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대세계체제 I. - 자본주의적 농업과 16세기 유럽 세계경제의 기원 THE MODERN WORLD-SYSTEM I (제2판).
이매뉴얼 월러스틴. 나종일 외 옮김. 까치. 1/12

브로델을 읽었으니 이제 월러스틴으로 이동.
(2판 저자 서문)
나는 한 가지 좋지 않은 생각을 따르고 있었는데, 그것은 16세기에는 "새로운" 것이었던 국가들이 어떻게 "발전했는지" 살펴보면, 20세기의 "새로운 국가들"의 여러 궤적들을 더 잘 이해할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이었다.
이것은 좋은 생각이 아니었는데, 여기에는 국가들이 "발전”이라고 불리는 것을 향해서 비슷한 독립적인 경로들을 따랐다는 생각이 깔려 있었기 때문이다.
그 시절 마음속으로 나는 주로 베버주의 사회학자들, 즉 베버 자신이 아니라 1945년 이후의 시기에 미국 (그리고 어느 정도로는 세계) 사회학이 베버의 범주들을 이용하던 방식과 씨름하고 있었다. 개신교 윤리에 관한 베버의 책은 특정한 종류의 가치들의 존재가 1945년 이후의 시기에 근대화 또는 (경제) 발전이라고 불리고는 했던 현상의 필수 전제조건이었다는 논지를 담고 있는 것으로 매우 널리 해석되었다. 그 당시 통상적인 연구 절차란 국가 별로 이런 가치들의 존재 여부 또는 등장을 검토하는 것이었다. 그렇게 해서 진보의 행진을 나타내는 일종의 연대기적 서열이 만들어졌다. 어떤 국가가 첫 번째였는가? 어느 국가가 그 다음 자리를 차지했나? 이제 어느 국가가 다음에 올 것인가? 그리고 파생된 질문으로서, 다음 자리를 차지하기 위해서 국가는 이제 무엇을 해야 했는가?
나는 여러 방향에서 이 서사에 도전하고자 했다. 무엇보다 우선, 이 과정은 국가별로 검토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내가 세계체제(세계라는 말은 전 지구적이라는 말과 같은 뜻이 아니다)라고 부른, 페르낭 브로델이라면 유일한 세 계(the world)가 아니라 하나의 세계(a world)라고 불렀을 법한, 더 큰 범주 속에서만 검토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둘째, 나는 문제의 이 가치들은 발생하고 있던 경제 변동들에 선행하는 것이 아니라 그 변동들에 뒤따른다고 주장했다. 나는 왜 어떤 국가들이 생산 효율과 부의 축적에서 선도적인 나라가 되었는지 이해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다양한 국가들을 국가 간의 관계 속에 놓고 살펴보아야 한다고 주장 했다.
셋째, 나는 1945년 이후의 베버주의자들에게 중요했던 모순, 즉 전통 대 근대라는 주요한 대립구도를 거부하려고 했다. 나는 오히려 사미르 아민이나 안드레 군더 프랑크 같은 이른바 종속이론가들(dependistas)이 발전시키고 있던 주장에 공감했다. "전통적인 것은 "근대적인" 것과 마찬가지로 근래의 것이며, 프랑크가 쓴 유명한 어구를 따르자면, "저발전의 발전"에 대해서 이야기할 수 있다는 것이다.
나는 경험적 관심분야를 나 자신의 사회로부터 아프리카로 옮겼다. 나는 우선 식민지 시대의 아프리카에서 출발하여, "탈식민화"의 과정을 관찰했고, 수많은 나라들이 주권국가로서 잇달아 독립하는 과정을 살펴 보았다. 백인인 나는 오랫동안 아프리카에 거주한 유럽인들의 식민적 심성의 맹렬한 공격으로 곤욕을 치러야 했다. 게다가 민족주의 운동의 동조자였던 나는 여러 아프리카 운동에 뛰어든 젊은 투사들의 분노 어린 분석과 낙관적인 정열에 내심 공감했다. 머지 않아서 나는 이들 두 집단이 정치적 문제에 관해서 의견이 일치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완전히 다른 개념적 틀을 가지고 상황에 접근하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심각한 대립투쟁의 상황 아래서는 일반적으로 억압받는 쪽이 당대의 현실에 대해서 좀더 예리한 눈을 가지게 되어 있다. 지배자들의 위선을 드러내기 위해서는 정확한 인식이 그들에게 도움이 되기 때문이다.
