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대세계체제 II. THE MODERN WORLD-SYSTEM II (제2판).
이매뉴얼 월러스틴. 유재건 외 옮김. 까치. 2/7

근대 초의 장기적 흐름은 되풀이된다. 물론 체제의 일정한 발전과정-공간적 확장과 새로운 지대들의 세계경제로의 편입, 반복되는 탈독점화와 새로운 독점의 발판이 될 새로운 기술의 추구, 도시화와 프롤레타리아화 그리고 정치적 흡수의 꾸준한 과정-이 존재한다. 그 과정은 모양을 바꾼 것 같지만, 세계체제의 공간적으로 비대칭적이고 불평등한 기본 구조는 사실상 바뀌지 않는다.
결정적으로 중요한 논쟁은 장기의 16세기 초에 유럽 내에서(그리고 그 후에 지리적으로 확장 하는 자본주의 세계경제 내에서) 비교적 작았던 차이들이 20세기 무렵에는 어느 정도로 그 간격이 훨씬 더 벌어졌는지에 대한 것이다.
-XV
세계체제 분석에서 핵심적인 개념 중 하나는 지금까지 두 가지 종류의 세계체제가 세상에 알려져 있다는 것이다. 그것은 세계경제와 세계제국이다.
세계제국은 단일한 총체적 정치 구조와 단일한 총체적 분업을 가진 체계로 정의된다. 한대의 중국과 로마 제국이 세계제국의 두 가지 좋은 예이다.
헤게모니 개념은 세계경제의 국가간체제 내에서 한 국가가 가질 수 있는 속성을 가리킨다. 헤게모니 세력은 세계제국과 전혀 다르다. 세계경제의 정치적 상부 구조는 관료제에 입각한 하나의 제국이 아니라, 주권을 가진 것으로 간주되는 국가들로 구성된 국가간체제이다.
헤게모니 세력이 존재한다는 것은 한 국가가 국가간 체제에 일련의 규칙을 부과할 수 있고, 그럼으로써 자신이 옳다고 생각하는 바대로 세계의 정치 질서를 창출할 수 있다는 뜻이다.
나는 헤게모니를 구조가 아니라 시간에 따라서 일어나는 과정으로 생각하는 것이 유익하다고 본다. 헤게모니는 네 시기들을 가지는 과정인 것 같다. 경쟁 상대가 없을 만큼 강한 단 하나의 헤게모니 세력이 있는 경우로 이야기를 하자면, 첫 번째 시기는 그 직후 시대에 일어난다. 그것은 헤게모니 세력이 완만하게 하락하는 시기로, 그 시기 동안 헤게모니를 계승하려고 다투는 두 세력이 등장한다. 그 이후 시기는 하락이 명확해지는 때이다. 이 번째 시기가 세계체제 내에 "세력 균형"이 존재하는 시기라고 생각할 수 있다. 이 시기 동안 헤게모니를 계승하려는 두 경쟁세력이 지정학적이고 세 계경제적인 이점을 확보하기 위해서 투쟁을 벌인다. 세번째 시기는 투쟁이 너무나 첨예해져서 질서가 무너지고 헤게모니 경쟁세력들 사이에 일종의 "30년전쟁"이 벌어지는 때이다. 그리고 네 번째 시기는 경쟁세력 중 한쪽이 최종적으로 승리하고 그래서 진정한 헤게모니를 확립할 수 있는 때이다.
근대세계체제의 역사에는 세 개의 헤게모니 세력이 있었다. 연합 주(the United Provinces)가 17세기 중반에 1648년부터 1660년대까지 잠시 헤게모니 세력이었다. 영국은 19세기에 1815년부터 1848년까지 조금 더 긴 시간 동안 헤게모니 세력이었다. 미국은 1945년부터 1967/1973년까지 헤게모니 세력이었다.
헤게모니 세력은 세계의 지정학적 힘의 준독점 상태(quasi monopoly)를 영원히 유지할 수 없기 때문에 쇠퇴한다.
-xvi-xvii
헤게모니는 반드시 쇠퇴한다.
역사의 흐름을 이해하는 한 가지 중요한 방법.
“17세기의 위기는 있었는가"라는 물음은 … 봉건제에서 자본주의로의 이행"이라는 세계사적 과정이 언제 어떻게 일어났는가라는 물음을 뜻하게 된다. 그 답변을 위해서는 자본주의를 하나의 사회체제로, 하나의 생산양식으로 정의할 뿐 아니라 하나의 문명으로 정의하는 것이 필요하다. 시기를 택하면서 우리는 유사성과 차이의 정도도 택하게 되는 것이다.
