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14
타지키스탄에서 만난 사람들.
-함로즈. 1990년생.
바르탕 밸리 꼭대기, 3000미터 쿠다라 마을에서 태어나 자랐다. 2016년에야 전기가 들어온 그곳에서, 공부 열심히 해서(“너는 좋은 학생이었지?” 라고 물었더니 부인하지 않고 “선생님 말씀을 잘 들었어” 하면서 멋쩍어했다) 두샨베에서 4년, 모스크바에서 1년을 공부했다고 한다.
연중 관광 시즌 석 달은 렌트한 도요타 랜드크루저를 몰고 한 달에 평균 잡아 두 번씩 파미르 관광객을 안내한다. 나머지 아홉 달은 집에서 논다.
5살 아들 쌍둥이는 아랫마을 사브놉에 있는 아내 친정집에 보내 유치원에 다니게 하고 있고, 3살 딸은 쿠다라에서 키우고 있다.
축구를 좋아하냐고 물었다. 좋아할 기회가 없었다고 했다. 전기도 TV도 없었으니까. 다른 가이드가 폰으로 월컵 중계 보는 걸 기웃거리길래 내 아이패드로 하이라이트라도 보여주려 했는데 기회가 없었다.
섬세하고 똑똑하고. 모든 행동이 조신하다. 뭐라도 우리가 궁금해하거나 관심을 보이면 잊지 않고 체험 기회를 만들어준다. 운전은 신의 솜씨. 카라쿨에서 바르탕 밸리 내려오는 쿠자르 패스는 정말 가파르고 거칠고 좁은 돌길인데 그리로 운전해 다녔으니. 그 길은 함로즈 아니었으면 엄두도 못 냈을 듯.
아코디언과 기타는 수준급이고 피아노도 친다고 한다. 건반 대신 고급스런 버튼이 달린 독일제 아코디언을 매우 아낀다. 연주는 할아버지에게 배웠다(전통가옥 실내 기둥에는 2016년 라흐몬 대통령이 마을을 방문했을 때 악수를 나누는 할아버지 사진이 걸려 있다).
시골서 자랐지만 모기를 매우 싫어한다. 그가 자란 쿠다라를 비롯해 고산지대 산골엔 모기가 없다. 아랫쪽 마을 중에 모기가 있는 곳에 묵을 때 모기 기피제를 빌려줬더니 매우 좋아했다. 헤어지면서 모기 기피제와 버물리를 주고 왔다.



-사이드마마드(줄여서 사이드). 40 안팎.
바르탕밸리에서 쿠다라 아래아래아래아래 바르디치프 마을 출신. 역시나 공부를 잘 해서, 몇 명 뽑지 않는 인도 정부 장학생이 돼 인도에서 공부를 하고 돌아와 두샨베에서 여행사를 열었다. 영어를 잘 하는데, 공부 이야기 할 때에 자부심과 열성이 그대로 느껴졌다. 몇달 전 웹사이트 통해 예약할 때부터 일처리가 정말 맘에 들었다.
함군에 따르면 어릴 때 염소들 몰고 초지에 갔다가 마멋한테 물렸다고 한다(설치류답게 앞니 두 개가 크고 세다고).
-바피. 23살.
파미르 최대 도시(라고 해야 인구 3만명) 호로그에 있는 ‘니카’s 홈스테이‘ 주인 니카의 아들. 영어 잘 하고, 겁나 부지런하고, 붙임성 좋고, 친절하다. 폴란드에서 공부한 적이 있다고 한다.
한국에도 가고 싶은데 한국은 비자를 잘 주지 않는다고 했다. 
내 이름을 모르니 “시스터”라고 부르는데, 넘 웃겼다. 얘야, 나한텐 너보다도 나이 많은 딸이 있단다. 물어보니 니카가 나보다 한 살 아래. 니카가 영어를 할 수 있었다면 얘기를 나눌 수 있었을 텐데 아쉬웠다. 니카와 바피는 정말 고마운 이들이었다.
-압둘라 박사님
훌북 성채에서 설명을 해주신 고고학자 선생님. 1980년대 발굴할 때 참여했었고, 자기 손으로 유골 5구(남4 여1)와 단검을 발굴했다고. 훌북 성채가 유네스코 세계유산이 된 것을 매우 자랑스러워하셨다.
그 뜨거운 햇빛 아래에서, 이분 설명이 감동할 정도로 열성적이어서 학생이 된 기분으로 열심히 따라다녔다. 그랬더니 나에게는 성채 문을 여는, 태은에게는 문을 닫는 영광을 선물해주셨다!
(귀여운 함군은 나중에 박사님이 “쌩큐 베리 메치!” 라고 발음하는 걸 흉내냄)

-사마드. 1978년생.
두샨베의 기념품 가게 ‘간지나’ 사장님. 이쁜 물건이 많았고 장사 수완도 좋아서 우리 둘 다 소비에트 시절 찻잔과 티팟들을 바리바리 사들고 나왔다.
함로즈를 비롯한 파미르 사람들은 시아 일종인 이스마일파인데 사마드는 수니파. 스스로를 “매우 종교적인 사람”이라고 했다.
어릴 때 두샨베에 코리안(고려 사람)이 많았다고 한다. 아마도 4천, 5천은 됐을 거라고. 드라마나 영화에서 보면 한국 사람들은 윗사람들한테 꼼짝 못하는 것 같고 “프랑스인들처럼 생각이 리버럴하지 않은” 것 같다고. 맞아, 우리는 무한 경쟁 속에서 살고 있지. 하지만 라흐몬 통치 34년의 타지키스탄보다는 자유로워…라고 말하지는 않았다. ㅎㅎ
아들은 중국 하이난의 대학에서 컴퓨터 공학을 공부하고 있고, 딸은 아빠 가게 일을 돕고 있다. 이뿐 소녀, 그릇들 잘 싸줘서 고마워요!