-19
사회현실이란 덧없는 것이다. 그것은 현재 안에 존재하며, 과거로 옮아감에 따라 소멸한다. 과거는 사실 지금 있는 모습대로 이야기될 수 있을 뿐이지 과거의 모습대로 이야기될 수는 없다. 과거를 이야기한다는 것 자체가 현재의 사람들에 의해서 행해지고 현재의 사회체제에 영향을 주는 하나의 사회행위인 것이다.
"진리"는 변화하는데, 그것은 사회가 변화하기 때문이다.근대세계의 주권국가들을 포함해서 하나의 사회체제와 그것을 구성하고 있는 모든 제도들은 서로 접촉하고, 충돌하고, 무엇보다도 투쟁하는 광범한 사회집단들이 자리잡고 있는 장소이다. 우리 모두가 다양한 집단에 속해 있기 때문에 우리는 종종 어디에 먼저 충성을 바쳐야 할지 그 우선순위를 결정해야만 한다.
…객관성이란, 이러한 사고의 틀 안에서의 성실성인 것이다. 객관성이란, 전체 사회체제의 한 함수이다. 사회체제가 한쪽으로 기울어져 있어서 특정한 종류의 연구활동이 특정 집단의 수중에 집중되어 있는 한 그 연구결과는 이 특정 집단에 유리한 방향으로 "편향될" 것이다. 객관성이란, 이러한 활동이 세계체제의 모든 주요 집단에 기반을 둔 사람들에 의해서 균형 있게 수행되도록 해주는, 사회적 투자 분배의 벡터이다. 객관성을 이렇게 정의할 경우 객관적인 사회과학은 오늘날 존재하지 않는다. 그렇지만 또 한편으로 그것이 가까운 장래에 도저히 실현될 수 없는 목표는 아니다.
-26-27
바로 이 대목에서 우리들이 어떤 주의, 주장에 현신하느냐 하는 문제가 대두한다. 그것은 우리가 어떤 사회를 좋은 사회라고 생각하고 있는지 그 상에 따라서 달라진다. 보다 평등하고 자유로운 사회를 바라면 바랄수록 우리는 그러한 상황이 실현될 수 있는 조건들을 파악해야 한다. 그것은 세계인구 가운데 보다 큰 부분을 차지하고 보다 많은 억압을 받고 있는 사람들의 이해관계를 대변하고 있는 집단들에게 가장 유용한 힘이 될 터이다.
나는 이와 같은 생각들을 마음에 간직하고서 근대 세계체제의 결정적인 요소들을 분석하려는 이 작업에 착수했다.
-28
“서유럽인들은 왜 아메리카의 금은을 필요로 했는가? 그들은 왜 그것을 (아시아나 아메리카 원주민들처럼) 보물로 간직하거나 거룩한 교회의 장식물로 사용하지 않고 유 통 주화의 중요한 일부로, 즉 교환수단을 늘리는 데 사용했는가?”(함마스트룀)
브레너의 주장에 따르면, 금은의 용도를 결정지은 것은 자본주의 활동의 전반적인 융성이었다.
-117
상호 보완적인 상이성이 발전한 결과 서유럽의 도시들은 더욱 강성해졌고, 동유럽의 도시들은 상대적으로 미약해졌기 때문이다. 또 13세기 말이 되면 서유럽에서는 이미 상대적으로 넓은 토지 경작이 행해졌고, 반면에 동유럽에서는 훨씬 더 넓은 공한지가 남아 있었다. 강제 환금작물 노동의 과정은 이 "새로운" 땅에 비교적 좀더 수월하게 들어섰다.