이 책의 주장은 다음과 같다. 근대 세계체제는 자본주의 세계경제라는 형태를 띠며 이 세계경제는 장기 16세기 유럽에 그 기원을 둔 것으로 여기에는 봉건 유럽의 특정한 재분배적 혹은 공납적 생산양식(브로델이 말하는 "경제적 앙시앵 레짐")으로부터 질적으로 다른 사회체제로의 전환이 있었다는 것이다. 이때부터 자본주의 세계경제는 (1) 지리적으로 지구 전체를 뒤덮게 팽창하며 (2) 팽창과 수축의 주기적 유형(시미앙이 말하는 A국면과 B국면)을 나타내고, 경제적 역할을 맡는 지역이 지리적으로 이동한다는 것(헤게모니의 확립과 붕괴, 핵심부 /주변부/반주변부 지역들의 부침운동) 그리고 (3)기술의 진보, 공업화, 프롤레타리아트화, 체제에 대한 정치적 저항의 구조화 등 지금 도진행 중인 장기적인 이행과정을 겪게 된다는 것이다.
-20-21
먼저 네덜란드의 시대.
이 지배계층은 밑으로부터도 정말로 위협받지는 않았다. 그 구성원들은 사회적 평화의 가격을 지불했던 것이다.
한 가지 주된 요인은 일부 사람들에 국한되기는 했지만 줄어든 실질소득을 사회복지 급여가 메워주었다는 것이다. 사회복지 급여가 핵심부 국가의 다른 어떤 곳보다도 높았던 것이다.
한마디로 권력과 번영, 한줌의 적선 그리고 아주 약간의 사회적 유동성 -바로 이것이 헤게모니 국가의 전형적인 사회정책이다-만 있으면 족했던 것이다.
-101
홀란트에서는 응용과학이 초미의 관심사였다. 그전의 몇 세기에 걸쳐 이루어진 기술진보는 바로 이 시대 네덜란드가 농-공업 부문에서 높은 생산효율을 유지하는 데에 핵심 요인의 하나였다. 17세기 네덜란드는 이 기술을 열심히 수출했다. 이 기술이전이 자금의 국내유입의 한 원천이 되었다. 그것은 문화적 충격의 표지이기도 했다. 유럽 세계의 전역에 걸쳐, 예컨대 영국, 프랑스, 이탈리아, 덴마크, 프로이센, 폴란드 등지에 제방과 배수로 공사에 종사하는 네덜란드인 이민자촌(Hollandries)이 들어섰다.
스코틀랜드와의 "특별한 연줄" 또한 놀랄 일이 못 된다. 상업적 유대는 종교적 친화성으로 두터워졌으며 그 결과 스코틀랜드인들은 몇 세대 동안 네덜란드에 건너가 대학교육을 받았다. 이것은 18세기 말 스코틀랜드의 계몽주의를 설명해주는 또 하나의 연결고리인데 스코틀랜드의 계몽주의는 영국 공업의 급격한 도약에서 결정적 요인의 하나였다.
-104-105
문화적 관용에는 한계, 특히 내부적 한계가 있었다. 파멸의 씨를 뿌리는 것은 허용될 수 없었던 것이다. 지배계층 내에서 근본적인 분열을 야기하는 것도 허용될 수 없었다. 데카르트와 로크는 환영을 받았지만 그로티우스는 평생 감옥에 있었다. 국내 망명자였던 스피노자는 살아서 글 쓰는 것만은 허락받았지만 주요 저작들은 출판금지였다.
-110
자본주의 세계경제 내의 계급투쟁들은 복잡해서 다양한 겉모습을 띠고 비틀어져 나타난다. 한 헤게모 니 국가가 지배적 위치에 서기까지의 시대는 국가 내부가 주목받는 시대라고 할 수 있다. 시장에서 계급적 이익을 추구하는 사람들이 이전 시대로부터 내려오는 국내의 정치적 제약을 쓸어버리려고 하기 때문이다. 이와 달리 헤게모니가 쇠퇴하는 시대는 국가간 형태에 주목하게 되는데 이는 시장에서 계급적 이익을 추구하는 사람들이 이전 시대로부터 내려오는 국가간 정치적 제약을 쓸어버리려고 하기 때문이다.
17세기 중엽 영국과 프랑스가 네덜란드의 우위를 힘으로 밀어내고 그 자리를 차지하는 데에 관심을 두고 있었다는 것은 분명하다. 하지만 상황이 명확해지는 데에는 100년 넘는 기간이 걸렸다. 1763년까지 프랑스(그리고 네덜란드)에 대해서 영국이 약간 강하다는 것이 뚜렷해지고 영국은 다음번 헤게모니 국가를 목표로 뛰어갈 수 있었다. 반주변부의 경쟁에서는 프로이센이 선두에 섰음이 명백해졌고 이는 중부 유럽 정치의 장래의 과정을 결정했다.
