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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친상간',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딸기21 2007. 3. 8. 14: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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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릴적 헤어져 살던 남매가 어른이 되어 만나 사랑에 빠집니다. 그러나 세상은 그들을 용납하지 않고, 법의 장벽에 가로막힌 두 사람은 세상을 향해 외칩니다. "우리를 사랑하게 내버려두라"고. 바닷가에서 페이소스 하나도 안 느껴지는 얼굴로 고함을 쳐대던 어느 잘생긴 배우의 얼굴이 생각나는군요. 

독일 라이프치히에 살고 있는 남매의 `실화'랍니다. 소설에나 나올 법한 `금지된 사랑'이 세상에 알려지자 `근친상간'이라는 오랜 터부를 어떻게 볼 것인가를 놓고 독일 사회가 격렬한 논쟁에 빠졌다고 BBC방송이 7일 보도했습니다. 이미 독일 언론에선 지난해부터 시끌벅적했다고 합니다만.




파트릭 슈튜빙(30·사진 왼쪽)과 수잔 카롤레프스키(22·오른쪽)는 옛 동독지역인 라이프치히 교외의 작은 아파트에서 아이를 키우며 살고 있답니다. 겉으로는 여느 가정과 다를바 없어 보이지만 두 사람은 친남매. 파트릭은 어릴적 부모의 사정 때문에 포츠담의 한 가정에 입양돼 자라났다고 합니다.


23세 되던 2000년 그는 라이프치히에 여행을 왔다가 `유전적 가족'들을 만나고 싶어 친부모를 찾았습니다. 공교롭게도 어렵사리 만난 홀어머니는 상봉 뒤 얼마 지나지 않아 숨졌고, 파트릭은 유일한 혈육인 여동생 수잔과 사랑에 빠졌다는 스토리입니다. 

둘 사이엔 그새 네 아이가 태어났습니다. 지금 수잔이 스물두살인 걸 보면 열여섯에 오빠를 만나 사랑에 빠져 동거를 시작한 것이 되는군요. 미성년자라고 뭐라 하고 싶진 않습니다.


독일 형법은 근친상간을 범죄로 규정하고 있답니다. '근친 상간'이라는 용어 자체가 주는 어감이 있으니까, 어쩌면 '근친결합'이라는 식의 표현을 쓰는 것이 politically correct 할지도 모르겠습니다만.

파트릭은 벌써 한차례 법 위반으로 유죄판결을 받고 2년간 복역을 했습니다. 둘 사이에 태어난 아이들 중 셋은 아동보호 당국이 위탁가정에 맡겨버려 지금은 막내딸 하나만 데리고 살고 있다고 합니다. 


법대로라면 부부로 살고 있는 이들의 행위 자체가 범죄이고, 파트릭은 범법자입니다. 언제라도 다시 감옥에 끌려갈 수밖에 없는 거지요. (왜 파트릭만 범죄자인가... 자세히는 모르겠는데, 아마도 당시 수잔이 어렸다는 것과 관련 있지 않을까 싶어요)

두 사람은 법에 맞서 싸우기로 결심하고 현행 형법의 근친상간 금지조항을 폐기해달라는 소송을 냈습니다. "사랑하는 것도 죄가 됩니까. 19세기에 제정된 시대에 뒤떨어진 법은 고쳐야 합니다." 독일 형법은 1871년에 만들어졌다고 합니다.


여러 미디어에서 전문가들을 끌어들여 이 사건을 다루면서 논쟁은 확산됐습니다. 


남매간 혼인에 반대하는 사람들은 "근친상간에서는 유전적 결함을 가진 아이가 태어나기 쉽다"는 점을 주 논거로 들곤 합니다. 실제로 인류역사에서 근친상간이라는 터부가 생겨난 것이 유전적 결함을 피해가기 위해서였다는 주장이 과학자들에게도 지지를 받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매트 리들리의 ‘붉은 여왕’이었나요, 아무튼 어느 책에선가 본 것인데, 함께 자라난 남매들 간에 성적 호감이 높아지긴 매우 힘들며 이는 민며느리처럼 ‘함께 자란 비 혈육’ 간에도 적용된다고 합니다. 

파트릭과 수잔의 경우 ‘따로 자란 혈육’이니깐 서로 한눈에 반하는 것이 가능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수잔은 2000년 파트릭이 찾아오기 전까지 자기에게 ‘입양아로 보낸 오빠’가 있다는 사실 자체를 몰랐다더군요.


아무튼 논거는 분명합니다. 베를린 자선병원 유전학자 유르겐 쿤체 쿄수는 "기형아나 유전병이 있는 아이가 태어날 확률이 매우 높아진다는 것은 과학적으로 드러난 사실"이라며 "이를 알면서도 근친상간을 허용할수는 없다"고 주장했습니다. 

실제 파트릭 남매의 네 아이 중 첫째는 간질을 앓고 있고 둘째도 특수치료가 필요한 상태라고 합니다. 첫째는 두달 미숙아로 나왔고, 둘째도 발달장애인 것 같아요.


하지만 남매는 "그렇다면 유전질환이 있는 사람, 질병에 걸린 사람, 나이가 많은 사람은 결혼을 하면 안 된다는 것이냐"고 반박하고 있습니다. 여성의 출산 연령이 높아지면 다운증후군 같은 유전질환 확률이 매우 높아집니다. 어떨까요, 병든 사람은 자손을 못 남기게 해야 할까요?


저는 ‘남매간 결혼을 허용해야 한다 아니다’ 어느 쪽이 맞다고 단언은 못하겠는데, 근친상간 금지의 이면에 들어있는 것이 우생학적인 사고와 연결될 위험이 매우 많다는 것은 인정합니다. 또 (흡연금지, 비만금지 이데올로기 속에서도 뼈저리게 느껴지는 것이지만) ‘건강 최우선 이데올로기’가 곧 약자들에 대한 차별로 이어질 수 있다고도 생각합니다. ‘기형아일 것이 뻔한 아이를 낳아야 하느냐’고 한다면, 여기에 대해서도 대답은 엇갈릴 수밖에 없다고 봅니다.


두 사람은 현재 자신들이 낸 소송의 결과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소송에 질 경우는 어쩔수 없이 외국으로 이주를 할 계획이라는군요. 

이들 남매의 변호인인 엔드릭 빌헬름은 "프랑스의 경우 근친상간을 금지하는 법규를 오래전에 폐지했다"며 "독일에서도 구시대적 도덕관에 근거한 법은 사라져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어떻게 될지는 ‘뚜껑을 열어봐야’ 알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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