다시 우리는 서유럽과 동유럽 사이의 그와 같은 사소한 차이는 또 어디에서 비롯된 것인가 하는 질문을 던질 수밖에 없다. 아마 단순한 지정학적 설명이 가능할 것이다. 즉 중세 말기 투르크 및 몽골-타타르족의 침입이 커다란 파괴를 초래하면서 이주와 쇠퇴를 야기했고, 무엇보다도 국왕 및 대제후들의 권위를 상대적으로 약화시켰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여기에는 다음과 같은 일반적인 원리가 작용하고 있다. 즉 사회적 상호작용에서 최초의 작은 차이점들은 강화되고 고정되어 하나의 “전통"으로 고착된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전통"이라는 말은 항상 현재의 한 모습이자 산물이지 결코 과거의 한 모습이나 산물은 아닌 것이다. 안드레 군더 프랑크는 근대세계를 설명하면서 이렇게 주장한다.
"경제발전과 저발전은 같은 동전의 양면이다.”
근소한 우세는 두 가지 대안 중 어느 쪽이 우월해질 것인가를 결정했다. 15세기의 근소한 우세는 17세기에 커다란 차이가 되었고, 19세기에는 어마어마한 차이로 벌어졌다.
-155-157
자본주의는 세계제국의 구조 안에서는 번영할 수 없다. 이것이 자본주의가 로마에서 출현하지 못한 한 가지 이유이다. 상인들은 단일한 국가구조 안에서보다 새로운 세계경제에서 정치적으로 한층 수월하게 다양한 이점을 누릴 수 있었다. 자본주의의 비밀이 단일한 민족국가의 구조 안에서보다는 비제국적인 세계경제 구조 안에서의 노동분업의 확립에 있다고 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K. 베릴은 20세기의 저개발 국가들에서 "국제 무역이 종종 국내교역보다 훨씬 비용이 적게 들고 용이하며····국가간의 전문화가 종종 한 국가 내에서의 지역간 전문화보다 훨씬 빠르고 용이하다"고 지적한다. 이것은 16세기 유럽에서도 사실이었다.
-198-199
정부들은 인정도, 찬양도, 사랑도, 지지도 받지 못하는 가운데 서도 견디어나가기 마련이었다. 16세기의 유럽이 바로 이런 상황이었다.
정당화는 대중이 아니라 핵심집단과 관련된다. 정치적 안정성의 문제는 국가기구를 관리하는 소수 집단이 다수 집단인 중앙 간부진 및 지방의 유력자들에게 다음과 같은 점을 얼마나 납득시킬 수 있는가 하는 정도에 달려 있다. 즉 그 체제가 이들 핵심집단이 존재한다고 믿는 어떤 합의된 가치에 근거하여 형성되었고 또 작동한다는 것, 그리고 이 체제가 계속 작동하는 것이 이들 핵심집단의 이해관계와 일치한다는 것을 납득시킬 수 있는 정도에 달려 있다. 정당성의 문제는 지속적인 타협의 문제이다.
-222
사회, 경제의 양면에서 유대인의 지위는 중세 말기에 꾸준히 저하되고 있었다. 그러나 16세기에 이르면, 지리적 불균형 현상을 볼 수 있다. 즉 그들은 서유럽에서 사실상 완전히 사라진 반면에, 동유럽 그리고 남유럽의 일부 지역에서는 점점 더 증가하고 있었다. 즉 핵심부에서는 소멸하고 주변부 및 반주변부에서는 증가하고 있었다.