수축과 주변부의 재편이 마무리되었고 이제 세계경제는 더 한층 진전된 지리적 경제적 팽창을 향해서 내딛을 준비가 된 것이다.
-112
책은 네덜란드 헤게모니 이후를 다루면서 핵심부에서의 첫 번째 국면, 그 다음 주변부들, 그리고 반주변부들을 분석한 다음에 마지막으로 핵심부에서의 두 번째 국면을 설명한다. A국면(팽창)-B국면(수축)을 기본 구조로 근대를 설명하면서, B에 해당된다고 흔히 알려져 있던 17세기가 그 이후(이 책 다음 권에서 설명될 시기)의 세계 자본주의 쳊에 어떻게 영향을 주었는지를 보는 게 핵심이다.
따라서 II권은 네덜란드 이후 핵심부에서는 ‘왜’ 영국이 프랑스보다 우세할 수 있었는지, 왜 주변부(동유럽)는 주변부로 밀려났는지, 왜 반주변부에서는 스웨덴이 아니라 프로이센이 앞섰는지를 설명하는 내용이 중심을 이룬다.
네덜란드는 생산-산업-금융 모두에서 앞서나갔다. 거기 종속된 처지였던 영국은 국가를 강화하는 과정과 아일랜드와 스코틀랜드를 내부 식민지화하는(물론 둘의 처지는 많이 달랐지만) 과정을 결합시키면서 발전했고, 지리적 조건과 정치적 조건 덕분에 프랑스보다 ‘조금’ 앞서나갔다. 프랑스와 영국의 중상주의, 제조업, 재정 등은 거의 비슷한 수준이었지만(“영국의 생산조직과 프랑스의 생산조직 사이에 있는 유사성”-439쪽) ‘작은 차이‘가 헤게모니의 미래를 바꿨다고 저자는 말한다.
반주변부에서도 처음엔 광업이 앞섰던 스웨덴이 강세였고 오스트리아도 유리한 위치에 있었지만 대영주가 없고 융커의 정치적 권력이 약했던 프로이센이(그리고 영국령 북아메리카가) 치고나가기 시작했다고 설명한다.
비용에서 경쟁력을 갖추어야 하는 압력은 노동자에게 노동 규율을 지키도록 압박했다. 퍼니스는 영국에서 이런 노동규율 관념이 대두하게 된 것을 "고용권"의 상관물로 알려진 "노동의 의무"에 관한 관념의 맥락에서 설명한다. 톰슨은 17세기에 시계장치의 이미지가 확대되고 "마침내 뉴턴과 함께 그것이.••••전 우주를 사로잡게 되었다"고 한다.
-143
18세기 말 이전에는 목탄이 제련에서 결정적인 에너지원이었다. 스웨덴에는 양질의 광석과 다량의 목탄이 모두 다 있었다. 영국과 프랑스 역시 대규모 제련시설 을 갖추고 있었으나, 기본적으로 "연료의 부족이 더 적었기" 때문에 아마도 프랑스의 것이 더 큰 규모였을 것이다. 그 결과 영국은 스웨덴산 철의 주요 수입국이 된 반면 프랑스는 "이 금속을 수입하지도 수출하지도 않았다." 즉 프랑스는 발트 해 무역이 필요하지 않았다.
강조해두고 싶은 점은 영국과 프랑스 양국의 규모와 자원의 상대적인 차이가 양국의 대외무역 양상에 미친 영향이다. 제조업은 양국에서 확대되고 있었고 철은 더욱더 많이 필요했다. 철이 많이 필요해지면서 그만큼 연료도 많이 필요했다. 영국이 프랑스보다 일찍 석탄을 연료로 사용하고 철의 수입에 의존하지 않을 수 없게 된 것은 공업화 수준의 차이라기보다는 생태학적 차이 때문이었다.
-155
스웨덴은 광업이 바탕이었던 반면 덴마크는 농업이 바탕이었기에 스웨덴이 강국이 될 수 있었다는 분석. 하지만 영국, 프랑스가 스웨덴이 강해지는 걸 막았기에 더 크지 못한 채 내려앉았고, ’딱 한 지역만 강해질 수 있을 정도의’ 공감에서 그 한 지역의 위상을 꿰찬 것은 프로이센이었다고.
국가의 강력함을 가늠할 독립적인 정치적 척도로는 다섯 가지를 들 수 있다. 소유자-생산자가 세계시장에서 경쟁하는 데에 국가의 정책이 어느 정도 직접적으로 도움을 줄 수 있는가(중상주의), 국가가 다른 여러 국가의 경쟁 능력에 어느 정도 영향을 줄 수 있는가(군사력), 국가가 이윤을 축내지 않는 선에서 이러한 경쟁 및 군사적 목적을 이루기 위하여 자국의 재원을 어느 정도로 동원할 수 있는가(재정), 국가가 전략적인 결정을 신속히 수행할 수 있게 할 행정조직들을 어느 정도로 만들어낼 수 있는가(효율적인 관료제), 그리고 정치적인 지배가 소유자-생산자 사이의 이해의 균형을 어디까지 반영하고 어디까지 현행의 "헤게모니 블록"(그람시의 표현을 빌리자면)이 그러한 국가의 확고한 토대를 이루고 있는가. 이 마지막 요소인 계급투쟁의 정치학은 나머지 요소의 열쇠가 된다.
