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기가 보는 세상/유럽이라는 곳

월드컵 첫 상대 체코- EU와 주권 사이

딸기21 2026. 6. 11. 17:42

12일 한국이 2026 북중미 월드컵 첫 상대인 체코와 경기를 한다.

한국 관광객도 많이 가는 체코. 네드베드의 나라…오늘만큼은 적수. 

오늘은 체코 정치 동향, 그리고 유로화에 대해.

 

6월 9일 페트르 파벨 대통령이 격한 발언을 했다. 체코 화폐인 코루나가 발전의 걸림돌이 된다면 포기해야 하며, “유로존 의사결정 테이블에 앉는 것이 문밖에서 기다리는 것보다 낫다”고 주장했다. 체코에서는 오래된 이슈다. 유로를 채택해야 한다는 이들의 논거는 교역 관계. 수출의 84%가 EU로 향하는 구조. 코루나 가치는 이미 사실상 ECB 정책에 연동돼 있다. 그런데 체코 기업들은 유로존 국가들은 내지 않는 환전·헤지 비용을 쓰고 있고, 의사결정에도 참여 못함. 그걸 바꾸자는 것.

 

그럼에도 지금껏 채택하지 않은 데에는 이유가 있다. 국민들이 반대한다. 작년 초 조사에서 유로를 채택하자는 주장은 25~30%뿐.

1) 코루나=주권이라는 감정.

대륙 전반에 퍼진 유럽연합 회의론+중동부 유럽의 포퓰리즘, 민족주의 정서가 있다. 정치적 담론도 반유럽, 반유로 쪽. 체코슬로바키아 분리 직전 마지막 체코 총리이자 분리 직후의 첫 체코 총리, 2003년부터 2013년까지 대통령으로 재직한 유력 정치인 바츨라프 클라우스, 대표적인 유로 반대론자.

2) 경제적 경험.

2008년 금융위기 때, 그리고 코로나19 팬데믹으로 유럽이 인플레에 시달릴 때 체코는 화폐가치 낮춰 충격을 흡수하고 유로존보다 빠르게 대응할 수 있었음. 기업계는 유로를 지지하지만 대중의 역풍을 두려워해 소극적이라고.

 

Czech Prime Minister Andrej Babis speaks during a press conference with Slovakia's Prime Minister Robert Fico in Studenka, Czech Republic, March 31, 2026. REUTERS

 

유로로 가자는 대통령 주장에 내각도 반대한다. 안드레이 바비슈 총리는 "유로는 또 다른 주권 상실"이라고 즉각 반박했다.

작년 12월 출범한 바비슈 정부는 정책 강령에 "유로를 채택하지 않는다"고 명시했다. 재무부가 유로 준비 상황을 담은 연례 보고서를 제출해야 하는데 바비슈 총리는 지난달 이것도 중단시킴. 

바비슈가 이끄는 집권 정당 아노(ANO)는 지난해 10월 총선 때 “코루나를 헌법에 명시하고 현금 사용권도 함께 헌법에 보장하겠다”는 공약을 내걸었다.  현금 쓸 권리를 헌법에 명시하자는 것은 유럽 극우·포퓰리스트 정당들의 공통된 상징적 의제. 경제적, 실용적 편익보다는 이념적인 이유. 유로를 국가 감시·통제의 도구로 봄. "디지털 전체주의"에 대한 음모론적 시각도.

 

결국은 반EU 정서에 호소하기 위한 것. 아이러니하게도 현금 사용권은 이미 체코 법률에 보장되어 있음. 또 체코는 스마트폰 결제가 일반화된 상황. 그런데 헌법 개정? 현재 의석수로는 불가능, 정치적 제스처로 보임.

 

그러니까 총리는 유로 반대, 대통령은 찬성한다는 건데. 총리와 대통령 중 누가 더 큰 권한을 갖고 있을까.

국가원수는 대통령. 정부를 이끄는 행정수반은 총리. 내각을 구성하고 국정 방향과 정책을 결정. 하지만 대통령도 어느 정도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다. 대통령은 직선제로 선출되며 임기 5년, 2회 연임 가능. 총리 임명권을 갖는데, 통상 총선 1위 정당 대표에게 정부 구성을 위임한다. 다만 누구를 지명하느냐에서 재량을 발휘할 수 있다. 장관 임명을 사실상 거부하거나 법안을 의회로 돌려보낼 수 있는 거부권도 있다. 대통령이 총리를 막을 수는 없지만, 공개 발언과 인사권으로 상당한 압력을 가할 수 있다는 점이 체코 정치 구조의 특징이다.