-카즈히로 씨. 59세
오사카에서 40년 가까이 살고 있음. 전자회사에서 관리자로 일하고 있고 오늘 10월 공식 정년퇴직. 지금도 사실상 퇴직 상태라 두 달간 중앙아시아를 여행하고 있다.
오사카 사람이지만 카이유칸은 싫어하고, 축구도 싫어하고, 온천도 싫어하고, BTS는 당연히 모르고, 라르캉시엘이나 각트도 모르고, 스마프나 사잔만 아는 정도.
여행을 매우 좋아해서 아프리카 중남미 등등 온갖 곳을 다녔다고. 그런데 배에 인격을 많이 두르고 있어서(본인 설명) 많이 못 걷고 트레킹은 엄두도 못 낸다. 매.일.매.일. 모든 것에 늦고, 하루 100만 장의 사진을 찍는다(함군이 첨에는 100만 장 찍나보다 했는데 나중에는 400만 장까지 추산치가 늘어남).
호로그에서 태은이 아파 하루를 더 머물러야 했는데, 너그럽게 이해해줘서 정말 고마웠다. 카라쿨에서 내가 “디스 레이크 솔티. 노 피쉬. 노 스시. 노 사시미”했더니 “노 돼지갈비. 노 불고기. 노 비빔밥”하고 받는 아저씨. 함군 전화가 울릴 때 내가 장난으로 “모시모시”하면 아저씨가 “여보세요” 한다. 한국 여행도 젊어서부터 많이 했고, 비빔밥이 최애라고.
솔로이고 나이든 부모님이 퇴직하면 같이 살자 하신다는데 이제는 오사카 떠나기가 싫다고 한다. 오사카 놀러가면 연락해야지.
-사일러스. 30살
반려 수레와 함께 여행하는 청년. 잉글랜드에서 태어났지만 호주와 뉴질랜드에서 살았고 잉글랜드를 싫어한다. 아버지와 사이가 안 좋았으나 좀 나아지고 있단다. 형이 좀 아파서 아이같기 때문에, 자매가 함께 여행하는 우리를 부러워했다.
늘 텐트를 치고 자는데 우리를 만난 날은 함로즈에게 끌려서 함로즈 집에 머물기로 했다고. 힘들게 여행하는 사일러스에게 함군은 계란 프라이를 아주 많이(태은 말로는 접시에 산처럼 쌓아서) 줬다고 한다. 참고로 우리는 세 개씩 줬지만 그것도 충분히 호사스러웠다.
3년간 걸었고, 이제 파키스탄 쪽으로 내려가서 인도에서 여행을 마무리할 생각이라고.
매운 걸 좋아해서 뉴질랜드 살 때도 고추장을 큰 통으로 사다놓고 먹었다고. 이 친구도 비빔밥을 매우 좋아한다.
함군과 사이드를 생각하다 보니 오래전 만난 이들이 떠오른다. 한국어를 아주 잘 하고 한국을 미래로 생각하던 우즈벡 대학생 벡조드, 너희 나라는 잘 살지 않느냐던, 영어 사전을 사고 싶어했던 무스탄시리야 대학원생 에삼(이들이 지금은 40대겠구나), 악착같았지만 나를 당혹케 했던 아비장의 그녀, 말도 많고 자신감도 많고 겁도 많고 욕심도 많았던 카이로의 무함마드, 건기에는 쉴 틈 없이 드라이버 겸 가이드로 르완다와 우간다를 오가면서 딸네미는 캄팔라에 보내 공부시키고 있는 고드윈.
나는 이들이 모두 잘 됐으면 좋겠다. 그들이 바라는 더 나은 삶을 누렸으면 좋겠다.
'이런 얘기 저런 얘기 > 여행을 떠나다' 카테고리의 다른 글
| [2026 여름 타지키스탄] 다시 두샨베로. 또 올거야, 파미르! (0) | 2026.09.14 |
|---|---|
| [2026 여름 타지키스탄] 바르탕 밸리 마을들 구경 (0) | 2026.09.14 |
| [2026 여름 타지키스탄] 카라쿨 떠나 바르탕 계곡으로 (0) | 2026.09.14 |
| [2026 여름 타지키스탄] 파미르 하이웨이 최고점, 악바이탈 (0) | 2026.09.14 |
| [2026 여름 타지키스탄] 호수의 날- 불룬쿨 가는 길 (0) | 2026.09.1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