휘그적 역사 해석에 의하면 근대 시기는 약한 국가를 추구하는 긴 역사적 과정이었고, 이러한 추구는 인간 자유의 진보와 동의어로 여겨졌다. 이러한 시각은 시대착오라고 말할 정도는 아닐지라도 거의 그것에 가깝다. 오히려 근대 국가사란 세계경제 안에서 노동자는 물론이고 다른 소유자-생산자 집단에 맞서서 일군의 소유자-생산자의 이익을 넉넉히 지켜낼 수 있을 만큼 강한 구조들을 만들기 위한 장기적인 모색으로 볼 수 있다.
-174
생산이 정체된다. 그리고 나서 소득이 정치적으로 재분배된다. 이것이 하강기의 일반적인 사회적 단면이지만… 생산은 다른 곳보다 구 주변부들에서 더 정체를 보인다. 그리고 소득에 대한 정치적인 재분배는 주변부 지역보다 핵심부와 반주변부 지역에서 (혹은 적어도 그 일부 지역에서) 더 많이 일어난다.
생산비의 절감은 주변부 지역에서 흔히 그렇듯이 자연자원이나 인적 자원의 착취를 강화함으로써 달성되는 경우 미래의 생산 잠재력을 쇠진시키게 된다.
-197
자본주의 세계경제에서 한 가지 불변의 요소는 위계적인 (그리고 공간적으로 배치되는) 분업이다. 그렇지만 경제활동의 위치 이동과 그 결과로 일어나 는 세계체제 내의 특정한 지리적 지역의 위치 이동도 또 하나의 불변요소를 이룬다. 이런 움직임은 국가간 체제의 틀 내에서 다른 국가들과 비교하여 측정된다. 20세기에는 국가의 "발전" 식으로 이야기하지만 17세기에는 왕국의 "부"에 대해서 이야기했다.
지위의 변경은 특히 전반적인 침체기나 불황기에 일어난다. 그리고 위계적 연속체의 중간에 있는 반주변부에서 그런 움직임은 주로 국가활동에 의해서 초래되며 영향을 받는다. 반주변부 국가들은 보통 내려가고 올라가는 국가들이다.
국가의 의식적인 정책들은 실제로 일어나고 있는 것과 상당히 관련이 있다. 그러나 두 개의 단서를 덧붙여야 한다. 첫째, 국가정책들은 주된 행위주체가 아니라 개입하는 과정이다. 둘째로, 모든 국가기구가 똑같이 좋은 결과를 얻기를 기대하면서 주어진 일련의 정책들을 이용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많은 국가기구들이 세계 분업체계 내에서 자국의 지위를 상당히 변화시키고자 애를 쓰지만, 몇 안 되는 국가기구들만이 성공할 뿐이다. 그 까닭은 한쪽의 성공 바로 그것이 다른 쪽의 기회와 대안들을 제거해버리기 때문이다.
-267
결론적으로
16세기에 국가구조를 창출하면서 겪은 어려움으로 프랑스는 갈기갈기 찢어지고, 그 상처가 짓물러 결국 18세기 프랑스의 불완전한 통합으로 귀결되었다. 16세기의 영국은 꽉 짜인 소형 국가였다. 내전의 소용돌이 속에서 통합된 지배계급을 재창출해야 했던 영국은 켈트계 외곽을 흡수하여 통합할 수 있었다. 그리고 영국은 18세기의 안정된 월폴 일당국가의 등장을 뒷받침하기에 충분한 네덜란드 자금을 끌어올 수 있었다.
비록 이전 세계의 이데올로기적 외관이 여전히 유럽 세계경제 전체를 지배하고 있었지만, 여러 집단들이 자본주의 체제 속에서 자신의 이익을 추구하고 자기 이해관계를 지키면서 주로 그리고 궁극적으로 부르주아와 프롤레타리아의 방식으로 행동하는 경향은 점점 더 커졌다. 이것이야말로 우리 의 주장에서 핵심적인 부분이다. 아직은 부르주아 문화도 프롤레타리아 문화도 등장하지 않았지만, 부르주아적 실천과 프롤레타리아적 실천은 이미 사회 적 행동을 기본적으로 구속하고 있었다.
-439
잼났다. 이제 좀 쉬었다가 다음 권으로 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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