지배자들에게 유대인 문제는 재정정책(fiscalism) 대 초기 중상주의(mercantilism)의 딜레마로 나타났다. 한편으로 유대인 상인들은 국가 수입의 중요한 원천이었으나, 다른 한편으로 비유대인 상인들에게 그들은 경쟁자였고 지주들에게는 채권자였다. 이들 두 집단은 한결같이 지배자들에게 유대인을 제거하라고 압력을 가했다.
-228-229
(왜 유대인은 그렇게 미움을 받게 됐나에 대한 일단의 설명. 오랜 역사적 과정이었고, 유럽에 편재하는 소수민족이었던)
(베버에 대한 반박)
지적으로 우연적인 일련의 역사적 발전에 의해서, 개신교는 종교개혁 시대에 상당 부분 강한 민족국가의 구조 안에서 상업 자본주의 팽창을 옹호하는 세력과 동일시되었으며, 또 이들 세력이 우세한 국가들과 동일시되었다. 그러므로 폴란드나 에스파냐 또는 이탈리아나 헝가리에서 그와 같은 세력이 힘을 잃게 되었을 때 개신교 역시 쇠퇴했던 것이다.
-235
에스파냐는 아메리카에서 거대한 관료기구를 구축할 만 한 행정적 능력을 지니지 못했다. 그러므로 제국들의 낡은 방편, 즉 국왕과 에스파냐 정착민들 사이의 중개자로서 지역의 족장들을 정치체제에 끌어들이는 편법을 사용했다.
에스파냐는 또 정착민들을 완전히 통제할 힘을 갖추지 못했다. 그들의 정치적 충성을 유지하기 위해서 에스파냐는 많은 경제적 양보를 했다. 이런 것들 중 하나는 인디오들이 가축을 기르지 못하도록 함으로써 경제활동의 독립적 기반을 허용하지 않은 것이었는데, 가축을 기르는 것은 그 들이 새로운 자본주의 경제에서 효과적으로 경쟁할 수도 있었을 행위였다.
-289
제국의 구조 안에서는 흔히 일어나는 일인데, 하위 제국주의들(subimperialisms)이 겹겹으로 여러 층을 이루며 생겨났다. 우리는 멕시코의 에스파냐인들이 페루를 "식민지화"한 방식들에 관해서 이야기할 수 있다. 멕시코는 훨씬 더 많은 인구를 가지고 있었다. 16세기와 17세기의 전 기간을 통해서 가격수준의 불균형이 꾸준히 지속되었다. 멕시코는 수공업 생산품과 사치품과 노예를 페루에 수출했고 그 대가로 정화와 수은을 받았다. 필리핀이 에스파냐의 무역권 안으로 들어왔을 때, 멕시코의 에스파냐인들은 에스파냐 마닐라인들을 대신해서 마닐라와 리마 사이의 중간상인이 되었다. 마닐라를 경유하여 멕시코에서 페루로 중국 도자기들을 재수출하는 것은 식민지간 무역의 근간이 되었다. 에스파냐 국왕은 멕시코가 카스티야의 이익을 침해하게 되자 멕시코의 역할을 저지하려고 했으나 성공하지 못했다.
-291
단순화시켜 이야기한다면, 잉글랜드에서는 귀족 자신이 부르주아 자본가로 변신함으로써 단기적으로는 손해를 보았으나 장기적으로 이익을 얻었던 반면에, 프랑스에서는 귀족이 부르주아지로 하여금 고유의 기능을 포기하도록 강요함으로써 단기적으로는 이익을 얻었으나 장기적으로는 손해를 보았다. 이렇게 될 수밖에 없었던 이유는 본질적으로 양국이 세계경제와 맺고 있는 관계의 차이에 있었다.
-439
세계체제는 하나의 사회체제이다. 그것은 경계, 구조, 성원집단, 정당화의 규정 그리고 일관성을 가진 사회체제이다. 서로 투쟁하는 세력들은 서로 당기는 힘에 의해서 그 체제를 결합시키며, 또 각 집단이 자신에게 유리한 쪽으로 그것을 개조하려고 끝없이 노력함으로써 체제를 분열시킨다.