그래서 대통령과 총리의 생각이 다르면 긴장이 발생한다. 현재 파벨 대통령과 바비슈 총리가 바로 그런 사례. 유로화, 국방비, 우크라이나 지원, 장관 인사 등 여러 사안에서 공개적으로 충돌하고 있다. 

 

사실 유럽연합에 가입했고 일정 기준을 충족시킨 나라들은 즉시 유로를 단일 통화로 채택할 의무가 있다. 

유로 채택 의무는 1992년 마스트리흐트 조약에 명시됨. 가입 기준은 EU 안정성장협약에 적힌 부채·재정적자 비율, 인플레이션과 장기 국채 금리를 일정 기준치 이하로 유지하는 것, 유럽환율메커니즘(ERM II)에 참여해 환율을 안정화하는 것, 유럽중앙은행 등의 규약에 맞춰 자국 법을 정비하는 것 등.

 

1999년 1월 1일 유로존(유로 사용국 모임) 설립 때 프랑스 독일 이탈리아 등 11개국 참여. 2001년 그리스가 추가됨. 그러나 당시엔 화폐발행권을 유럽중앙은행으로 넘긴 것이었고 실제 유로 지폐와 동전이 유통돼 각국 화폐를 대체한 것은 2002년. 그후 2007년 슬로베니아를 시작으로 동유럽 국가들 줄줄이 유로 채택. 가장 최근에 유로존에 동참한 것은 불가리아. 올 1월1일부터.

 

(체코가 유로존 가입을 꺼리는 반면, 같은 나라에서 갈라진 슬로바키아는 2009년 유로 채택. 그 결과는 복합적. 유로존 들어간 뒤 재정정책에서 정부 책임성이 줄어들었다는 지적. 재정 관리를 느슨하게 해서 재정적자와 국가부채 늘어나고 있다는 비판. 유로존에서 돈을 빌릴 수 있으니까 모럴 해저드가 생겼다는 얘기. 인플레도 체코보다 심하고. 반면 유럽 시장에서 통화 관련 비용 줄이고, 경제 혼란기에 지원을 받아 리스크를 줄일 수 있고. 2024년 유로바로미터 조사, 슬로바키아인의 82%는 유로에 긍정적이었다고.)

 

EU 회원국이면서 유로존에 가입하지 않은 나라들은 2년마다 기준을 충족했는지 평가받음.

EU 27개 회원국 중 유로 쓰지 않는 나라는 6개국.

1) 체코.

2) 폴란드: 체코와 상황 비슷. 우파 포퓰리스트들이 반유로 정서를 부추겨왔음. 우파 정부 이끌었던 법과정의당 야로스와프 카친스키는 “유로 도입을 추진하는 자는 폴란드의 불구대천의 적(mortal enemy)"이라고까지 했음. 최근 정치 분위기는 바뀌었지만 유로 지지율은 절반이 안 됨. 

3) 헝가리: 국민 70% 이상 유로 찬성. 하지만 빅토르 오르반이 이끌던 우파 정부가 절차를 안 밟음. 새로 출범한 페테르 마자르 정부는 유로 채택을 궤도에 올려놓겠다고 했음. 문제는 나라빚. 가입 안한 나라들 중 경제 규모 대비 국가 부채 비율이 가장 높음. 코로나19 팬데믹 이후 재정적자 줄여왔는데, 지난번 선거 앞두고 오르반이 대규모 지출.  그리고 반유럽 민족주의 성향 오르반 정부, 자기네 화폐 포린트(forint)를 국가 통화로 헌법에 명시. 헌법 다시 고치려면 의회 절대 다수의 찬성이 필요한 상황.

4) 루마니아: 유로를 채택할 의지 자체는 있으나 기준을 충족하지 못함. 

5) 스웨덴: 환율 통화 정책의 자율성을 중시. 극우 스웨덴민주당 등 의회 내 우파 정당들 유로 반대, 당분간 공론화되기 어려울 것.

6) 덴마크: 기준은 다 충족. 하지만 1992년 유럽연합 가입 국민투표가 부결되자 당시 정부가 재투표에 부치면서 유권자들 설득하기 위해, 유럽연합으로부터 유로 채택 의무를 면제받는 옵트아웃(opt-out)을 보장받음. 그래서 유로 채택 의무 자체가 없습니다. (영국도 유럽연합 탈퇴 이전 덴마크처럼 예외를 보장받은 나라였고.) 다만 덴마크 크로네는 유로에 환율이 사실상 고정되어 있음.

