2007. 3. 15. 11: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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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야 뭐, 워낙에 영화라는 것 자체를 그리 즐기지 못하는 사람이라서요. 그것도 헐리웃의 ‘블록버스터’니 하는 것이라면 취향에 맞는 쪽(<터미네이터> 1편과 2편이라든가 <배트맨> 1편, 블록버스터 급에는 못 낄 것 같지만 역시 아놀드가 나오는 <트루 라이즈>)보다는 취향에 맞지 않는 쪽(그 밖의 대부분 영화들)이 압도적 다수를 이루고 있으니. 어떤 작품에 대한 저의 ‘느낌’ 말고 ‘영화의 질’에 대해서 별로 할말이 많지는 않습니다. 지금 이야기하려는 영화는 게다가 보지도 않은 것이고, 아마도 앞으로도 안 보지 않을까 싶은 그런 거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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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때문에 다른 나라 다른 사회의 문화를 배우기도 하지만, 잘못된 편견을 갖게 되는 경우도 또한 얼마나 많은가요. 벌써 여러 영화잡지나 인터넷 언론들에 실린 소식이니깐 자세한 설명은 생략하고요. 고대 페르시아 제국을 서방의 일방적인 시각으로 다룬 영화 때문에 이란 사람들이 크게 반발하고 있다고 하는군요. 지난 9일 미국에서 개봉된 헐리웃 영화 <300> 때문에 이란이 발칵 뒤집어진 모양입니다.

이 영화는 기원전 480년 제3차 페르시아 전쟁을 배경으로 페르시아와 그리스 군 사이 테르모필레 전투를 그리고 있다고 합니다. 자세히 기억은 안 나지만 페르시아의 다리우스1세 때에 마라톤 전투인지 머시기인지 하는 싸움이 한바탕 있었고... 기원전 480년이라면 대략 페르시아엔 크세르크세스, 그리스에는 아테나의 페리클레스 같은 인물들이 주름잡던 때가 아닐까 싶군요.

아무튼 이 영화가 지난주 미국 박스오피스 1위를 차지했다고 하고, 이란에서도 비록 개봉은 안됐지만 불법 DVD로 유통되고 있다고 해요.


너무나 오래전의 역사를 다룬 내용인데 전쟁 장면이 왜 문제가 됐을까요.

우리 어릴 적 마라톤 전투 이런 것 배웠지요. 그리스인들의 용맹함과 42.195km를 달려 승전보를 전했다는 과잉충성병의 한 병사에 대한 예찬과 함께. 지금 문제가 되고 있는 <300>이라는 영화는 그리스 스파르타 정예부대 300명이 페르시아 백만대군에 맞서 싸워 이기는 감동의 드라마를 담고 있는 스펙터클 대하 서사시;;인 모양입니다.

페르시아는 ‘파르시를 쓰는 사람들’이라는 뜻의 그리스어에서 나왔다고 합니다. 이란이라는 말은 ‘아리안’과 같은 어원에서 나온 것인데요, 사실 고대 이란을 ‘페르시아’라고 부르는 것 자체가 그리스인들의 시각을 그대로 받아들인 것인 셈이죠. 어쨌든 페르시아 제국은 아시아 중앙에서 오늘날의 중동을 거쳐 유럽과의 경계선인 이른바 근동 지방까지 광대한 영토를 갖고 있던 대제국이었다고 합니다. 그런 제국의 군대를 300명의 스파르타 군인들이 무찔렀다면 자랑스럽기도 하겠지요.


스틸 사진을 보니까 이 영화에서 페르시아인들은 야만인을 넘어서 <반지의 제왕>의 오르크하이 같은 괴물로 묘사되고 있더군요. 그리스인들은 당연히, 자유와 정의를 수호하기 위해 야만적인 제국에 맞서는 영웅들일 터이고요. 반지의 전사들과 오르크하이들의 싸움이 연상되는데, 정확히 이 장면들이 유사한지는 영화를 보지 않아 모르겠어요. 실은 오르크하이 어쩌구 하는 이름부터 너무나도 ‘안티 동방’ 냄새가 나서 저는 싫어요. 오르크, 하면 우르크나 우르 같은 이름이 떠오르거든요. 우르크와 우르는 모두 오늘날 이라크, 고대의 메소포타미아를 가리키는 이름이랍니다. 반지의 전사들이 올리판트(여기서는 또 인도의 엘레판트라 같은 느낌이 나지요;;)를 타고 싸우다 붕괴하는 것도 그렇고...


여하튼 <300>이라는 영화는 참으로 노골적이군요. 세상의 많은 사람들이, 특히 백인사랑 넘치는 한국 사람들이, ‘똑똑한 유태인-전쟁 나면 도망가는 아랍인’이라며 얼토당토않은 유전자결정론에 여전히 빠져있는 제 주변의 숱한 사람들이 마라톤전투를 기리듯 무감각하게(이라크에서 보이듯 때로는 그 무감각이 범죄가 됩니다!) 영화를 볼 것을 생각하니 기분이 매우 나쁩니다 -_-

더욱이 마침 이란과 미국이 핵 문제로 사이가 많이 나쁜 시점에. 좀 공교롭지 않은가요? 이란 언론들은 "할리우드가 이란에 전쟁을 선포했다"면서 격렬하게 비난을 했다고 해요. 미국사랑주의자들에겐 이것 자체가 ‘야만성의 발로’로 비쳐질수도 있겠군요. 영화의 역사관을 비판하는 온라인 탄원서에 이란 유명 영화감독들을 비롯해 3만5000명이 서명을 해서 제작사인 워너브라더스에 전달했다는 얘기도 나오네요.

잭 스나이더 감독과 제작진들은 "이 영화는 단지 소설(프랭크 밀러의 원작)을 영화로 만든 것이지 역사적 고증에 충실한 영화가 아니"라고 말했답니다. 워너브라더스 역시 “<300>은 오락 영화일 뿐이지 특정 민족과 문화를 깔보려는 의도는 전혀 없다"고 해명했다는데... 그 오락정신으로 유대인 비판 한번 해보지 그러니, 라고 물으면 뭐라 할까요. "억울하면 너네도 성공해 돈벌어라" 할지도 모르겠네요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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