그것은 유기체의 특징들을 가지고 있다. 하나의 유기체로서 그것은 수명이 있는데, 어떤 특징은 변화하고 또 어떤 특징은 변함없이 남아 있다. 우리는 그 체제의 내부적 작동논리에 의해서 그 구조들을 어느 때는 강하고 어느 때는 약하다는 등 때에 따라 다르게 규정할 수가 있다.
한 사회체제를 특징짓는 것은 그 안에서의 생활이 주로 자기완결적이라는 점과 그 발전의 원동력이 주로 내재적이라는 점이다.
-531
근대 이전의 세계경제들은 매우 불안정한 구조들이어서 세계제국으로 바뀌어가든가 붕괴하든가 하기 십상이었다. 하나의 세계경제가 500년 동안이나 생존해오면서도 아직도 세계제국으로 변모해가지 않았다는 점이 근대 세계체제의 특수성인데, 이 특수성이야말로 그 힘의
비밀이다.
이 특수성은 자본주의라고 하는 경제조직 형태의 정치적 측면이다. 자본주의가 이제까지 번영해올 수 있었던 것은 바로 그 세계경제가 그 영역 안에 단일한 정치체제가 아니라 복수의 정치체제들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자본주의란, 경제적 소득은 "개인의" 수중에 나누어 주면서, 경제적 손실은 정치체가 줄곧 감당하는 데 바탕을 두고 있다. 하나의 경제양식으로서의 자본주의는 경제적 요소들이 어느 한 정치체에 의해서 완전히 통제될 수 있는 범위보다 더 넓은 영역 안에서 작동하고 있다는 사실에 기초하고 있다. 세계경제의 규모는 기술상태의 함수이며, 특히 그 영역 내에서의 교통과 통신 능력의 함수이다. 이것은 끊임없이 변화하는 현상이기 때문에, 세계경제의 경계는 항상 유동적이다.
-533
근대세계가 저지른 그 온갖 잔인한 짓들에도 불구하고 그것이 태어난 것은 태어나지 않은 것보다는 좋은 일이다.
그 일이 쉽지 않았다는 것, 특히 단기적으로 대가를 치른 사람들이 그 모든 불공정함에 대해서 큰 소리로 외쳐댔기 때문에 쉽지 않았다는 것이 또한 유럽의 공적으로 돌릴 만한 점이었다. 폴란드와 잉글랜드와 브라질과 멕시코의 농민과 노동자들 모두가 그네들 나름의 온갖 방식으로 소란을 피웠다. R. H. 토니가 16세기 잉글랜드의 농민소요에 관해서 이야기하고 있듯이, "이러한 운동들은 그들의 혈기와 정력, 드높고 용감한 기상의 증거이다••••••인민들 이 반역하는 법을 잊어버리지 않은 민족은 행복하리라."
근대세계의 징표는 그 안에서 부당한 이득을 취하는 자들의 상상력과 억압받는 자들의 단호한 반대이다. 착취 그리고 착취를 불가피하거나 정당한 것으로 받아들이는 데에 대한 거부는 근대의 끊임없는 모순을 이루고 있는데, 이 둘은 20세기에도 하나의 변증법 속에 서로 결합되어 있다.
-545-546
'딸기네 책방' 카테고리의 다른 글
| 필립 맥마이클 <거대한 역설> (0) | 2026.01.02 |
|---|---|
| 페르낭 브로델 <물질문명과 자본주의 3. 세계의 시간> (0) | 2025.12.28 |
| 페르낭 브로델 <물질문명과 자본주의 2 - 교환의 세계> (2) | 2025.12.19 |
| 찰스 킨들버거, <대공황의 세계> (1) | 2025.12.14 |
| 안드레아스 말름, <팔레스타인의 파괴는 지구의 파괴다> (1) | 2025.12.12 |