 

다시 체코 정치로 돌아가서. 현 총리 안드레이 바비슈는 슬로바키아에서 태어났고 1990년대 초 체코로 이주. 당시엔 한 나라였으니까.

비료·화학·농업기업 아그로페르트를 창업해 체코 최대 부호 중 한 명이 됨. 2012년 ANO(불만을 가진 시민들의 행동)를 창당, 정치 뛰어들어 승승장구. 2014~2017년 재무장관·부총리, 2017~2021년 총리. 작년 12월 세 번째로 총리 취임.

 

작년 10월 총선에서 ANO는 34.5%로 1위를 차지했지만 200석 하원에서 단독 과반을 못 얻음. 그래서 극우 자유직접민주당(SPD, 7.7%)·자동차 운전자당(AUTO, 6.7%)과 연립해 간신히 108석을 확보, 정부 구성.

(자동차 운전자당은 자전거 도로·전기차·유럽·유로에 반대하며 "자동차, 석탄, 코루나"를 구호로 내건 정당. 2020년 창당된 우익 정당. 체코판 마가(MAGA)라고도 불림. 그린딜 반대, 성소수자 혐오, 인종차별적 구호, 신나치주의 비슷… 그런데 작년 총선에서 6석이나 얻음 ㅠㅠ)

 

바비슈도 유로에 반대하는 것뿐 아니라 그린딜에 대해 집권 2기 때 “유럽의 녹색 자살”이라며 반대. 러시아의 시민사회 억압을 보고 배운 듯 ‘외국 NGO 규제 법안’ 추진 중+공영방송 소유구조 개편해 정치적 장악하려고 시도해 비판 받고 있음.

 

그럼에도 바비슈 총리가 유럽연합 탈퇴와는 거리두는 이유가, 자기 재산이 서유럽에 있기 때문이라는 얘기도. 그가 이끈 아그로페르트는 EU 농업 보조금 막대한 수혜를 받고 있음. 심지어 기업 명의로 돼 있던 농장을 바비슈 가족 명의로 바꿔 EU 중소기업 대상 보조금 200만 유로까지 받았다가 법원에서 유죄 판결. 그런데 의회 불체포특권 빌미로 재판 연기하고 있음. 집권 얼마 안 돼서 올 3월 대규모 반대시위도.

 

이렇게 EU 혜택은 받으면서도 우크라이나 정책에서는 유럽연합과 따로 가는 체코.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뒤 체코는 우크라이나로 보내는 수출이 늘었고 무역흑자도 증가. 체코에 사는 우크라이나인만 50만명. 바비슈는 푸틴을 "침략자"라 부르면서도, 우크라이나 지원 문제에서는 ‘평화주의자’를 자처. 유럽국들이 탄약을 구매해 우크라이나에 지원하는 ‘탄약 이니셔티브’에서 후퇴했고, 우크라이나와의 양자 협력 예산도 절반으로 깎음. 아이러니하게도 우크라이나 재건에 참여하는 체코 기업과 체코개발은행에 대한 자금 지원이나 병원 건설 프로젝트는 그대로 둠. 바비슈 정부의 이런 행태도 실리주의 실용외교로 봐야할지.

 

참고문헌

https://www.euractiv.com/news/czech-president-reignites-euro-debate/

https://www.expats.cz/czech-news/article/czechia-ends-euro-consideration-as-government-buries-adoption-debate-for-good

https://europeanbusinessmagazine.com/czech-euro-koruna-pavel-babis/

https://www.dw.com/en/czechia-government-andrej-babis-czech-crown-cash-bank-notes-currency-euro/a-75403939

https://en.wikipedia.org/wiki/Enlargement_of_the_eurozone

https://www.reuters.com/business/after-bulgaria-euro-expansion-faces-hurdles-remaining-eu-states-2026-01-01/

https://visegradinsight.eu/what-czech-election-results-mean-for-eu/

https://www.renewablematter.eu/en/babis-victory-czech-republic-defeat-europe

https://apnews.com/article/czech-anti-government-protest-babis-cd7ca6ff35aa4548118a1e6d981dbd20

https://apnews.com/article/czech-babis-fraud-parliamentary-immunity-eu-vote-273de849f04fae199cada17f6074f2f9

https://www.gmfus.org/news/czechias-risky-ukraine-turn

https://www.pravda.com.ua/eng/news/2026/06/09/8038547/

https://www.reuters.com/world/europe/czech-republic-likely-miss-nato-defence-spending-target-pm-tells-ft-2026-05-3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